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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반만 지킨 약속    
글쓴이 : 조헌    12-06-26 12:07    조회 : 3,903
 
절반만 지킨 약속

                                                                        조      헌

  용서는 용서받는 사람을 자유롭게 만든다. 아니, 용서하는 사람을 더더욱 자유롭게 해 준다. 용서를 하고 나면 마음속에 들끓던 화가 녹아내리고, 모욕과 증오의 쓰린 상처가 말끔히 아문다. 그래서 용서의 최고 수혜자는 용서받는 자가 아니고, 용서하는 바로 그 사람인 것이다.

  쪽빛 가을하늘은 높고 투명했다. 구름 한 점 없는 코발트색 창공을 쳐다보고 있으면 맑고 곧았던 친구 정현이가 떠오른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전학 와서 나와 짝꿍이 된 후,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 2학년 캐나다로 떠날 때까지 늘 붙어 다닌 둘도 없는 친구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님이셨다. 당시 우리 동네엔 기독교재단에서 운영하는 커다란 기숙사(仁友學舍)가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가 이곳 관리자로 부임해 오셨던 거다. 그는 기숙사 안쪽에 별도로 지어진 사택(舍宅)에서 부모님, 그리고 인형같이 생긴 여동생과 살았다. 키는 큰 편이었지만 야위었고, 웃는 얼굴이 순해 보였다. 하지만 매사 적극적이며 올곧았고 무엇보다도 정직했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다. 학교가 파하면 의례히 기숙사 마당에서 놀거나, 세계지도가 붙어있는 그의 방에서 책을 읽곤 했다. 깨끗이 정돈된 거실 한편엔 피아노와 전축이 놓여있었고 한쪽 벽은 갖가지 책들로 빼곡했다. 친절한 그의 어머니는 갈 때마다 맛있는 생과자와 과일을 예쁜 접시에 담아 주셨다. 나는 그에게 자전거와 스케이트 타는 법을 배웠는데, 꼼꼼하게 일러줄 때면 종종 형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너 지금 긴장하고 있지? 또 입술을 깨물고 있네.” 그는 나를 툭 치며 자주 놀려댔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심각하거나 당황하면 아래 위 입술을 깨무는 버릇이 있다.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딴 사람 같아! 그리고 좋아 보이지도 않아!”하며 나무라는 것이다.
  둘 다 말수는 적었지만 고등학생이 된 후론 대화를 많이 했다. 장차 좋은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나에게, 그는 처칠이나 케네디 같은 훌륭한 정치인이 꿈이라했다. 하지만 신학공부를 권하는 아버지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자주 투덜거렸다. 그 밖에도 우린 비록 설익었지만 인생에 대해서도 제법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눴고, 신상에 관한 일도 숨김없이 떠벌이며 깔깔거렸다. 근데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렇게 친히 지내면서도 교회에 나가자는 권유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일이다.
  고등학교 2학년 가을. 경복궁에 가지 않겠냐며 그가 느닷없이 전화를 했다. 뜬금없는 제안이지만 가을 경치가 볼만할 것 같아 따라 나섰다. 고궁의 풍경은 기대이상이었다. 물위에 비치는 경회루의 풍광과 고즈넉이 자리 잡은 향원정의 모습은 그림 같았다. “너한테 할 말이 있어 오자고 했어. 실은 다음 달 우리식구 모두 캐나다로 떠날 것 같아.” 그의 아버지가 선교단체의 책임을 맡게 되어 아주 이민을 간다는 거였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둘은 망연히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야! 너 또 긴장하고 있지? 입술 깨물지 말라니까.” 그의 말에 나는 무슨 이유인지 눈물이 핑 돌았다. “언제 올 건데?”, “그건 잘 모르겠어. 아버지는 내가 미국에서 공부하길 바라셔. 아마 그리 되면 꽤 걸리지 않을까.” 그도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말이야. 우리가 바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오래도록 볼 수 없게 되면, 오십 살이 되는 해 여기서 만나기로 하자!” 이미 수도 없이 생각한 듯 10월 10일 오후 3시라고 날짜와 시간까지 정하는 거였다. “혹시나 해서 그러니까, 정말 꼭 기억해야 해! 알았지!” 스무 살도 안 된 나이에 쉰 살에 만나자는 철없고 황당한 약속. 짐작조차 어려운 30여년 후의 약속이었지만, 당시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에는 그나마 크게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정현이네는 한 달 후 캐나다로 떠났다.

