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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댓 숟갈에 담긴 사랑    
글쓴이 : 조헌    12-06-26 12:01    조회 : 3,702
 
열댓 숟갈에 담긴 사랑

                                                                          조     헌

 ‘엄마’라는 단어의 동의어(同義語) 중에 ‘고향’이란 말을 넣을 수 있다면, ‘엄마’의 심리적 유의어(類義語) 속엔 ‘따뜻한 밥 한 그릇’을 포함시켜도 되지 않을까? 우리가 고향을 떠올릴 때마다 넉넉한 엄마의 품을 느끼는 것처럼, 허기져 지치고 고달플 때 고슬고슬 따뜻하게 지어진 밥 한 그릇은 언제나 푸근한 엄마의 마음을 떠올리게 한다. 내게도 밥 때문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엄마에 대한 속 아픈 기억이 있다.

 “얘야, 이젠 일어나야 하는데 딱해서 어쩌니! 가엾어서 이를 어째!” 엄마는 아까부터 내 방 앞에서 통사정을 하고 계셨다.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새벽 4시 40분, 입시학원의 새벽반 수강을 위해 날 깨우던 엄마는 일어나질 못하고 쩔쩔매는 나에게 ‘가엾어서 어쩌니!’ 소리만 반복하며 맥없이 서 계셨다. 하지만 한창 나이에 쏟아지는 잠은 쉽사리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냉큼 일어나면 좋으련만 마냥 께적대는 나 때문에 방과 부엌 사이를 몇 번이나 오가며 엄마는 애를 끓였다.
 한참이나 엄마의 진을 뺀 나는 벌컥 방문을 열어젖히고 “어쩌긴 뭘 어째! 일어났다니까!”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신경질을 있는 대로 부리면 엄마는 죄지은 사람처럼 한쪽으로 비껴서며 안타까워 연신 혀를 찼다.

 비몽사몽간에 겨우 얼굴에 물을 찍어 바르고 정신없이 책가방을 싸고 있을 무렵, 어이없는 일이 한 번 더 벌어졌다. “한 술이라도 뜨고 가야 해. 속이 든든해야 덜 추운 법이야.” 자식들에게만은 더운밥 먹이는 것을 철칙으로 아셨던 엄마는 따끈한 국과 이제 막 지은 밥을 내오는 거였다. 지금처럼 간편한 조리기구가 있던 시절도 아니고 그저 연탄불이 아니면 답답하기 짝이 없는 석유곤로가 고작인 시절에 왜 이리 생고생을 하시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누가 이 시간에 밥 먹겠다고 했어! 도대체 지금이 몇 신데 이걸 들고 와요” 잔뜩 암상을 떨며 소리를 지르면 “빈속으로 보내고 나면 온종일 맘이 상해서 그래. 어서 잠깐 입이라도 다시고 가!” 엄마의 말은 차라리 애원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당시 난 왜 그리도 철딱서니가 없었는지, 몇 숟갈 먹는 흉내만 내도 좋았으련만 번번이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후다닥 대문을 나서기가 일쑤였다. 그러면 신발도 신지 못한 채 쫒아 나온 엄마는 ‘원기소’ 한주먹을 주머니에 찔러주었다. ‘원기소’는 그때 유행하던 영양제로, 반쯤 졸면서 씹어 먹던 그 고소한 맛이 아직도 입에 생생하다.

 그러던 며칠 후,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든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진 어느 날 새벽이었다. 그 날도 여느 때처럼 한바탕 법석을 떤 후에야 겨우 일어나 학원 갈 준비를 하는데 엄마는 또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그러나 그날 엄마가 들고 온 상엔 여느 날과는 달리 상보(床褓)가 얌전히 덮여있었다. “아침밥이 웬만한 보약보다도 낫다는데 도대체 먹질 못하니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네!” 밥상을 내려놓고 숭늉을 가지러 간 사이, 이건 또 뭔가 싶어 나는 무심코 상보를 들춰 보았다. 순간 목구멍에 무언가 울컥 치미는 것을 느끼며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놀랍게도 밥상엔 열댓 개가 넘는 수저가 줄지어 놓였는데 수저마다 일일이 밥을 퍼 그 위에 반찬을 올려놓은 것이 아닌가. 생선살과 나물 그리고 장조림과 김치까지 골고루였는데 반찬이 올려져 있지 않은 서너 개의 수저 옆에는 갓 구운 김이 댓 장 놓여있었다. 나는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떠 놓은 수저들이나 비우고 가! 오늘은 날이 추워 꼭 먹고 가야 해!” 엄마는 굳게 맘을 먹은 듯 옆에 앉아 단단히 채근을 하는 거였다. 난 그만 먹먹한 가슴을 주체할 수 없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수저위에 놓인 밥을 꾸역꾸역 다 먹었다.
 “엄마! 낼부턴 이러지 마! 내가 꼭 먹고 다닐게. 알았지요!” 그날도 ‘원기소’ 한 움큼을 들고 쫓아 나온 엄마에게 나는 말했다. 

 엄마는 자식에게 밥을 주는 존재이다. 우리는 누구나 엄마의 뱃속에서 열 달 동안 밥을 받아먹었고, 세상에 나와서도 엄마의 젖을 먹고 자라며 그 후에도 엄마가 만들어 주는 밥을 먹고 크게 된다. 이렇듯 엄마는 자식이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음식을 서로 나누는 사이였기에 자식의 밥에 유별난 관심을 쏟는 것은 아닐까.
 내가 군대생활을 하던 3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끼니마다 내 밥을 부뚜막에 떠놓으며 배곯지 않기를 기원했다는 엄마! 그리고 제대해 돌아올 때까지 매번 그 식은 밥을 드셨다던 엄마의 정성! 그건 아마 관심을 넘어 집착에 가까운 것이며, 이 끝없는 근심이야말로 엄마에겐 끊을 수 없는 탯줄처럼 자식과 연결된 고리일 것이다.

 옛날 중국에 양보(楊補)라는 청년이 도를 닦으러 집을 떠났다고 한다. 사천으로 가던 중, ‘어디를 가느냐?’고 묻는 노인을 만났다. 양보가 ‘무제보살(無際菩薩)의 제자가 되러 가는 길’이라 했더니 노인은 ‘보살을 찾아가느니 차라리 부처를 찾아가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했다. 양보가 ‘그 부처가 어디 있는지 가르쳐달라’고 하자 노인은 이렇게 일러 주었다. “지금 당장 집으로 가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신발을 거꾸로 신은 채 뛰어나오는 사람이 있을 걸세. 그분이 바로 부처님이라네.” 양보가 집으로 돌아오니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문을 두드리자 어머니는 옷 입을 새도 없이 담요를 둘둘 말아 몸을 가린 채 신을 거꾸로 신고 뛰어나왔다. 그때서야 양보는 ‘부처는 집안에 있음(佛在家中)’을 깨닫고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고 한다.

 지난 ‘어버이 날’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오후가 돼서야 부모님을 찾아뵈었다. 볼 때마다 내 기색을 꼼꼼히 살피는 엄마는 “하는 일이 힘들어서 그러냐? 얼굴이 덜 좋아 보이네.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는 거지?”라며 등을 쓰다듬는다.
 그날마저도 어김없이 나의 부처님께선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은 자식이라는 짐일 게다.’라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내 밥을 걱정하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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