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 냇가에서
우리동네
공원에는 인공으로 만든 냇가가 있다. 마을버스정류장도 있어 냇가에 오는 길은 편리하다. 버스안에서도 그 앞을 지날 때는 냇가에 놀고 있는 귀여운 아이들을 볼 수가 있어 즐거운 마음을 갖게 한다. 냇가 주변에는 여러 개의 벤치도 놓여있어 어른들과 아이들이 공유하며 쉬는 편리한 공간도 있다. 백일홍나무도 몇 그루 있으며, 맞은편에는 소방서와 편의점, 치킨집도 있다. 동네서도 알아주는 큰 교회도 보인다. 이런 곳에 물놀이할 공간이 있어 아이들은 부모와 손잡고 나와 수영복을 입고 한여름 물장구 치며 놀았다. 팬티를 입고 물속에 들어간 아이들은 없었다.
어른들은 옛날 기억에 사로잡혀
아이들 노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본다. 개구쟁이들은 뜨거운 햇빛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더위에도 지치지 않고 입가에 방울방울 달린 물방울 달고 웃었다. 귀엽고
예쁜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어른들도 아이가 된다. 아빠 엄마가 함께 수영을 가르치는 모습도 행복해 보였다. 유아 비키니, 어린이 원피스, 빨간색
수영복 등 패션쇼를 보는 것처럼 각양각색이다. 우리 아이들은 수영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지금도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서도, 여름 휴가철만 되면 슬쩍 지나가는
말로 한 마디 툭 던진다. 여자친구가 수영을 할 줄 아느냐고 물어 보면 창피 하다고 했다. 아이들도 기본적인 것은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도심에는 여름이 아니더라도
사계절 수영을 가르치고 취미 생활도 할 수가 있으며 전국에 수영장이 없는 곳이 없다. 아무리 잘 만든
수영장이 많다고 해도 자연으로 만든 고향 마을 냇가의 수영장이 더 다정하고, 어딘가 모르게 소박하고
정감이 느껴진다. 수영복을 입지 않아도 되고 누구나 똑 같은 것을 입고 물놀이를 하니 형제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엄마 아빠가 없어도 웃으며 즐기는 헤엄치기는 정말 신났었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호박줄기처럼 뻗어 나를 그곳으로 데려갔다.
냇가 주위에는 심어 놓은 벼가 자라는 논이 있다. 몇
백 년 된 열녀나무도 여름 에어컨보다 더 좋은 역할을 해주었다. 전기코드가 없어도 되니 전기세 낼 걱정도
없다. 어른들은 그곳에서 여름을 보내며 종이 신문보다 구수하게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우리도 그곳에서 공기 놀이, 고무줄놀이도 했다. 한참 뛰어 놀다 보면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더위를 시키기 위해 우리가
즐겨 하는 물놀이가 있다. 초등학교 들어 가기 전 여름날 냇가는 도심의 수영장 아니면 인공 냇가 보다
좋았다. 자연으로 만들어진 냇가가 유일하게 동네 앞에 있었다. 웅덩이처럼
생겨 목욕을 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시멘트로 만들지 않고 둥글고, 납작하고, 뾰족하고, 반들반들하고, 여러
가지 돌들이 주위에 있어 운치가 좋은 곳이다. 우리가 물놀이한다고 해서 가족들 누구 하나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저 무탈하게 물놀이하는 것만 바랄 뿐이다. 냇가는
길가에 있어 어른들이 지나가면서
누구 집 딸아이인지 단번에 알아보고 한마디씩 한다.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다. 뒤통수만 보아도 금방 알아본다. 동네서 선머슴아 같이 노는 것을
훤하게 알고 있었다.
회나무 아래서 겉옷을 가지런히
벗어 놓고, 꽃 모자와 파란 수영복은 없지만 엄마가 정성 드려 만들어 준 검정색 팬티와 흰 런닝구는
잘 맞는 패션이다. 먼저 길가에 있는 쑥 잎을 따서 손바닥으로 살살 비벼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꼭
막았다. 하나, 둘, 셋
준비운동을 하였다. 사이 좋은 친구들이라도 물속에 들어가는 순서가 있었다. 제일 먼저 한 살이 많은 대장님 큰 자야는 오른손으로 코를 막고 뛰어내린다.
이어서 줄줄이 뛰어내렸다. 한번은 잘못 뛰어내려 엄지 둘째 발가락이 뾰족한 돌멩이에 부딪혀
많이 찢어졌다. 엄마는 상처 난 부위에 된장을 발라주었다. 신기하게도
상처가 낫고 흉터만 남았다. 발가락을 보면 붙어 있는 게 신기하였다.
