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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횡재    
글쓴이 : 공인영    12-06-23 15:03    조회 : 3,585
횡재
 
 
 
  평범한 사람들에게 굴러오는 횡재란 어떤 것들일까. 

  초등학교 시절, 그러니까 먼지 뽀얗게 일어나던 그때는 국민 학교라는 간판을 달던 때다. 수업을 마치고 덜렁 덜렁 신주머니 흔들며 집에 오는 길. 까르르 넘어갈 듯 웃으며 조잘대던 친구들과도 하나 둘씩 헤어지고 마지막 남은 영신이마저 교회 옆 언덕길에서 손 흔들며 꼴깍 사라졌다.
  금세 심심해진 난 찻길을 가로질러 공원 철조망 기둥에 이마를 대고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숲을 들여다보다가, 동네 풍경에도 기웃거리다가 노래나 흥얼거리며 돌아오는 중이었다.
 수시로 퍼붓던 장맛비에 평평했던 길들이 움푹 팼다. 아직도 군데군데 질척한 흙길을 피해 디디며 그 틈새마다 기웃거린 건 혹시나 댕그랑, 동전 하나 주워볼까 해서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가끔씩 벌어진 틈으로 열기를 내보내며 몸을 식히던 대지가 동전 하나씩 덤으로 밀어 올리곤 했기 때문이다. 지렁이가 반 도막난 채로도 꿈틀대는 그 옆에 얄밉게 박힌 동전이 왜 그리 눈에 잘 띄는지. 그게 늘 신기한데다가 어쩌면 초능력 걸(girl)이 아닐까 행복한 상상을 하면 기분마저 좋아지면서 말이다.
 막 지나친 젖은 흙 속에서 낯설지만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어린 눈에도 그건 마치 본능 같아서 살살 뒷걸음질 쳐 발밑을 보니 오마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푸른빛의 종이돈이다.
  얼마짜리인지는 세월에 바래버렸다. 그저 가물거리는 중에 종이돈의 네모진 윤곽과 푸른 빛깔만이 충격적으로 남았을 뿐이다. 고무줄에 묶여 반쯤 접힌 다발로 흙속에 낀 채, 그저 동전 하나 건져 알사탕이나 빨아볼까 하던 차에 걸려든 저 돈을 아, 어쩌란 말이냐. 
  쿵쾅쿵쾅! 곁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릴까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들이 어느 새 눈치를 채고 다가와 어린 나를 확 밀치고 뺏어 갈 것만 같았다. 온몸에 슬그머니 힘이 들어가고 눈은 사방을 경계하지만 그보다 이미 낡은 운동화의 오른발이 기특하게도 돈 꾸러미를 지그시 눌러 감추고 있질 않는가.
   주울까 말까. 가질까 말까. 주워서는 어떡하지. 너무나 큰돈에 놀란 생각은 그 잠깐 사이에도 불꽃이 튄다. 남의 것을 가지면 안 된다던 선생님 말씀이 왜 하필 그 순간 자꾸 떠오르는지 귀를 막고 싶었다. 꼼짝없이 선 채로 고민하다가 결국 그 장면 그대로 정지시킨 채 냅다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경사진 긴 언덕을 함부로 뛰어 내려갔는지 모르겠다. 바람돌이 홍길동보다 더 빨리 달렸으니 단거리 경주였다면 분명 일등을 먹었으리라. 
  컥컥대며 대문 안으로 뛰어들자 엄마는 웬 소란이냐고 눈치를 주신다. 아랑곳없이 겨우 숨 한번 쉬고 이 엄청난 사건을 그 품에다 일사천리로 토해내니,
  ‘일단 가져와야 파출소에라도 맡기지'. 
   ‘오케이! ’ 기다렸던 엄마의 짜릿한 이 한 마디를 등 뒤로 받아넘기며 몸은 벌써 대문 밖 좁은 골목을 내달린다. 오냐, 곧 가마. 조금만 기다려라. 저 돈을 잃어버린 주인에게 찾아주는 난 얼마나 착한 아이일까. 그래서 큰 상을 줄지도 몰라. 혹시 저 돈다발에서 몇 장 쓱 뽑아 주며 머리를 쓰다듬지 않을까. 어린 맘에도 생각이 여기까지 앞서니 숨이 턱에 닿는 일은 일도 아니다. 발갛게 상기된 얼굴에 실실 웃음까지 나는데 참을 수가 없다. 언덕 위 고지는 그렇게 재빠르게 다시 점령되었다. 그런데
 ‘아, 아, 아, 어, 어, 어, 없네. 어, 없어졌네. 으흥 으흥...'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아주 잠깐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 눈앞의 돈다발이 허락도 없이 사라졌다. 꿈처럼 허무하게 연기처럼 순식간에. 풀썩 주저앉아 축축 늘어지는 신음을 내며 연신 엄마만 불러댔다.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이 뭔지 모르게 분해죽겠는데 그런데 이상하게 맘 놓고 엉엉 울 수가 없는 것이었다. 
   착한 마음으로 살아도 인생에 선물처럼 오는 횡재란 별로 없다는 걸 그때 알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착하게 사는 건 삶의 당연한 태도여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그러고도 날아드는 횡재가 있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우연하고도 굉장한 재수라는 것까지. 
  그날 밤 저녁 밥상머리에서 너무도 억울했던 한낮의 사건에 대해 또 한 번 흥분했을 것이다. 찜해 놓은 것을 집어간 아주 나쁜 놈과 그 기막힌 횡재의 엇갈림에 대해서 침을 튀며 안타까워도 했을 것이다. 
  그 후로도 아직까지 횡재란 없다. 아니 감히 꿈꾸지도 않는다. 오히려 평범하고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그런 것들이 비켜가기를 바란다. 일확천금에 놀라 자빠질 일이 두렵기 때문이다. 복권 한 장 당첨되는 것처럼 엄청나기보다 그저 열심히 사는 끝에 간혹 하나씩 걸리는 마음의 경품 같은 거면 좋겠다. 그러니 길을 잃고 굴러다니는 횡재는 차라리 발로 뻥 차버려도 좋은 것이, 그 뒷감당 잘 하는 사람들을 아직까지 별로 보지 못한 까닭이다. 
  며칠째 동전 몇 개 굴러다니는 아이들 방을 그대로 두고 본다. 두 녀석 중 누구도 아직까지 그 동전을 줍지 않는다. 어린 시절 우리에겐 충만했던 저 횡재를 이제 그만 주워 배고프다고 칭얼대는 돼지에게나 주어야겠다.
                                                                           <에세이플러스/ 2009.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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