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피아노>
조 헌
카페<피아노>엔 피아노가 없다. 그나마 한쪽 귀퉁이가 깨진 채, 밖에 매달린 간판에 그려 논 작은 피아노가 고작이다.
지방의 낯선 도시, 벌교의 겨울밤은 온통 바람소리뿐이다. 골목 안 허름한 2층 건물의 나무층계를 올라가 문을 열면 퀴퀴한 냄새와 함께 카페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왼쪽으론 두 세 명이 앉을 수 있는 기역자 모양의 작은 바가 있고, 홀에는 4개의 탁자가 칸막이로 나뉜 채 놓여 있다. 탁자는 시골 중국집 것만도 못하게 낡았지만, 걸맞지 않게 큰 의자들은 불편할 정도로 푹신했다.
친절하지만 침울해 보이는 주인 여자는 한 평 남짓 되는 바 안에서 간단한 안주를 만들어 술과 함께 내다주었다. 한쪽 다리를 조금씩 저는 그녀의 굼뜬 걸음걸이에서 오히려 시골 카페의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1월말에서 2월초, 전라도 벌교에는 꼬막이 제철이다. 여자만(汝自灣) 갯벌에서 채집된 참꼬막은 맛이 유별나 한번 먹어본 사람이라면 문득문득 그 생각이 간절해진다.
“새꼬막은 물속에 살지만 이 참꼬막은 뻘에서 크기 때문에 하루에 한 번씩은 햇빛을 보게 되거든. 그래서 껍질도 두껍고 살이 쫄깃해서 맛이 아주 그만인 거야.” 이 고장 사람들의 꼬막자랑은 언제나 길게 늘어졌다.
벌교를 배경삼은 소설 <태백산맥>에서도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한 맛’이라고 알듯 모를 듯 묘하게 그 맛을 소개해 놓고 있다.
언젠가 후배 C가 신문에 소개된 꼬막 기사를 읽었다며 느닷없이 별미여행을 꼬드겼고, 서울서는 당일로 다녀 올 수가 없는지라 1박2일 날짜를 잡아 다니기 시작한 것이 벌써 여러 해째다. 이젠 한겨울이면 쫄깃한 꼬막 생각에 내가 먼저 달력을 뒤져 날짜를 정했고, 동행도 서너 명으로 늘어났다.
요즘은 길이 좋아 서둘러 출발하면 점심때쯤이면 벌교에 도착한다. 저녁에 먹을 꼬막과 소주를 생각하며 갯벌로 바다 구경을 나간다. 이때쯤 여자만은 천지가 꼬막잡이로 성시를 이룬다. 대부분이 늙은 아낙들로 매운 겨울바람을 맞받으며 보기에도 힘겨운 널배를 뻘 위로 밀고 다니는데, 왼손으론 널배 앞에 고정된 줄을 잡고 왼 무릎을 하단부에 괸 채로 오른 발로 뻘을 차며 미끄러지듯 갯벌을 오간다. 그러다 머리빗처럼 생긴 어구를 뻘 속 깊숙이 박았다 들어 올리면 한 됫박 가량의 꼬막들이 걸려 나온다. 그러고 보니 참꼬막은 ‘죽을 둥 살 둥’ 널배를 밀고 다니며 아낙들이 건져 올리는 고통의 산물이었다. 이를 악물고 뻘 속을 긁어대는 그들의 노고가 고스란히 담겨있어 이토록 찰지고 쫄깃한 것인지.
아낙들은 마지막 꼬막을 바지선에 부리고선 흙으로 범벅이 된 몸을 뻘 물로 닦아낸다. 어느 틈에 스며들었는지 갯벌은 밀물로 엷게 찰랑거린다. 그리고 갯벌에 발을 담근 채 소주 한 사발씩을 나눠 마시며 “요것을 묵어야 집에까지 간당께. 젊은 사람들은 심(힘)이 좋응께 기냥 밀고 가제, 우리들은 요것을 묵어야 제우(겨우) 가네. 하도 심들어서 감시로도(가면서도) 움시로(울면서) 가네.” 꽁꽁 얼은 볼을 거친 손으로 부비는 아낙들의 힘겨운 모습은 시찬 겨울바람보다도 더 심란했다.
이젠 단골이 된 식당 아줌마는 “처음엔 양이 조금 많다 싶다가도, 술 한 잔하고 하나 까묵고, 그라다가 또 한잔 마시고 또 까묵고 하면, 요 꼬막이 한정 없이 입 속으로 들어 간당께. 걱정 꽉 붙들어 매고 양껏 묵어도 상관없어. 꼬막 묵고 탈나는 법은 없으니께.” 하며 자꾸 권한 소주에 일행은 모두 얼근해지고 만다.
우리가 처음 카페<피아노>를 찾아간 날도 취기가 꽤 올랐을 때다. 술에 취해 걷던 낯선 거리의 밤풍경도 우리를 들뜨게 했지만, 술 욕심을 부추기는 누군가의 충동질에 불쑥 들어선 곳이 바로 이 집이다. 문을 열자 혼자 있던 여주인은 놀란 표정으로 우리를 맞았고 낡은 전축에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발트슈타인’이 잔물결의 떨림처럼 흘러 나왔다.
