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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사랑해요    
글쓴이 : 문경자    25-06-06 23:19    조회 : 1,864


아버지 사랑해요

 

 

 

10여 년이 넘게 아버지께서는 서울요양원에 누워만 계신다. 어느 날 갑자기 텔레비전 앞에서 쓰러졌다.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른 것이 화근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유명하다는 병원을 다 찾아 다니며 입원치료를 거듭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쇠약해진 몸으로 더 이상은 무리였다. 집에서 자식들이 간호를 한다고 하여도 하루 이틀 만에 건강을 되찾는다는 믿음도 없었다. 가족회의를 열었다. 자식 된 도리를 하지 못하고 요양원으로 모시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하는 수없이 그곳으로 정했다. 요양원은 환자들을 수용하여 휴양하면서 치료 받을 수 있는 시설이 갖춘 기관이다.

아버지는 요양원에 가는 사실을 두려워했다. “정신이 멀쩡한 나를 왜 그곳에 보내느냐 나를 내다 버리려고 하느냐라 고 화를 냈다. 그 모습을 보니 눈물이 핑 돌아 아버지의 얼굴이 겹쳐졌다. 불쌍한 아버지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건강해지시면 집으로 돌아와서 가족과 함께 살게 되겠지요.”아버지는 그 말을 믿고 해거름에 요양원에 들어가셨다. 창 밖을 흐릿한 눈으로 바라보시던 아버지 모습이 내 눈에 밟혔다.

 

 요양원에 계시는 아버지는 기분이 좋은 날이면 노래도 불렀다. 우리가 요양원 면회를 가는 날, 제일 신나는 일은 노래를 함께 부르는 것이었다. 아 아 하고 가수처럼 목을 가다듬었다. 우리는 그 모습이 너무도 우스웠다. 아버지는 음정 박자를 가느다란 긴 손가락으로 장단을 맞추었다. 이미자의<섬마을 선생님>을 불렀다. 가사 하나 틀리지 않고 열창을 하셨다. 그 순간 아버지는 청년의 모습으로 돌아가 그 때를 떠올리며 젊음을 되찾은 듯 보였다. “아버지 최고예요 일등, 엄지 척하며 박수를 크게 쳤다. 요양원 환자와 보호자들도 함께 웃으면서 잠깐 시름을 잊기도 하였다. 팔 순의 아버지는 노래하는 순간이 제일 행복한 모습이었다. 아버지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었다.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오늘따라 간절하게 가슴속 깊이 새겨졌다.

 

 어느 해 봄이었다. 깊은 잠을 자고 있는데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잠결에 일어나 현관문을 열고 내다 보았더니 희뿌연 새벽 안개 속에 친정 아버지가 서있었다. 순간 깜짝 놀랐다. 큰 소리로 아버지하고 부르면서 뛰어나갔다. 내 얼굴을 보더니경자가 살아 있었구나. 어디 한번 손이라도 잡아 보자내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아 주셨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예 아버지 하고는 대답했다.”내가 잠을 자다 꿈을 꾸었는데, 네가 연탄가스에 취해 죽어가고 있었다. 놀라서 달려왔다라는 말을 했다. 지금도 그때 아버지의 모습을 떠 올리면 눈가가 촉촉히 젖어 든다. 아버지는 눈 앞에 서있는 딸을 보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시집 가기 전 두 번 정도 내가 가스에 취한적이 있었다. 그때도 아버지는 얼마나 놀랐는지 회사에 결근을 하고 내 곁을 지켜주었다. 내가 머리 나쁜 것도 연탄 가스를 많이 마셔서 그런 것은 아닌지, 아버지께 떼를 쓰며 억지를 부렸다. 그럴 때는 허허 호탕하게 웃으시고는 우리 딸이 똑똑하고 예쁘지하였다. 한번은 퇴근길에 번데기를 간식으로 사다 주셨다. 주름이 징그럽고 살아있는 벌레같이 생겨 먹기가 싫었지만 웃고 계시는 아버지 앞에서 맛있게 먹었다. 고소한 것이 깨소금 맛 같았다. 이튿날 잠에서 깬 내 얼굴이 완전 찐빵이 부푼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울면서 아버지! 하고 불렀다. 깜짝 놀라 나를 보고는 동생에게 언니 빨리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한다는 말을 하였다. 동네 병원을 찾아갔다. 진찰을 끝낸 의사는 활짝 웃었다. “아가씨가 너무 건강하고 얼굴도 예쁘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염려 마세요라는 말에 아버지는 하하 웃으며 따듯한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주었다. 이제 시집만 잘 가면 된다. 아버지는 맛있는 짜장면도 사주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아버지는 집에서 근교에 있는 초등학교로 출근을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아버지와 같이 우산을 쓰고 가면 학생들이 다가와서 선생님 안녕하십니꺼하고 인사를 했다. 학생들에게 인사를 받고 우쭐하였다. 나도 선생이 된 기분이 들었다. 나는 키기 작아 비를 다 맞으면서도 신이 났다. 그 때를 생각하면 젊고 멋있는 아버지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운동회를 하거나 소풍을 갈 때도 아버지가 항상 내 곁에 있으니 하늘을 나르는 기분이었다. 달리기를 할 때는 응원을 해주었다. ‘경자야 빨리 뛰어아버지의 응원에도 일등을 해 본적이 없었다. 꼴등 한 기억만 남아있다. 외동아들인 아버지는 동네서도 인기가 대단했다. 힘이 세고 키가 큰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였다. 마을에서 열리는 씨름대회에서 1등을 놓친 법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 자랑을 할 때가 제일 행복해 보였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을 만큼 초라하고 바람에 날리는 민들레 홀씨같이 가벼웠다. 발등 위에 굵은 핏줄은 지렁이가 기어가는 형상으로 보였다. 같은 요양원에서 생활 하는 어르신들 모습은 하나 같이 얼굴에 그림자만 쌓여 있어 마음이 아팠다. 간간히 자식들이 찾아와서 잠깐 얼굴을 보고 가면 그 뿐이었다. 세상 떠나는 연습을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우리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우울해지기도 했다. 아버지의 힘없는 눈은 천정을 바라보았다. 수족은 차고 별로 움직임이 없었다. 입으로 식사를 하지 못해 허리에 구멍을 뚫고 유동식을 위장으로 흘려 보내고 있었다. 생명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아무것도 해드릴 수없이 지켜만 보는 자식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요양원에 계시던 아버지는 중환자실에서 86세에 세상과 이별을 하였다.

어느 날 가까운 요양원에 봉사를 갔다. 일일 보호자 역할을 맡아 할머니의 시중을 들었다.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는 자식자랑을 침이 마르도록 하였다. 요양원을 나가고 싶지만 자식에게 짐이 될까 봐 여기서 지내고 있다는 말을 하였다. 할머니는 젊었을 때 미스코리아에 출전 한 미인이었다고 자랑이 대단했다. 노래와 무용을 하는 프로그램도 즐거워하면서 하루를 같이 보냈다. 내 말을 잘 들어 주어서 감사하다 고 했다. 돌아 가신 아버지생각에 더 극진하게 정성을 다해 보살펴드렸다. 요양원을 나서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아버지도 어디선가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시겠지요. 어버이날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아버지 사랑해요.’ 라는 말을 되새겨 봅니다. 큰딸 목소리만 들어도 반가워하시던 아버지 엄마없이 자란 딸이 불쌍하여 눈물을 글썽이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지요.

 

아버지!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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