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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몹쓸 경쟁의식    
글쓴이 : 장은경    12-07-04 14:49    조회 : 3,575
 
                                     몹쓸 경쟁의식    
                                                                                                            장은경

미술학원을 다녀온 중학교 2학년 딸아이가 상기된 얼굴로 할 얘기가 있다고 했다. 저녁을 준비하느라 분주해서 좀 있다가 하자고 말했지만 물 묻은 손을 잡고 얘기를 들어 달란다. 오죽 급하면 이럴까 싶어서 저녁 준비는 잠시 미루고 얘기를 들어 보기로 했다.
얘기인즉슨 미술을 전공으로 하는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서 내신등급을 높게 받을 수 있는 변두리 학교로 전학을 가겠다는 것이었다. 이번 입시에 자기가 아는 언니들도 3명이 벌써 전학을 가서 내신등급을 올렸고 원하는 학교에 원서를 넣었다며 빨리 자기도 전학을 시켜달란다. 벌써 그 학교의 교통편 등을 알아보고 어찌하면 전학을 갈수 있는지 상세하게 설명하는 폼이 쉽게 포기할 것 같지 않았다. 미술학원 선배언니들과 선생님이 조언이라고 해준 얘기였나 본데 그런 이야기를 아무런 도덕적 거리낌 없이 해준 것에 화가 났다. 먼저 학원으로 전화를 걸어서 자초지종을 들어봤지만 역시나 아이가 한 말과 같은 내용이었다. 유감스러움을 표하고 허탈한 마음으로 수화기를 내려놨다.

딸아이가 미술에 재능을 보인 것은 여섯 살 때 놀이 삼아 나간 미술대회에서 대상을 타면서였다. 천여 명이 넘게 참가한 대회에서 제대로 된 미술교육을 받지도 않은 아이가 대상이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딸아인 다른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 운동센터를 다녔고 그 흔한 학원도 가지 않았다. 혹시 동명이인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었다. 그러나 그 해답은 얼마 후 시상식장에서 들을 수 있었다.
심사위원으로 나온 서울대학교 서양화과 교수님의 심사평은 획일화된 교육을 받지 않아서 남다른 창의력이 있는 아이니 미술학원 등을 보내서 아이의 창의력을 뭉뚱그려 버리는 교육에서 탈피할 것을 부탁하셨다. 교수님 경험상 잘할 수 있는 아이들을 많이 봐 왔는데 대부분 엄마들의 지나친 교육열이 오히려 재능을 퇴보시킨다는 것이었다.
딸아인 초등학교 내내 미술상을 휩쓸어 오고 미술영재로 뽑히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시켜 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때 들은 조언 덕분에 넘치는 교육열을 자제할 수 있었다. 발묘조장(拔苗助長.억지로 싹을 뽑아서 성장을 도와준다.)이란 맹자님 말씀이 있듯이 아이의 느린 걸음이 답답하고 안쓰럽다고 기다려 주지 않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었다. 엄마로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교육 방식은 칭찬과 격려뿐이었다.
6학년이 되자 딸아이가 자신의 진로에 대해 어렴풋하게 생각하는가 싶더니 예술중학교에 가겠다는 선언을 했다. 드디어 때가 온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평생 그림을 그리고 사는 게 가장 행복할 것 같다는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그동안 혼자서 그림 그린다고 책을 봐도 그림책 위주로 보고 어디서 알아 왔는지 미술전시회나 디자인 전시 등을 찾아다니는 것이 안쓰러울 정도였는데 이제는 전문적인 선생님의 도움을 받기를 간절하게 원하고 있었다. 예술중학교 입시가 6개월 남은 상황에서 아이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역시 딸아인 하루 12시간이 넘는 강행군을 하며 퉁퉁 부은 어깨를 하고도 배우는 기쁨에 아프단 소리 한번 하지 않고 시험을 봤다. 다른 아이들이 3,4학년부터 조기미술 교육에 열을 올리는 입시전쟁에서 준비 기간이 짧았던 탓인지 시험은 딸아이에게 커다란 상처만 남기고 말았다. 과연 그동안 내가 믿고 따른 시상식에서 들은 교수님의 조언이 맞는 말이었을까...  아이의 눈물을 보니 가슴이 저려왔다. 그토록 하고 싶어 하는 길을 발 빠르게 찾아 주지 못했다는 자책감도 들었다. 그러나 시험 날 다른 아이들이 실기 시험을 보고 나오면서 하는 말이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아까 그 나뭇잎 지난번에 학원에서 우리 그려 본 거잖아, 거의 그려본 거던데...’ 우연인지 그 예술중학교에 강사로 나가는 선생님이 하는 미술학원이 합격률이 높다고 멀리서도 찾아간다는 얘기를 입시가 끝나고 듣게 되었다. 왠지 씁쓸한 느낌이 들었었다.

딸아인 무엇이 그리 서러운지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고 있었다. 도대체 뭐라 얘기를 해 줘야 할까. 저녁도 먹지 않고 우는 아이를 불렀다. “엄마는 너의 재능과 성실함을 믿는다. 그런 꼼수를 써서 얻은 합격이 과연 떳떳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들어간다면 선량하고 순수한 다른 친구들의 자리를 빼앗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은 느린 것 같지만 너의 미래에 그늘이 될 그런 상황은 만들지 않는 게 행복하게 사는 길이다. 그런 정당하지 못한 경쟁으로 들어간 아이들이 있는 학교라면 차라리 안 가는 게 낫다.” 도덕 교과서에 나올 법한 틀에 박힌 말들이 아이를 이해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그래도 판단은 아이에게 맡기기로 하고 설득을 했다. 딸아이가 훌쩍거림을 멈추더니 “엄마! 그래도 난 그 학교가 꼭 가고 싶어요. 다른 아이들은 그렇게 해서 학교 들어가는데 난 못 들어가잖아요....”

지난 봄 우리나라 명문 대학인 카이스트에선 부모로서 차마 입에 담기 힘든 가슴 아픈 일들이 일어났다. 비단 그곳뿐만 아니라 그런 유사한 일들이 신문 사회면에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지나친 교육열과 경쟁의식은 아이들을 꿈꾸지 못하게 했고 늘 패배자로 만들었다. 소위 명문이라고 하는 그곳에서도 경쟁에 지쳐 쓰러져야 하는 현실이 카이스트의 잔인한 봄을 부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향해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몹쓸 경쟁의식에서 오는 패배감이 아닐까.
경쟁을 해서 뭔가 내 것을 얻는다는 소유 가치로서 세상을 바라보면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영역은 너무나 작고 초라하게 느껴진다. 끊임없이 경쟁해서 소유하려고 하면 만족이란 영원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경쟁 상대는 타인이 아니다. 나의 게으름과 욕심과 자만심이 나를 무너뜨리는 경쟁 상대란 것을 직시했을 때 사회의 무분별한 경쟁에서 채워지지 않는 상대적 박탈감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는 땀 흘리는 과정들이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사는 주인공을 만드는 것이다.
딸아이가 자신이 그리는 그림 하나하나가 다 최고의 작품인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목적이 결과로 증명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물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욕심만 바라보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 알았으면 좋겠다. 단풍이 곱게 물든 나뭇잎들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을 반짝이는 눈망울로 바라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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