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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촌나그네/ 아름다운 슬픔    
글쓴이 : 김데보라    12-05-29 13:09    조회 : 3,933

헝가리(부다페스트)
                                      아름다운 슬픔


<<한국산문>> 6월호 발표


비엔나에서 이동한 헝가리 부다페스트는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어 알 수 없는 우울모드를 불러오는 우수가 도시에 깊이 배어들어 있다. 라틴계와 슬라브계 나라에 둘러싸여 있어서‘유럽에 던져진 아시아의 돌’이라고도 불리고 있는 나라에 발을 내디딘 것이다.

어머니의 젖줄 같은 도나우 강이 흐르고 있는 부다페스트는‘도나우 강의 진주’라고 불릴만큼 아름답다. 뽀얀 안개가 도시 멀리까지 끝없이 펼쳐지고 있다. 마치 영원까지 베일에 가리어 진 듯 신비스럽다. 아침 햇살을 가린 안개는 죽은 망령들의 슬픈 이야기를 말하는 듯하다.

늘 푸른 도나우 강을 사이에 두고 부다와 페스트 두 지역으로 나누어진 동유럽의 파리라는 이곳은 정치·행정·산업·상업의 중심지다. BC 3000년 이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했으며, 지금은 헝가리 인구의 약 1/5이 밀집하여 살고 있다. 1873년 페슈트·부도·오부도(옛 부도, 부도의 북쪽)의 마을들이 합병되어서 부다페스트라 불리고 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영웅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한 헝가리 정착 1000년을 기념하여 1896년 기념비가 세워진 영웅광장이다. 한산하기는 했으나 영국의 버킹검 궁전 앞에 버금갈 정도로 사방으로 뚫려진 길이 시원하게 펼쳐져있다.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이 어루만지는 천사 가브리엘의 조형물이 중앙에 우뚝 서 있다. 헝가리 각 부족을 이끄는 7명의 지도자를 형상화한 조각상들이 그 옆에서 그 시절의 위용을 자랑한다.

금빛으로 작열하는 햇살을 받으며 영웅광장의 청동 조각상들이 옛 헝가리의 부귀영화를 이야기하는 듯하다.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던 마차시 사원을 감싸고 있어 수호하고 있는 듯 보이는 요새는 강을 건너 쳐들어오는 적군들을 막기 위해 18세기 어부들이 세웠다고 한다. 초라한 옷자락을 날리며 고기를 잡던 어부의 요새는 헝가리 애국정신의 상징이다. 그 요새 망루 위에서 어부들의 옷을 걸친 초로의 두 남자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욕심 없는 하루벌이를 위해 나선 유럽 곳곳에서 마주치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연주이다. 몇 푼 안 되는 동전을 지갑에서 꺼내 의자 위에 올려 둔 통속에 넣었다. 초로의 두 남자가 들려주던 헝가리의 민속 음악이 안단테 데 크레센도의 선율로 내 귀를 따라 다닌다.

잿빛으로 물든 하늘이 솜털 같은 안개비를 내리는 부다페스트는 낮과 밤이 다르다. 농부의 아낙 같은 옷을 걸친 여인이 낮이라면 밤은 조명 탓인가. 신비하고 고혹적인 매력을 물씬 풍기는 우아한 여인이다. 파리와 프라하의 야경도 판타스틱했지만 부다페스트는 그 둘을 잊어버리게 할 만큼 고혹적이다. 슬픈 미소가 번지는 검붉은 빛이 넘실대는 다뉴브 강가 나루턱에서 유람선에 올랐다.

거무스름한 빛의 밤물결이 출렁이는 배를 타고 요한 스트라우스 <아름다운 푸른 도나우 강>의 음악을 들으며 선유하자니 도시 양 옆으로 늘어 세워진 국회의사당이며 마차시 성당, 세체니 다리, 어부의 요새, 부다 왕궁 등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오색찬란하게 밤물결과 손을 잡는다. 밤새워 바라보고 있어도 물리지 않을 듯한 야경의 그윽함에 빠지고 만다.

밤을 밝히는 전구의 불빛이 사슬 같다는 세체니 다리는 일명 사슬 다리다.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하는 그 다리는 야경을 받아 신비스러우리만치 고혹적인 자태로 밤을 찬미하고 있다.
 
