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성 이
노 문 정 ( 본명 : 노정애 )
우리 집의 여름은 창고에 있는 17살 금성이, 7살 한일이, 3살 오성이인 선풍기를 꺼내면서 시작된다. 3형제가 바람몰이에 바빠지기 시작하면 신문이나 방송에서 이상기온이니 불볕더위니 하는 말들을 쏟아내며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을 알린다.
최고 연장자인 금성이를 보니 엄마 생각이 났다. 어머니는 내 혼수품을 준비하면서 열외 품목을 내 놓으셨다. 신접살림 시작하는데 바람 일면 안되니 선풍기 제외, 낮 뜨거운 꼴 볼까 무서우니 다리미 제외, 시끄러운 소리 나면 큰일 난다며 오디오를 제외시키고 가전제품을 들이셨다. 없는 살림에 기둥뿌리 뽑히지 않으려는 어머니만의 전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허나 밥맛이 좋아야 부부금실도 좋은 것이라며 선풍기 열대 값보다 비싼 압력밥솥과 오디오 두 대는 살 수 있는 냄비 세트를 혼수에 같이 싸 보낸 것을 보면 딸 잘살기 바라는 마음에 주술적 힘을 믿고 싶으셨던 것이리라. 성질머리 사나운 딸 시집보내며 무엇인들 믿고 싶지 않았을까. 그 염려 덕분에 지금까지 무탈하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5월에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결혼 5년차인 언니가 왔을 때 선풍기 없는 이유를 말했더니 자신이 결혼할 때도 그랬다며 ‘신바람 나게 잘 살라’고 금성이를 선물해 주었다. 이 녀석은 10년을 외동으로 지내면서 더운 날 귀여움을 독차지 했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남편은 여름이면 마누라보다 바람돌이 선풍기가 좋다며 끼고 살았다. 손님 접대용이 되기도 하고 크고 작은 분쟁으로 열 받은 우리들을 시원한 바람으로 식혀주기도 했었다. 6월생인 두 딸은 이 효자 덕분에 땀띠 없이 여름을 날 수 있었다. 옆집에 손님이 많이 오는 날이면 출장 서비스도 해주었다. 시원한 얼음냉수 한잔과 금성이를 앞에 두면 더위는 잠시 잊어도 좋았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각자 방을 가지게 되었다.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는 작은 아이 방에는 날개가 5개이며 강력 파워를 자랑하는 한일이가 들어왔다. 기계 다루기에 능숙하고 최신식 제품을 좋아하는 큰아이 방에는 리모컨으로 모든 기능이 조절 가능한 오성이도 들어왔다. 거실에는 에어컨까지 달았다. 이쯤 되니 금성이도 인기가 떨어져 내 차지가 되었다.
2년전 이 녀석은 풍향 조절 스위치 고장으로 A/S센터를 찾았었다. 센터의 기사는 너무 오래된 가전이라 부품이 없다며 “올곶은 선비로 할까요? 바람둥이 신사로 할까요?”라며 엉뚱한 질문을 했다. 무슨 말인지 몰라 당황해하는 내게 부품이 없으니 풍향 조절 스위치를 고정이나 회전 중에 선택하면 맞춰줄 수 있다고 했다. 많이 쓰는 쪽으로 하는 것이 후회를 줄인다고 조언 했다. 친절하고 재치 있는 기사님 덕분에 한참을 웃었다. 금성이는 바람둥이 신사가 되어 180도 회전만 할 수 있어 방안 구석구석을 바람 몰이하고 있다.
금성이는 대부분을 뒷방 늙은이처럼 안방에서 보내지만 거실 에어컨이 돌아갈 때면 가끔씩 불려나가 실내 공기를 낮추는 역할도 한다. 나는 엄마 생각이 나게 하는 이 녀석이 좋다. 힘이 센 한일이는 들인지 몇 해 안 되어서 난 가벼운 고장 이후로 가끔씩 목소리가 커진다. 빨리 열을 식힐 욕심에 강력 파워를 선택하면 주변의 가벼운 것들을 날려버린다. 최신식 오성이는 편리함은 있지만 리모컨을 찾는다고 여기저기 뒤지다 보면 켜기도 전에 열불이 나서 쉽게 가까이 하지 못한다. 엉뚱한 곳에서 리모컨을 발견하면 한숨까지 나오게 만든다. 오랜 세월 열심히 일한 훈장으로 장애판정을 받은 금성이는 회전만 시킨다고 투덜거리는 법 없이 항상 조용히 돌아가며 골고루 바람을 보내준다. 어찌 보면 바람둥이 신사라는 말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월의 깊이로 조용하게 주변을 살피고 챙기는 집안의 대들보 같은 어르신의 모습을 닮았다. 이런 어른이 주위에 있어 조언을 구할 수 있다면 팍팍한 삶에서 열 받는 일들도 식혀줄 수 있을 것이다.
무더운 밤이면 혼수품 장만에서는 열외가 되었지만 신바람을 일으키며 순풍으로 더위를 잊게 해주는 금성이를 발밑에 둔다. 바람둥이 신사의 사랑스러운 시선을 받으며 잠자리에 든다. 누가 이 배나온 40대 아줌마에게 바람 같은 시선을 보내겠는가. 적당한 바람은 조용히 하루의 열기를 내려준다. 행복한 밤이다.
<한국산문> 2012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