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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촌나그네/ 멜크에서 만난 웃음    
글쓴이 : 김데보라    12-08-30 18:29    조회 : 5,249

 
 
멜크에서 만난 웃음
 
 
 2012년 <<한국산문>> 9월호 발표 
 
오스트리아에서 비엔나에 위치한 멜크 수도원에 가는 길이다.
밤사이 안단테 아다지오의 눈이 내렸나 보다. 비엔나에는 눈이 내렸으나 대단한 것이 아니어서 대지는 손가락 한마디에 불과한 백색의 융단을 깔아 놓았다.
 
아침부터 히끗히끗 간간히 눈발이 날리던 것이 비로 변해서 하얗게 수놓은 그 융단마저 녹아져 내린다. 세계 문화의 거장인 베토벤, 슈베르트, 슈트라우스, 주페, 브람스, 볼프, 쉰베르크가 잠들어 있다. 그들의 살과 뼈가 녹아진 도시이기에 이유도 없이 들뜨게 만드는 이곳에서 서쪽으로 약 80키로미터 떨어진 곳에 멜크 수도원이 고색창연하게 서있다.
 
 
소금의 영지
 
온통 하얀 세상이 펼쳐진 정신이 바짝 들 만큼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흩고 지나가는 멜크 수도원에 가는 길에 절경으로 소문이 난 짤츠캄버굿을 둘러보기로 한다. 짤츠캄버굿은 알프스 산으로 에둘러져 있으며 암염의 생산지이다. 예부터 소금광산이 많아‘소금길’이라고 불렸으며, 짤츠캄버굿이란 지명은‘소금의 영지’라는 뜻이다.
 
 
안단테 크레센도 데 크레센토의 눈이 내리고 있다. 솜사탕 같이 뭉글뭉글한 눈이 하늘에서 춤을 추며 내려온다. 천국처럼 평화로운 모차르트 어머니의 생가 옆엔 볼프강 호수가 자리 잡고 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이름을 딴 볼프강 호수. 그곳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탔다.
 
 
동화 속에서 방금 튀어나온 것 같은 마을을 에두르고 있는 2000미터가 넘는 알프스의 설산이 순수의 극치를 보여주는 흰 빛을 발하고 있다. 희다가 푸르른 빛이 선명한 빙하가 녹아서 만들어진 76개의 호수들이 마을 사이에서 숨바꼭질 하며 미소 짓는다. 신비로운 베일에 싸인 듯 연회색의 고요한 하늘 아래 순백의 설산의 기운이 강물 속으로 천천히 스며든다. 얼어붙을 듯 시시도록 차가운 강물을 따라 내 몸은 가만히 앉아서 나아간다.
 
 
물을 밀어내며 앞으로 나아가는 배를 따라 시선을 멀리까지 던져 본다. 호수 사이사이에서 얼굴을 내 보였다가는 숨어 버리는 집들은 한 폭의 그림 같은 비경이다. 마치 꿈의 세계로 들어 온 것 같은 마을에서 하루 밤을 보냈다. 개짓는 소리 들리는 마을을 우리를 실은 차는 천천히, 산허리를 감은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아쉬운 자락을 길게 끌며 마을에서 눈길을 거둔다.
 
 
멜크 수도원
 
 
잿빛으로 물든 하늘 아래에서 고고한 자태로 황금빛 아우라를 드리운 기품 있게 서있는 멜크 수도원에 도착하니 부드러운 기도소리 같은 보슬비가 내린다. 우산을 쓰고 6월이면 장미가 흐드러지게 핀다는 바로크 양식으로 깔끔하게 다듬어진 수도원 입구의 정원을 내려다본다. 새빨갛게 담장을 감고 올라가는 넝쿨 장미의 계절에 온다면 꿈꾸듯이 환상적일 터이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버릴 듯한 부드러운 밀크가 바탕색인 멜크 수도원은 10세기 초부터 12세기 초까지 융성했던 바벤베르크 왕조가 이 주위의 땅까지 모두 기증해서 베네딕트 수도원이 되었다. 그 후 화재로 전소되었다가 다시 복원했으나 또 파괴되어서 18세기에 개축하면서 소장품인 보물들에 금박을 입히기 위해 5키로그램의 금을 사용했다.
 
 
밀크라는 뜻이 깃든 멜크의 수도원은 산 아래 도시를 어머니가 자식을 바라보듯 부드러운 눈길로 내려다보고 있다. 도시를 휘감고 천천히 흐르는 도나우강을 그윽한 눈빛을 듬뿍 담아 바라보는 것이다. 황금색 옷을 걸친 것이 왕 같은 위엄을 갖추었다. 산꼭대기의 견고한 요새 같이 세워진 유럽 최대의 바로코 양식의 중세 건물로 엄장(嚴莊)해서 도도해 보이기까지 하다.
 