아름다운 것의 끝에는 슬픔이 있다는 헝가리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배경이 된 이 도시와 군델 레스토랑은 영국 여왕이 가장 즐겨 찾는 명소라고 한다. 한가하게 오리들이 노니는 강가에 위치한 최고급 레스토랑이라는 그 음식점을 사진에 담았다. 강가에 있는 그 레스토랑은 몽환적인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있어 대낮임에도 초저녁 같았다.



글루미 선데이



레조 세레스가 작곡한 영화 음악 <글루미 선데이>는 '죽음의 송가'라는 별명을 달았다.  1935년 헝가리에서 이 노래를 실은 레코드가 발매된 지 8주 만에 187명이 자살했다. <<뉴욕 타임즈>>는“수백 명을 자살하게 한 노래”라는 헤드라인으로 기사를 실었다. 그 오명을 쓰고 이 음악은 한때 금지 당하기도 했다.
 

우울한 일요일, 죽은 연인을 그리며 탄식하다 자살을 결심한다는 가사의 내용이다. 플루타르크는“자살은 명예를 빛내기 위하여 할 일이지, 해야 할 일을 회피하기 위한 수치스러운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기 혼자만을 위해 살거나 죽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라고 비유했다.

더불어 까뮈는“자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멜로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일종의 고백을 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것은 인생에 패배했다는 것, 혹은 인생을 이해하지 못한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플루타르크의 말처럼 해야 할 일을 회피하기 위해서도 까뮈의 말대로 인생에 패배한 것을 자인하기 위한 것도 아닌 우울증 때문에 자신을 죽음의 길로 내 몰았을 사람들이었다.
 
수많은 자살자를 낳은 글루미 선데이 <우울한 일요일>, 그 유작을 남기고 한국의 채동하도 자살했다. 평상시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이 청년이 죽어야할 이유는 딱히 없는 듯하다. 그럼에도 이 연예인 외에도 그보다 앞서 간 최진실, 장자연, 최진영 등이 우울증을 앓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감기가 오래되면 만병의 근원이 되듯이 우울증도 그런 것이다. 조기치료하지 아니하고 장기적으로 방치하면 병을 앓던 사람은 자살하거나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울증은 정신의 감기와 같다. 서양에서는 우울증은 대수롭지 않게 정신치료를 받는다. 불면증만 있어도 정신과를 찾을 만큼 자연스럽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떤가. 정신 병력이 기록되면 보험가입도 어렵다. 취직도 힘들다. 다른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받거나 가까이 하려 들지 않아서 병원조차 가는 걸 꺼려하니 자살자가 속출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는 요인이다.
 

자살자가 가장 많은 나라 한국. OECD 국가 중에서 자살 1위라는 오명을 달았다. 영국 BBC는 “전쟁 때 보다도 한국은 더 불행한 나라”가 되었다고 말했다. 대체 왜? 우리가 다른 나라에게 이런 수치스런 멘트를 들어야 하는가. 자살공화국이 된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경쟁이 너무 치열한 이 사회가 자살을 부른다. 청소년들이 자살하는 이유가 결국은 이 경쟁 때문이 아닌가 말이다. 두 번 째는 배금주의 사상이다. 돈을 많이 벌어야 성공한 것으로 평가하는 사회인식의 부족이다. 돈이 꼭 행복의 조건은 아니건만 성공의 제일 순위가 된 탓이다. 세 번째는 지나친 개인주의 때문이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불감증이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자살국가라는 불명예를 벗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선거 때만 복지사회를 부르짖는 정치인은 행동에 앞장서야 한다. 그게 지름길이다. 지도자들의 밥그릇보다는 민족의 앞날을 먼저 챙겨야 우리는 미래가 보장된다.

아름다움의 끝에는 슬픔이 있다는, 안개와도 같은 우수가 영혼 깊은 곳에 천천히 스며드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마냥 밤새워도 좋을 듯 그윽했다. 애수가 드리워진 아름다운 이 도시에서 자살로 치달아 가는 한국의 현실이 안개 같은 슬픔으로 가슴에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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