그 후로 조심을 했다. 너
댓 명이 풍덩풍덩하는 소리에 풀잎에 붙어있는 물 잠자리가 날아갔다. 날개가 햇빛에 비춰 무지개를 만들었다. 수영이란 단어조차 모르는 우리는 그저 목욕한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단발머리가
물에 젖고 얼굴은 볼그레하다. 서로 마주보며 깔깔 웃는 모습은 그저 천진난만한 얼굴이다.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수영은 할 줄 모르니 개구리헤엄치기라도
하면 정말 재미있었다. 물속으로 가라앉고, 서로 부딪히고, 손을 잡아 끌며 노는 물놀이는 최고였다. 코 막고 물속에 오래 있는
놀이도 즐거웠다. 대장 자야는 물속에 오래 있다가 죽는 줄 알았다며 우리 보고 차례로 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슬쩍 하는 척했다. 너무 오래 물속에 있다 보니
입술이 파래지고 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넓은 바위에 앉아 햇빛을 쪼인다. 귀마개를 빼고 햇빛에 달궈진 납작한 돌멩이 두 개를 주워 양쪽 귀에 대고 떼었다 부쳤다 반복하며 물을 말렸다. 처음에는 귀가 데일만큼 뜨거웠다.
우리가 떠드는 소리에 동네
개구쟁이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우리를 놀리는 재미에 한 시절을 보낸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작은 돌로 수제비 뜨기를 하고,
우리가 벗어 놓은 옷들을 물속으로 던지는 시늉을 하였다. 우리는 겁에 질려 숨도 못 쉬고
지켜볼 뿐이었다. 그 때 동네 호랑이 할아버지가 지나가다 그들에게 혼을 냈다. 하루 종일 물 속에서 노는 일도 힘들었다. 온 몸을 깨끗하게 하고
옷을 챙겨 입었다. 서로 쳐다보니 맑고 밝은 얼굴이 더 예뻤다. 겨울, 봄 제대로 씻지 못하고 여름날 냇가에서 반 년의 때를 다 닦아 내니 몸이 나비처럼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그날 저녁은 가족들이 모두 예쁘다고 했다. 엄마는 밥도 많이 주었다. 보리밥도 꿀맛이었다. 모기장이 쳐진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자는데 물장구치는
꿈을 꾸었다. 엄마는 나를 부르며 휘젓는 내 팔을 가만히 잡아 주는 것 같았다. 어른이 된 지금도 여름날이면 그런 날이 그립다.
그후로 헤엄치기도 못했으니
수영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결혼을 하고 바쁘게 지내다 보니 수영장에서 배우는 것도 어려웠다. 내가 수영을 못한 다는 것을 아는 가족들은 수영복을 산다고 하니 모두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남편이 더 심하게 말했다. “당신이 수영복을 입으면, 그리고 맞는 것이 있을지 걱정이 돼요.” 했다. 이젠 그런 말도 들을 수 없지만. 동네 계모임 친구들과 영등포 신세계
백화점에 갔다. 생각보다는 수영복을 구입하기 쉬웠다.
여름휴가철에 맞추어 세일을
한다며 이때 하나 장만하라고 점원이 말했다. 하나를 골라 샀다. 집에
와서 파란색 줄무늬가 있는 수영복을 꺼냈다. 모두 어디어디 하고 한 번 입어 보라고 했다. 이를 어째. 입기는 좀 그렇고 그냥 샀다는 것만 알고 있어 하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해외 여행 가서 수영복을 입고 사진이라도 찍어야 한다는 꼬임에 빠졌다. 그때 처음호텔에서 푹 쉬고 나와, 수영장이 있는 곳으로 갔다. 진짜 수영복을 입고 물 속에 들어갔다. 부끄러워 내가 나를 봐도
웃음이 나왔다. 그날의 내모습을 친구들은 생각보다 예쁘다며, 이리저리
포즈를 취하라고 하여 여러 번 촬영을 했다. 지금도 앨범속에 그 사진을 보면 얼굴이 붉어진다. 가족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진짜 수영복입고 수영을 했다고 했다. 믿거나
말거나.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입어 본 수영복이라 장롱속에 접어 두었다. 내가 어릴 적 여름날 냇가에서 목욕하던 그때 패션이 더 예뻤다.
코로나 19 때문에 인공 냇가는 물놀이가 중단되었고, 대신
비둘기들이 노닐고 있다. 산골의 냇 가도 아이들도 사라진지 오래다. 그런
기억들이 내 맘속 액자에 박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