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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슬픔을 자기 등에 지고 가는 자    
글쓴이 : 김데보라    12-09-24 17:56    조회 : 5,194


내 슬픔을 자기 등에 지고 가는 자
 
<<한국산문>> 2013년 2월호 개제
 
인디언이‘내 슬픔을 자기 등에 지고 가는 자’를 친구라고 부르듯, 자기 것인양 내 슬픔까지 끌어안는 친구와 일본여행을 가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만났다. 초등시절 소풍을 기다리듯 친구의 들뜬 기분도 잠시였다. 분실 신고한 여권으로는 비행기를 탈 수 없다고 했다.
 
간이 콩알만 해졌다가 새 여권을 찾아서 들고 온 경애의 아들 덕분에 큐슈의 후쿠오카 공항으로 날라 갔다. 그녀는 무늬만 친구가 아닌 배움의 열정을 채우지 못한 나이테가 새겨진 속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베스트 프랜드다.
 
살면서 자기 속을 보여주는 친구가 한 명만 있어도 행복하다든가, 성공했다든가. 내 편에서 어떤 시끄러운 문제보따리를 풀어내도 지지와 위로를 아낌없이 나눠주는 친구. 20살을 넘기고 부천의 가난한 농군에게 시집을 가서 토마토를 거두어 애를 업고 남편과 함께 리어커에 싣고 팔러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냉장고나 선풍기를 덧씌우는 비닐커버 등을 머리에 이고 집집이 팔러 다녔다.
 
보따리장사를 하다가 친구는 점포를 얻어 바베큐 치킨을 팔기에 이르렀다. 숯불에 요리조리 구워낸 매콤 달콤한 양념치킨은 기가 막히게 맛있어서 그런 닭 맛을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다. 가게를 운영하는 바쁜 와중에도 고교 중퇴의 학력을 검정고시로 패스해서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내친 김에 방송통신대학 법학과까지 졸업해서 건강도 돌보지 않고 사법고시에 수차례 도전하며 끙끙거리기에 나는 그만두라 말렸다.
 
피터지게 공부하던 친구가 건강을 잃으면 검사니 판사니 변호사가 된들 무슨 소용인가. 그 이후 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부동산중개업을 하고 있다.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을 치열하게 살아낸 그녀 는 마음이 따뜻하고 현명한데다가 교회의 권사라서 주변에 사람들이 꼬였다.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가, 이해심이 많은데다가 수더분해서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받아주고 권면해 주기에 그럴 터이다.
 
친구와 함께 보슬비 내리는 아소산을 케이블카로 올랐다. 회색빛 하늘 아래 안개가 이리저리 바람에 휘돌았다. 아소 일대는 약 3000만 년 전의 대폭발로 이루어졌다. 활발하게 지금도 활동하는 아소산의 나카다케(中岳)화구는 하얀 분연(噴煙)을 내뿜고 있어서 화구 주변에서 가지각색의 용암을 볼 수 있었다.
 
케이블카는 분화구가 있는 정상에서 우리를 내려주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서니 연탄 냄새 비슷한 것이 후각을 자극했다. 얼굴을 후려치며 불어오는 안개비를 실은 바람을 헤치고 분화구 가까이 다가갔다. 희뿌연 안개에 가려진 분화구는 보이지 않지만 밤색 나무 울타리가 쳐진 그곳을 내려다보며 인생 자체가 활화산이라 여겨졌다.
 
활화산 같은 내 안에서도 화산이 여러 번 분출한 적이 있었다. 터질 때마다 지옥을 헤매듯 혼비백산하던 시절들을 지나왔다. 겉은 평화스러운 것 같으나 속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을 안고 사는 인생. 그것이 남편이든 아내이든 자식이든 형제이든 질병이든 가난이든 환경이든지 간에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 같은 존재로 돌변하기도 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화산 같은 존재들과 지금까지 웃고 울고 사랑하고 미워하며 부대끼며 살아왔다. 불어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흩어지고 마는 안개와 같은 인생길을 비빌 언덕도 없으니 나와 친구는 무던히도 애쓰며 살아왔다. 그런 생의 길목에서 다른 사람보다도 더 많은 날들을 열심히 살아온 나의 베스트 프랜드가 내내 보람찬 여생이기를 두 손을 모우고 있다.
 
아소산을 내려가는 길에서 걸음을 옮기며 시야에서 보이는 원거리의 먼 산에 안개가 걸친 것이 남다른 풍취를 보여 주었다. 간간히 비가 뿌리는 안개 깔린 완만한 내리막길을 한걸음씩 내려가고 있었다. 친구와 나는 목표를 정한 곳까지 올라갔다 생각하지만 안개에 가려진 정상의 분화구와 무엇이 다를까 싶었다.
 
자기 나름대로 정해 놓은 목표지점이 어디이든 도달하고 나면 허탈한 것이 안개에 가려진 분화구와 다르지 않으리라. 그럼에도 그러할지라도 어떤가. 더 이상 올라 갈 곳 없어 산 아래 내리막길만 보인다고 한들 어떠랴. 지금까지 살아온 발자취만으로도 심히 아름다운 것을……. 내려가는 길에‘내 슬픔을 기꺼이 자기 등에 지고 가’줄 친구가 있어 기쁘기 그지없었다. 고개 마루턱에 도달한 사람들이 뿌연 안개 속에서 환상처럼 사라졌다. 점처럼 작아지다 사라지는 것이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이 그렇게.
 
친구여
……
옛날 일들일랑 모두 다 잊고, 잘난 체 자랑일랑 하지를 마오
우리들의 시대는 다 지나가고 있으니
아무리 버티려고 애를 써 봐도 가는 세월은 잡을 수가 없으니
그대는 드는 해 나는 지는 해 그런 마음으로 지내시구려
나의 자녀, 나의 손자
그리고 이웃 누구에게든지 좋게 뵈는 마음씨 좋은 이로 살으시구려
멍청하면 안 되오 아프면 안 되오 그러면 괄시를 한 다오
아무쪼록 오래 오래 살으시구려 친구여!
-법정 <친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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