  그 후, 열댓 번쯤 편지를 주고받았을까? 그가 미국으로 떠난다는 편지를 받았을 무렵, 우리도 살던 집에서 이사를 했다. 한두 번 더 편지를 보냈으나 다시는 그의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참 많은 세월이 흘렀다. 매년 어김없이 가을은 오고 10월 10일이 되면 향원정 앞 벤치가 머릿속에 그려지곤 했다.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기르면서도 가을만 되면 아련한 그리움에 말려, 간혹 아내에게 가을을 타느냐는 소릴 듣기도 했다.
  훌쩍 가버린 30여년! 약속의 날이 왔다. 한낱 어린 시절 철없이 한 약속을 정말 믿는 거냐며 딱하게 여기는 아내를 뒤로한 채, 1시간이나 일찍 집을 나섰다. 몹시 들떴지만, 애써 가라앉히며 그저 오랜만에 산책이나 하자는 덤덤한 마음으로 도착했다. 평일 오후 고궁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향원정 앞 벤치에 앉으니 쾌적한 가을볕이 이마에 내려쪼였다. 얼마쯤 기다렸을까? “저..... 정말 나와 계시네요. 알아보시겠어요? 정숙이에요.” 한 중년여성이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아! 기억이 났다. 그의 집에 가면 예쁜 드레스를 입고 놀았던 작은 아이, 정현의 동생이 분명했다. 반가움과 어색함, 그리고 궁금함에 멀뚱히 서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조용한 찻집엔 작게 음악이 흘렀다. 그녀는 그간의 사연을 한숨과 섞어 천천히 풀어놓았다. “우리 가족에게 캐나다는 절망이었어요. 도착한 지 2년도 안 돼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는 20년 넘게 누워만 계시다 돌아가셨고, 가족의 생계는 어렵사리 어머니가 도맡았지요.” 현재 캐나다 공립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어머니와 함께 산다는 그녀는 간간히 눈물을 내비치며 말을 이었다. “정치학을 하겠다는 오빠와 신학공부를 강요하는 아버지와의 갈등은 정말 심각했지요. 전에 없이 자주 고성(高聲)이 오갔고 그럴 때마다 오빠는 며칠씩 집을 나가곤 했어요. 그 무렵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던 아버지가 쓰러지자 오빠는 도리 없이 아버지의 뜻을 받아드렸지요. 미움과 죄의식을 한 짐 가득 짊어진 채 말이에요. 자신의 꿈을 접어야만 했던 오빠의 상처는 오래도록 아물지 않아 너무 힘들어 보였어요. 오빠는 미국 신학대학에 입학은 했지만 졸업을 못한 채, 여기저길 떠돌다 돌아왔지요. 마약도 의심스러웠지만 지독한 알코올 중독자가 돼서 말이에요. 거의 매일 술을 마셨어요. 제대로 살아보겠다고 애는 썼지만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죄의식은 번번이 오빠를 좌절시키고 말더군요. 그런 상황에서도 늘 한국에 가고 싶어 했어요. 여기 오면 무슨 수나 있는 듯, 고집을 피웠지만 이미 혼자 몸으로는 올 수조차 없는 상태였지요. 그리고 언제나 말끝엔 오빠얘기를 하면서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거예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가슴이 뻐근히 아파왔다. “그러다 3년 전, 집 앞 도로에서 차에 치어 아버질 따라 갔지요. 결국 두 사람은 끝내 서로를 용서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떴어요. 그 지독한 애증(愛憎)은 날선 칼끝처럼 자신과 상대에게 심한 상처를 내면서도 종내 사그라지지 않더군요.” 그녀는 마치 끔찍한 영화장면을 상상하듯 진저리를 쳤다. “마침 제가 한국에 올 일이 생겨 날짜를 일부러 맞췄어요. 죽기 전 저에게 몇 번이나 자기대신 여기에 나가달라더군요. 오빠가 꼭 나와 있을 거라며 말이에요.”
  이야기를 듣던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참! 이상도 하네요. 우리오빠도 간혹 입술을 깨물곤 했어요. 자기도 모르게 말이에요.” 나는 그만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인생의 성공을 꿈꾼다. 그래 힘든 역경을 이겨내며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 것은 아닐는지. 그러나 삶이 그리 만만치 않은 것은 지닌 꿈을 이루기가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마음먹은 대로 모든 걸 성취하며 사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때로는 실패하고 또 때로는 포기하면서, 한참씩 휘청거리고 혹은 펄썩 주저앉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털고 일어나, 고달픈 인생의 고비 고비를 견디며 사는 것이 우리들이다.
  정말 사람의 운명은 누구도 모른다고 했던가. 그렇게 남에게 너그럽고 깔밋했던 그의 삶이 어쩌면 그토록 헝클어져 끝 모를 수렁으로 잠겨갔는지 답답한 마음에 머릿속이 텅 빈 듯 하얘졌다. 나는 끝내 원망을 삭히지 못한 채 애면글면 살았을 그에게 꼭 한번 묻고 싶다. 자기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자신이라는 것과 내가 남을 한 가지 용서하면 신은 내 잘못 모두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왜 몰랐느냐고.

  스산한 바람이 분다. 절반이라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동생에게 힘들고 먼 걸음을 부탁한 그에 대한 기억은, 이제 내 가을의 갈피 속에 곱게 접혀있을 것이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거리엔 희뿌연 가로등이 켜지고, 휑한 가슴으로 걷던 나는 근처 소줏집을 찾고 있었다.
  가을은 회고하기에 좋은 계절인가보다. 진정 추억은 가을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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