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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를 들고 먼곳을 보며    
글쓴이 : 문경자    12-06-24 19:05    조회 : 3,867
                                             고개를 들고 먼 곳을 보며
                                                                                                   문경자
 
   자야와 나는 앞 뒷집에 살았으며 눈만 뜨면 만나서 재미있게 지낸 유일한 동무였다. 걔네 엄마랑 우리 엄마는 너무도 절친한 사이라 무슨 일이든지 의논을 하며 잘 통하는 사이였으니 우리도 친할 수 밖에 없었다. 자야 엄마는 얼굴이 작고 키는 그 시절에 맞추어보면 큰 키는 아니고 그냥 우리가 보기에 어른들 축에 끼는 그런 정도의 키에다 비녀를 꽂은 머리는 엉성하고 볼품없는 강아지 꽁지를 틀어서 올려놓은 머리 같았다.
 
   자야네 통시는 다른 집 보다 크게 만들어 그 모양이 고깔처럼 생겼다. 통시는 똥 누면 통하고 오줌을 싸면 시-하고 떨어 진다고 그렇게 불렀다 한다. 믿거나 말거나 입구는 밖에서 보면 겨우 얼굴이 가려질 정도이고 급하게 뛰어가보면 시커먼 머리통이 보이니 여자 남자 구분보다는 그저 누군가 큰일을 보고 있구나 짐작은 할 수 있어 실수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낡은 가마니에 새끼줄을 이용해 양쪽으로 구멍을 내어 하나씩 묶어 달아놓은 문은 바람이 불면 안에 있는 것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연극 무대가 되기도 하였다. 그곳에 앉아 고개를 들고 먼 데를 보며 봄이면 나비를, 여름이면 매미울음소리를 들으며 매롱매롱하고 흉내도 내보고, 가을이면 비행하는 고추잠자리를 보며, 겨울에는 함박눈이 내리는 것을 감상 하기도 했다. 통시 안에서 눈을 부릅뜨고 응~~응 하고 힘을 주는 순간 눈에 비친 먹잇감을 구하는 거미와 똥파리의 처절한 싸움도 볼 수 있었다.
 
  통시에 내용물이 가득 차면 자야 아버지는 바가지를 긴 막대기에 매달아서 그것들을 퍼서 장군에 담는다. 그런 날은 누구네 집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서로 눈을 흘기며 저~집 하고 지나간다. 자기네 것은 향기이고 남의   집에서 나면 숭악한 냄새로 코를 막고 오만상을 찌푸리며 가는 꼴은 그것이 무서워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시비하지 말고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 눈치를 서로 주고 받았다.
  어릴 때는 사람들이 농사만 짓고 사는 줄 알았고 어른들은 날이 새면 논과 밭에서 살다시피 하여 그 일을 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 줄 알았다. 땅거미가 질 때면 일을 마치고 들어 오시는 부모님의 그을린 얼굴이 불쌍해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른이 되면 저 일을 해야 하니 차라리 이렇게 살 바에는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농사일이 싫어서 젊은이들이 밤새 몰래 동네를 빠져 나갔다는 소문도 간간이 들리기도 하고 어른들이 하는 말 속에 얼마 못 참고 집으로 돌아 올끼 뻔하다며 담뱃대를 물고 한 숨을 쉬는 것을 많이 보았다.
며칠이 지나면 뉘 집 아들이 집으로 왔다고 하네, 송충이는 솔 잎을 먹어야지 하며 부모가 남겨준 땅을 일구고 사는 것이 제일이라 여기는 어른들의 이마에는 주름 살이 늘어 나기도 하였다.
 
  시골의 그곳은 무서운 이야기도 많았었다. 어떤 집의 통시는 몽달귀신이 나오기도 하고, 빨간 손을 줄까 하얀 손을 줄까 하는 무서운 신의 손이 올라온다는 옛날 이야기. 비가 오는 여름 밤은 어두워 소복을 입은 여자가 히히 웃으며 나오고, 달 빛이 하얀 밤에는 긴 머리를 풀어 헤친 처녀 귀신이 숨어 있다는 등 많은 얘기가 있었다.
   골목길에 돌담을 쌓고 그 옆에는 향기 품은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여름은 호박을 심어 넝쿨이 뻗어나가 다 덮어 버리면 외관상 나타나지도 않았다.
 
  오늘날 그런 곳을 찾기가 어려워졌을 뿐만 아니라 시골 집들도 현대식으로 바뀌어 사방을 둘러 보면 생리 현상을 처리 할만한 곳은 없어져버렸다.
 
2010년 제29호 합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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