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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도 영어로? (성동신문)    
글쓴이 : 박병률    24-12-15 14:12    조회 : 1,279
-관광도 영어로


 

왕십리역에서 춘천행 ITX 청춘 열차를 타고 춘천으로 향했다. 열차가 강촌역을 지날 때 차창 밖을 바라봤다. 강물이 흐르고 산등성이에 서 있는 나무는 뼈만 앙상하고, 가을걷이가 끝난 들렼은 텅 비어있었다.

오래전부터 자연이 살아가는 방식! 비워야 새것을 담듯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나무에서 새싹이 돋을 테고, 논밭은 농부들이 씨를 뿌려서 분주하게 돌아갈 것이다. 자연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겼는데 어느새 춘천역에 도착했다.

역 근처에 있는 관광안내소에 들러 관광안내지도를 챙겼다. 공지천을 한 바퀴 돌아보고 춘천 닭갈비집으로 갈 예정이었지만, 직원이 빙어낚시 축제에 가보라는 말을 해서 귀가 솔깃했다. 친구와 의논 끝에 버스를 타고 빙어축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마을에서 운영한다는 빙어축제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아이들은 썰매를 타고 어른들은 얼음구멍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 먹거리 장터에서 빙어 한 접시를 시켰다. 큰 대접에 물이 찰박찰박한데 빙어가 밖으로 나가려고 버둥거렸다. 빙어를 쳐다보고 친구가 입맛을 다셨다. 빙어 꼬리를 잡고 초장을 듬뿍 찍어서 입으로 넣으려는 순간, 빙어가 좌에서 우로 친구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빙어가 말을 할 줄 안다면 이러지 않았을까?

이놈아, 너 죽고 나 살자!”

빙어 몸에 초장이 듬뿍 묻었으니 눈에 보이는 게 있겠는가, 빙어가 온몸을 부르르 떠는 것이 젖 먹던 힘까지 쏟아 부으며 친구와 맞짱 뜨자는 신호 같았다. 나는 친구 입속으로 빨려 들어간 빙어를 바라보며 속으로 기도했다. “좋은 데로 가소서!”

살아있는 생명을 입안에 꿀꺽 삼키는 것을 보았지만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비위가 약해서 빙어튀김을 따로 시켰다. 튀김 한 접시를 금세 비우고 얼음판으로 갔다. 낚싯바늘에 구더기를 달아서 낚싯줄을 늘어뜨렸다. 낚싯대를 잡은 손을 위아래로 움직였지만 빙어가 가물에 콩 나듯 올라오고 찬바람은 살 속 깊이 파고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해가 서쪽으로 기울었다. 낚시를 접고 닭갈비집에 들렀다. 이른 저녁이라 그런지 가게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닭갈비를 시켰다. 불판에 올려놓은 감자가 노릇노릇 익어갈 때, 친구가 감자를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켰다. 잔을 내려놓자마자 말했다.

춘천역 관광안내소 들렀을 때 안내표지판 봤는가? 안내표지판 맨 윗줄에 information 이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고 그 아래 (관광안내소)라는 표기가 있었어. 우린 자존심도 없는겨?”

나는 무심코 지나쳤는데 친구는 표지판이 눈엣가시로 남았던 모양이다. 친구가 말하길, 안내표시 맨 위에관광안내소크게 쓰고, 그 밑에 information 작은 글씨로 써야 한다고 주장을 했다. 친구가 한마디 덧붙였다.

“1966년 프랑스에서 세계 언어학자들이 참석한 학술회의에서 한국어를 세계 공영어로 쓰면 어떻겠냐는 토론이 오간 적이 있었디야.”

외국인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영어를 크게 썼는지 몰라.”

내가 거들었지만 불난 집에 부채질한 꼴이었다. 친구가 언성을 높이며 말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세계 언어학자들이 한글을 높이 평가했잖아, 한글을 먼저 써야지 영어를 먼저 써?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꼴이랑게. 한글 나라에 와서 관광할 때 영어로 하란 말이여?”

자네가 이참에 높은 자리 하나 꿰차소! 그러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내가 빈정거리자 친구가 내 턱밑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도 질세라 얼쑤, 그렇고말고.” 친구 얼굴을 쳐다보며 쇠젓가락을 양손에 들고 장단을 맞췄다. 친구랑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을 보고 주인이사이다 한 병 공짜요.” 인심을 썼다. 나도 한글이 우수하다는 것을 잡지에서 본 적이 있다.

언어연구학으로 세계 최고인 영국의 옥스퍼드대 언어대학에서 과학성, 독창성, 합리성, 등을 기준으로 세계 모든 문자에 대해 순위를 매겼는데 한글이 1위를 차지했다.

 성동신문 202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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