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라는 지명은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 형제에게서 유래한다. 그 형제가 기원전 753년 5월, 티베르 강 인근의 팔라티노 언덕에 성을 쌓으면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쏟아지는 오후의 태양이 뜨겁다. 포로 로마노(Foro Romano)에서 바라보는 햇살이 무색하리만치 한 줄기의 찬바람이 캄피돌리오 언덕을 내려가고 있다.
포로 로마노 동쪽엔 콜로세움이 웅장하게 서있다. 서쪽엔 테베레강이 흐른다. 남쪽엔 팔라티노 언덕과 북쪽엔 캄피돌리오 언덕이 자리 잡고 있다. 팔라티노 언덕에는 초대 왕 로물루스가 머물렀던 왕궁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단지 그로부터 700년 뒤에 세워진 도무스 아우구스투스의 형체는 남아 있다.
아우구스투스가 기원전 63년 대저택으로 지은 도무스 아우구스투스는 서로마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로마 황제들의 거주지가 되었다. 영어로 왕궁을 뜻하는‘팰리스(palace)’는 이 팔라티노에서 나왔다. 팔라티노 언덕 아래에 포로 로마노 즉, 고대 로마 광장이 길게 뻗어 있다. 유적지에 흩어진 바실리카와 시저의 신전, 새틴신전, 베스타 신전, 카스토르와 플룩스 신전 등에서 로마인의 종교상을 엿보게 된다.
또한 최고 정치기관인 원로원이 있던 곳에서 키케로와 안토니우스, 명장 카이사르가 연설을 했다. 줄리어스 시저인 그의 명언으로는“주사위는 이미 던져 졌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가 있다. 그의 연설이 살아서 호흡하는 폐허가 된 포로 로마노. 최초의 스톤골룸(Stone Golem) 세워진 이곳엔 죽은 망령들이 떠돌고 있다.
스산하고 황량한 바람만 풀풀 날리는 이곳이 포럼(Forum)의 근원지이다. 포럼은 토의의 한 방식이다. 사회자의 지도 아래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이 간략한 연설을 한 다음, 청중이 그 내용에 대하여 질문하면서 토론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로마는 도시마다 이 포룸(Forum)을 두었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에는 이곳이 토사에 묻혀버렸다. 그 후에는 성당과 별장, 요새 등을 세우기 위해서 이곳의 건물을 뜯어다가 건축자재로 사용했다고 한다.
폐허에 남겨진 나무들만이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독하고 쓸쓸한 풍경 앞에 고개를 숙인 채 깊은 상념에 잠겨 있다. 라파엘로는 폐허가 된 이곳을 보고“1500년 동안이나 끄떡없이 굳건하던 고대 로마의 건물들이 불과 한 달 만에 이렇게 해체되어 버리다니…”라고 슬퍼했다. 나 역시 슬펐다.
옛 시대의 위용을 마음껏 구가하던 건물들이 새워졌던 이곳에서 고대 로마의 웅장함은 느낄 수가 없다. 그저 인생무상만을 느낀다. 하찮은 일에 아옹다옹하며 싸울 일이 아니다. 다 지나가면 폐허가 되어 무너진 흔적만 남길 것이기에…….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경쟁하고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망령들이 떠도는 포로 로마노에서 동쪽으로 내려오니 로마의 영혼들이 부르는 웅장한 콜로세움이 서있다. 원형 경기장 이곳에서 백일 동안 계속된 최초의 개막 경기에는 1천명의 검투사와 9천 마리의 맹수들이 등장해서 살해되었다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박해 당했던 영화 <<쿠오바디스>>, <<벤허>>도 생각난다.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콘스탄틴 대제가 세운 개선문도 콜로세움 옆에 얌전하게 서있다. 로마에는 눈을 돌리며 걷는 걸음마다 보물들이 지천이다. 역사의 장면을 묵언으로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저 건물들이 그 시대를 말하고 있다.
붉은빛 노을이 하늘을 가득히 채운 거리를 걸어서 호텔로 돌아오니 하루 일정이 끝났다. 많이 걷고 보면서 위대한 로마 한 귀퉁이를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그 로마를 뒤로하고 내일은 피사의 사탑이 있는 밀라노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