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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장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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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명적 이름 [자기소개서]    
글쓴이 : 장정옥    12-05-31 15:39    조회 : 4,465
운명(運命)적 이름 
 
                                                                                                                                                      
                                                                                                                         장 정옥

 
  가을이다.
  창문을 열고 ‘자기소개서’를 쓰려 책상 앞에 앉았는데 시원한 바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5층까지 올라온 오동나무 이파리들이 뭐라 계속 조잘대고 있지만 귀 기울이지 못하는 것은 나 역시 우리가 지닌 민족 특성 중 하나인 소심함의 유전을 여지없이 이어 받았으므로 자신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어지럽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張貞玉” 이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내 이름에도 사연은 있다.  그것은 “貞玉”이라는 운명에 이미 예정되어 있음을 증명 해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내가 태어나고 두 달이 지나자 아버지께서는 막내딸인 나를 호적에 입적하려 이름을 지으셨다.  그 이름은 “張貞秀” 였으며 뜻풀이대로 곧고 빼어난 아이가 되라는 아버지의 염원이 듬뿍 담긴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런 것이 바로 운명의 장난이라는 것인가, 아니면 운명은 태어나기 전 이미 정해졌다는 진리인가.
  아침 일찍 면사무소에 가시려던 아버지는 다른 급한 볼일이 생겨서 대신 이장님께 내 이름석자를 종이에 써서 건네주시며 등록을 부탁하셨다.  면사무소에 도착하신 이장님은 다른 일을 마치신 뒤 호적계에 들러서 종이를 꺼내셨다.  그러나 이름이 적힌 종이는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고 그 난감한 상황에서 이장님은 그냥 돌아올까 하는데 호적계 직원이 우리 집 호적부를 들춰 보면서 하는 말,
 “이집 딸이 네 명이나 되는데 전부 ‘貞’자 돌림이네요. 정희, 정현, 정화, 정민... 그러니 막내는 정옥이라 해도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곧고 빼어난 아이의 운명에서 단단한 구슬의 아이로 자라나게 되었다.  아버지께서는 참 많이 속상해 하셨지만 그래도 내 이름을 사랑하셔서 어려서는 “구슬아” 하고 부르시곤 했다.  후일 이름에 대한 사연을 전해들은 나는 언니들 이름에 비해 촌스럽다 투덜대고 얼굴도 모르는 이장님을 원망하며 마흔일곱 해를 지내왔다.
 
  사람은 이름대로 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자녀들이 태어나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름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던가.  나 또한 단단한 구슬이라는 의미를 충족시키려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기에 다른 사람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 성격 하면서 세상을 살아왔다.
  어려서는 울음을 하도 그치지 않아 할머니께서 성인도 한사람 들어 갈만한 빈 간장 항아리 속에 넣어 두셨는데 더 크게 우는 바람에 항아리가 울려서 식구들이 깜짝 놀랐다고 한다.  내 기억에는 없는 터라 대꾸할 가치는 없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많이 우는 아이가 노래를 잘한다는 말은 허구임이 나를 통해 입증됐다.  아무튼 돌이 지나고 한살 두 살 나이가 들어가며 어머니는 고사하고 아버지도 이겨내지 못한 내 고집은 아직도 언니들과 모여 앉으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그렇다고 내가 물불 못 가리는 안하무인은 절대 아니다.  단지 내게 유독 정의감과 책임감을 다른 사람보다 좀 더 배정해 주신 것과 흑 호랑이띠의 강인(?)한 사주와 함께 B형이라는 삼박자를 고루 갖추게 하신 신의 섭리일 뿐이다. 그래서 여자운전자만 골라 끼어들기 하는 얄팍한 남자들이나, 별것도 아닌 일에 폼 잡는 허접한 이들, 무슨 일에든지 목소리만 크면 된다며 무식은 용감이라는 공식을 지닌 이들에게 참음의 미덕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다.
  때론 가슴이 벌렁거릴 정도로 무서운 상대에게도 한마디 하고야 마는 성격인데 그것도 서른을 넘기면서는 조금씩 힘이 빠져가고 이제는 내 일이 아니면 참견하지 않는 것, 아니 내 일에도 큰 손해나 불미스럽지 않은 일이라면 안 보고, 안 듣고, 입 다물고 살고 있다.
  실은 이렇게 내가 이전과 상반된 모습을 지니게 된 이면에는 밥 먹는 속도가 나보다 꼭 갑절이 더 걸리는 남편이 느릿하게 던진 한마디 때문이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시기라는 것이 있는데 항상 성질 급한 놈이 정의라는 이름을 빙자해서  일을 망치거나 크게 벌려 놓지.  그네들은 기다림의 미학을 몰라.”
  나는 깨달았다.  정의감과 책임감은 좋은데 그 놈의 급한 성질이 문제였음을 말이다.

 
  농촌선교의 꿈을 이루려 시골에서 목회사역을 하셨던 아버지께서는 나를 교회 반주자로 키우고 싶어 하셨다.  피아노를 제법 수월하게 습득하는 나를 보고 선생님께서는 대학 교수님 한분을 추천해 주셨는데 첫 레슨 받으러 갔던 날, 내 소리를 다 듣고 나신 선생님께서는 말이 없으셨고  욱 하는 성질만 가졌을 뿐 수줍음의 극을 달리던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정옥이는 열정이 넘치는구나. 내가 보기엔 피아노보다 바이올린이 더 잘 맞을 것 같다.”
  11살이 시작되던 그 해 겨울,  하루걸러 하얗게 쌓인 눈은 털 장화 속까지 넘쳐 들어와 양말이 젖어도 발이 시린 줄 모르고 교수님에게는 피아노를, 그 분의 남편이신 교수님께는 바이올린을 배우러 달려가곤 했다.  이년 뒤 바이올린을 전공으로 삼고 그렇게 시작된 음악공부가 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그로인해 아이들과 보냈던 많은 시간들은 그 작은 영혼들을 통하여 나를 더 나 되게 하는 시간들로 기쁘고 서럽고 보람되고 힘들고 행복하였다.
 
   2008년 9월 3일,  내가 수필 반에 등록할 때 등단의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글 쓰는 법을 배우면 다른 글을 읽을 때 더 빠른 이해와 넓은 견해를 지닐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런데 의외로 너무나 실력이 뛰어나신 분들과 같이 하게 돼서 한편으론 놀랍고 한편으론 영광으로 생각하며 좋으신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을 감사하고 큰 행운으로 여기고 있다.  모쪼록 뒤처지는 모습이 보여도 격려해 주기를 바라며 나는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의 본분을 다 할 것이다.

  오늘은 언젠가 신문에서 본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시 한 구절이 딱 들어맞는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2008.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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