 
어디선가 신비로운 선율로 영혼 깊은 곳을 두드리는 신의 세계로 몰입시키는 그레고리오 성가가 울려 퍼진다. 죽은 자의 무덤 속까지 파고 들어가 그들을 깨우기라도 할양 자비로운 선율이다. 테너와 바리톤의 이중화음을 담은 크레센도 데 크레센도의 멜로디가 수도사들의 기도를 압도하고 있다. 들려오는 멜로디의 안내를 받으며 세월의 무게만큼 짙은 밤색의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간 내부는 화려해서 눈이 부시다.
 
 
육중한 열쇠 묶음을 들고 다니며 방 하나씩 열어주는 정중한 수도원의 안내원은 900년 동안 계속되어 왔던 베네딕트파 수도원의 역사와 오스트리아 교회의 역사를 11개의 방을 돌면서 자세하고도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전시실을 옮길 때마다 문을 잠그며 다녔던 그녀의 문화재관리는 철저하다 못해서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다.
 
 
절제, 겸손, 경건, 거룩한 수도사들의 기도가 무색하리만치 호화찬란한 바로크식 성당은 금박을 입혀 놓아서 요망스럽고 찬란하게 반짝거린다. 화려하기 그지없어서 기도하는 것조차 잊게 할 정도다. 한때 궁전으로 사용했다고 하니 화려한 게 당연하지 싶다. 식구들의 손에 이끌려 온 12살의 신동 모차르트가 이곳에서 오르겐을 두 번이나 연주했단다. 교회 의자에 앉아서 눈을 감으니 그 신동의 선율이 예배당을 가득 채우고 있다.
 
 
다뉴브와 멜크 두 강이 몸을 뒤섞어 흐르고 고성에서는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은으로 빛나는 띠’라는 의미의 바카우 지역과 더불어 이 수도원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명문 사립 고등학교로 유명한 수도원 부설의 멜크 슈티프트 김나지움에는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또르르 또르르 낙엽 구르는 소리에도 자지러질 듯한 웃음소리를 내는 학생들이 이곳에서 공부하는 것이 부럽기 그지없다.
 
 
멜크 수도원의 도서관은 움베르트 에코에게 영감을 안겨 주어 그 감동이 소설로 옮겨져 <<장미의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오래된 악보들을 소장하고 있어서 중세음악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보물보따리와 다름 아니다. 건축 당시부터 9세기에서 18세기의 희귀 필사본 1800여점은 물론 10만여 권의 고서적이 사방 벽체를 가득 메운 책장에 천정 끝까지 빈틈없이 채워져 있어 명성이 자자했다.
 
 
장미의 이름
 
<<장미의 이름Ilnome Della Rosa>>이 움베르트 에코(Umberto Eco)의 추리소설로 만들어져 1986년 영화로 변신할 때 배경으로 삼은 곳이 멜크 수도원이다. 숀 코넬 리가 주인공 윌리엄 수도사 역으로 분하며 연쇄 살인사건을 파헤쳐 간다. 수도원은 이 영화가 개봉된 이후 전 세계에 알려졌다.
 
 
장미는 중세 기독교의 상징이다. 그 중세의 달인이며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 기호학자이자 르네상스적인 인물이라는 호칭의 에코는 윌리엄과 아드소라는 인물을 통해 과학적, 철학적 방법을 총동원해서 살인 사건을 파헤쳐 나간다. 그 둘이 보는 시선으로 수도원에서 일주일간의 생활 가운데 내부의 이단 논쟁과 종교재판의 와중에서 분열되고 있는 중세 기독교의 모순을 묘사한다.
 
 
당시의 생활, 종교, 세계관과 교회의 정형화된 교조주의자(敎條主義者), 호교주의자(護敎主義者)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동시에 종교적 독선과 편견이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던 14세기 유럽의 암울한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다. 수도사끼리의 동성애, 배고픈 소녀를 유인해 성관계를 맺으려는 수도사, 이단 논자, 겸손으로 자신을 감춘 자 등을 말이다.
 
 
소설은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에서는 멜크수도원에서 촬영하였다. 나이 80살이 된 아드소가 18살 때의 일을 회상하는 기법이다. 1327년 11월, 영국의 철학자 프란체스코 교단 수도사 윌리엄이 그의 제자 아드소를 이끌고 이 수도원에 도착한다.
 
 
그러나 수도원장은 황제와 교황 사이의 회담을 중재하기 위해 파견된 윌리엄에게 장서관에서 일하던 아델모가 시체로 발견된 경위를 말하며 교황측 조사관이 오기 전 사건의 전모를 밝혀 달라고 한다. 윌리엄은 아델모의 죽음을 추론해 나가는데 그 이튿날 그리스어 번역가인 베난티오가 죽는다. 그리고 이어서 베렝가리오, 세베리노 마지막으로 사서 말라키아까지 세 명의 수도사들이 연속적으로 죽는다.
 