“서울서 오셨나 봐요. 요즘 여긴 꼬막 외엔 다른 안주가 없는데.......” 꼬막과 땅콩 한 종지를 맥주와 함께 내려놓으며 그녀는 슬그머니 우리 자리에 앉았다. 고향이 여기냐는 말에 “고향서 술 팔겠어요? 어쩌다보니 흘러들게 됐네요.” 능숙한 손놀림으로 꼬막을 까놓던 그녀의 얼굴은 사십은 족히 돼 보였는데, 무슨 일인지 눈가엔 퍼런 멍 자국이 선명했다.
“여고를 졸업하고 얼마 안 있어 그 사람을 만났죠. 처음엔 수더분한 그의 모습이 왜 그리 좋아 보이던지. 그땐 당장 죽어도 그 사람이 전부였어요. 이제 와 후회한들 소용없는 일이지만........ 하긴 그 악연도 다 내 팔자죠! 채 스무 살도 안 돼 시작된 고생이 아직도 이 모양이니. 남편이 아니라 숫제 원수예요.” 술주정인지 아니면 겨울밤 분위기 탓인지 그녀는 묻지도 않은 자신의 신세타령을 뱉듯 술술 쏟아 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들어오기 전부터도 이미 술에 취해 있었던 것이다. “참 모진 인연이에요. 네 번이나 형무소를 드나들고도 나오면 또 행패를 부리고 이렇게 사람을 패니....... 세상이 넓어도 이 몸 하나 숨길 데가 도무지 없더라구요.” 멍을 가리기 위해 덧 바른 화장과 시종 표정 없이 말을 잇는 그녀의 얼굴은 마치 밀랍 인형 같이 서글펐고, 오히려 우리가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청승맞은 푸념을 안주삼아 맥주를 마셔야 했다.
“어머나! 어서 오세요! 꼭 일 년 만이네요. 기억이 나고말고요. 올해도 꼬막 자시러 오셨나 봐요?” 이듬해 다시 찾은 우리를 대번에 알아본 그녀는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 날은 두 탁자나 손님이 앉아 있었다. 그녀의 환대에 거듭 감격하며 몇 순배 술잔을 돌렸을 때였다. 쿵쾅쿵쾅 나무계단을 거칠게 오르며 고함을 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이내 문이 벌컥 열리고 한 사내가 들어섰다. 갑자기 나타난 그가 혹시 그녀의 남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언뜻 하는 순간, 몸도 가누지 못할 만큼 취한 그 사내는 하얗게 질려 서있던 그녀의 머리채를 대번에 낚아채더니 질질 끌며 문 쪽으로 향했다. 그녀도 악을 쓰며 버티고 대들었지만 그럴 때마다 그의 주먹은 무자비하게 공중에서 춤을 췄다. 민망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술집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아연 실색했고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사이, 사내는 그녀를 끌고 나가고 밖에서는 더 심한 욕설과 함께 고함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서방이 감옥서 나왔다더니 저 놈인가 보구먼.” 나이 든 손님 하나가 혀를 차며 말을 했다. 갑자기 조용해진 카페 안은 슈만의 피아노 환상곡이 잡음과 함께 작게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녀를 본 것은 그 날이 마지막이었다. 이듬해 다시 찾아갔을 때는 간판만 남은 채 카페<피아노>는 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힘겹지 않은 삶이 어디 그리 흔하랴! 누구나가 다 견딜 만큼씩의 고통을 등에 지고 비틀거리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지. 그래서 인생을 땐스보다는 씨름에 가깝다고 하는 걸게다. 살아갈수록 걱정은 산처럼 쌓이고, 근심은 강처럼 깊어지는 게 인생이니 말이다.
간간하고 졸깃졸깃한 꼬막을 씹으며 꼬막잡이 아낙들의 고단한 모습과 카페 주인의 절망적 표정이 자꾸 겹쳐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먹을수록 알큰하고 배릿한 맛은 질기고 모진 아낙들의 삶을 그대로 씹는 것만 같아 가슴 한쪽이 내내 시려왔다.
겨울 밤바람이 심하게 분다. 살다보면 무엇인가 꼭 있을 것 같고 또 참고 지내다보면 조금씩은 나질 것 같은 기대감에 혼신을 다해보지만, 끝내 아무 것도 쥐지 못한 채 돌아가는 우리네 인생처럼 알맹이가 없는 쭉정밤같이 카페<피아노>의 낡은 간판은 바람에 맥없이 흔들리고 있다. 삶은 대체로 우울하고 가끔씩은 울컥 치미는 아픔 같은 것은 아닐까.
달은 만월에 가까웠지만, 하늘은 내내 검푸르다. 숙소를 찾기 위해 역 앞길을 걷던 내 마음도 하늘 빛 같이 무겁게 가라않았다. 내년 이맘때, 다시 이곳을 찾게 될지 지금은 생각하고 싶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