 
일곱 천사가 한 명씩 나팔을 불때마다 지상에서 재앙이 벌어지며, 그 천사들이 나팔을 다 불게 되면, 적그리스도가 출현하고 세계 종말의 날이 도래한다는 요한 계시록의 예언을 본 딴 살인사건이었다. 희생자들은 예언의 재앙을 각자 상징하고 있었다. 끔찍한 독살이었다. 살인의 공통점은 도서관에 있는 아리스토 텔레스의 <<시학>> 제2권과 관련이 깊다.
 
 
희극이나 우스꽝스러운 걸 다루었다는 그 책.
그동안 우리에게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비극론을 다룬 한 권 뿐이다. 그 시학 도입부에서 서사시와 희극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하겠다고 했다. 또한 <<수사학>>에서도“우스꽝스러운 것은 따로 <<시학>>에서 정의해 놓았다”고 했다. 이것이 단서가 된다. 그러나 희극을 다루었다는 <<시학>> 제2권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 책이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수도사 호르헤는 웃음을 경멸한다. 웃음이란 것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희극론이 든 그 책의 유포를 막고자 애쓰는 사람이다. 심지어 다른 수도사들이 이 책을 읽는 것을 방지하고자 책 오른쪽 아래에 독약을 묻혀 놓았다. 오른손 손가락에 침을 묻혀 이 책장을 넘기는 어느 수도사든지 그가 웃음을 짓는 대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윌리엄에 의해 그 살인사건의 전모가 폭로되자 호르헤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그 필사본마저도 쪽쪽 찢어서 입에 넣고 씹어 먹는다. 그러다가 아드소가 들고 있는 횃불을 집어 던져 도서관에 불까지 지른다. 그 순간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시학>> 제2권의 필사본이 불에 타 사라진다. 그리고 수도원마저도 전소되어 폐허만이 남게 된다.
 
아드소는 그날의 기록을 이렇게 남겼다. “지난 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이라고.
중세의 대변자인 호르헤 수도사에게 웃음이란 신의 권능을 부인하는 것이다. 악마의 선물이다. 웃음을 찬미한다는 것은 그에게 기독교를 능멸하는 행위와 다름 아니다. 윌리엄 수도사가 르네상스의 대변자답게 수도원 내의 교조적인 태도를 비판하면서 웃음이란 억압과 고통을 해방시키는 선이라고 호르헤와 논쟁을 벌인다.
 
 
과연 웃음이란 악마의 선물인가, 하나님의 선물일까. 오만방자한 호르헤가 믿음의 이빨을 악무는 순간이 우리에게도 있다. 내 안에 믿음이라는 천사의 탈을 쓴 악마가 존재하는 것이다. 믿음의 이름으로 나는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던가. 성경에 기록된 바울 사도의 말대로 “죄인 중에 괴수”가 나인 것이다. 그 누구를 비판하며 탓할 것인가. 나그네 길에서나마 회개하는 시간을 갖는다. 윌리암이 호르헤에게 소리친다.
 
 
“악마라고 하는 것은 영혼의 교만, 미소를 모르는 신앙, 의혹의 여지가 없다고 믿는 진리……. 이런 게 바로 악마야! 악마는 그가 가고 있는 곳을 알고 있고…음험하지. 따라서 영감이 바로 악마야! 봐라, 영감은 악마답게 이렇게 어둠 속에서 살고 있지 않아!”라고.
 
 
늙은 수도사 호르헤는 40년 동안 수도원의 주인행세를 하며 금지된 서책에 수도사들의 접근을 막아 온 교조주의, 신을 빙자해서 오만방자하기 이를 데 없는 자이다. 동료 수도사들을 죽이고도 그들이 죄 값으로 당연하게 죽었을 뿐이라면서 좁쌀 한 알만큼의 죄의식마저 없다. 그 스스로 잘못된 믿음이 지옥을 불러온 것이다. 수도원을 불태우고, 그 불꽃에 자기 몸까지 태우고 말았다.
 
 
결국 살인사건이 벌어진 것은 웃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호르헤의 교조주의 때문이다. 관용의 정신을 몰라 파멸을 불러왔다. 호르헤는 아마도 웃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신의 자리를 그 웃음이 대신 차지할까 싶어서 말이다
 
 
신의 음성을 듣고자 귀를 기울이는 묵상의 교향곡이 잔잔하게 가슴을 두드리는 멜크 수도원에서 웃음이란 무엇인가. 관용이란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읖조리며 숙고해 본다. 나와 견해가 다른 사람을 포용하며 웃음 지을 수 있는 인간이 나인가에 대해서도…….
 
 
신이 거하는 성스러움보다는 웅장한 자태로 사람을 압도하는 수도원은 강을 거느리며 사는 도시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건축미가 돋보인다. 그곳 도서관에서 총명이 똑똑 떨어지는 총기를 받고 콜로만의 뜰로 나왔다. 기다리던 햇살이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나를 졸졸 따라 오며 까르르 까르르거리며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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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움베르트 에코. 옮긴이 이윤기. <<장미의 이름>>열린 책들.
                     2010년 6월. 15쇄
                     김중순. <<사라예보에서 온 편지>>. 소통.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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