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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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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마님전 상서 - ‘이사종의 아내’를 읽고 -    
글쓴이 : 이민    12-10-23 21:48    조회 : 5,441
 
제1회 한무숙 단편 소설 독후감 대회 출품작
 
한마님전 상서
- ‘이사종의 아내’를 읽고 -
 
 
 
출품자성 명: 이 민
주 소:
이메일: miness46@naver.com
전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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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님전 상서
-‘이사종의 아내’를 읽고-
이 민
동짓날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둘헤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님 오 신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여성이지만 한 명의 기인으로서 조선 최고의 시인이며 남성 못지않은 기개가 있었던 인물로 알려진 황진이가 연인 이사종과의 사랑을 읊은 옛시조이다. 이 시조는 오늘날까지도 연인과의 사랑을 바탕으로 한 시 중에 으뜸으로 애송되고 있다. 이들이 역사의 기록에서 살아나와 현대인들의 심금까지 울리며 애틋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나눴던 수백 년 동안, 황진이의 어룬님 이사종이 목석으로 놓아둔 아내를 돌아봐 주는 시선은 없었다. 그녀의 남편과 황진이가 6년간 한양과 송도를 오가며, 예술 동지이자 영혼의 동반자로 깊은 사랑을 나눴더라는 이야기를 하기에만도 수백 년이 짧았으니, 그로해서 이사종의 본처 심사가 어떠했든 그것을 따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본처의 심사를 처음으로 헤아려준 사람이 한무숙작가이다.
작가는 탁월한 옛 우리말 문장으로 친정외할머니께 쓰는 편지라는 독특한 형식을 빌려주고 본처, 그녀에게 직접 말하도록 해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오뉴월 강상이던 여심을 고스란히 내보이며, 지아비를 그리는 마음이 ‘시앗’ 황진이에 못지않지만 그런 마음이 드는 것조차 망측 가련하다고 거짓 없이 실덕무복의 자괴감을 드러내었고, 한을 토하듯 답답 곤욕지사를 쏟아내었다. 이것이 ‘이사종의 아내’란 작품이 된 것이다.
 
첫 번 편지를 열었는데 무거운 한문과 요즘 쓰지 않아 사라진 고어들이 빼곡해서 눈에 설고 입에 달리질 않았다. 재차 읽고 눈에 들어오도록 또 읽었더니 ‘이사종의 아내’의 마음이 업힌 목소리가 읽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가 살던 때의 어휘를 사용해서 그녀의 깊은 심사를 충분히 전달하려고 하는 작가의 배려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
 
외한마님전 소(疏) 상살이
통곡 통곡하오며
외한아바님 상사(喪事)는 무슨 말씀을 아뢰오리까. 춘추 높으시오나 평일에 기력 강건하옵시니 환후(患候)가 비록 침중(沈重)하옵시나 회춘(回春)하옵시기 바랬삽더니 천천만(千千萬) 몽매(夢寐) 밖, 흉음(凶音)이 이를 줄 어찌 뜻하였아오리까. 졸지에 거창하옵신 일을 당하옵시니 영년 해로하옵신 정리 차마 측량치 못하옵나이다.
 
꿈에도 생각 못했던 친정외할아버지의 부고를 접한 손녀가 슬픔이 깊으실 외할머니의 건강이 걱정된다는 내용으로 첫 번째 편지가 시작되었다.
그 이듬해 두 번째 편지, 또 그 이듬해 세 번째 편지도 상을 치루고 있는 외할머니의 높은 정절을 우러르며 안녕을 기원한다는, 역시 관용적인 문구뿐이었다.
하지만 네 번째 편지는 세 번의 앞 편지와 전혀 달랐다. 수다 자체가 법도에 어긋나나 넓은 마음으로 용서해 달라면서 그녀는 어디에도 말 못했던 속마음을 터트려 하소연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왜 어미도 아비도 아닌 외할머니에게 자칭 불의악처의 망언이라 한 하소연을 하게 되었을까?
 
철심석장(鐵心石腸)이오 근엄방정(謹嚴方正)하온 아비(아버지)를 반려(伴侶)하여 반백(半百)을 넘긴 어미는 모르옵니다.
 
철석같이 견고하고 근엄 방정한 사람인 아버지를 반려로 반백을 넘긴 어머니가 모르는 것, 그것은 ‘달을 불러 노닐고 나비와 함께 꽃을 희롱한다는 풍류남아’의 아내로 살아가는 여인네의 마음이다. 그러니 자신의 신세 한탄을 ‘어미가 아오면 실색(失色)할 일’이지만, ‘서외조모의 경모(敬慕)함이 지극하와 아름답더이다.’란 말 속에서 알 수 있듯 할머니는 서외조모(할아버지의 첩)가 존경할 정도로 투기를 잘 참아낸 사람이므로, 자신과 동병상련하여 오매 울울한 심기를 이해해줄 거라는 속셈이 실제 이유였을 것이다.
그런 마음이었기에, 그녀는 할머니에게 풍류남아 남편 이사종의 흉을 대놓고 볼 수 있었다. 또한 그런 남편의 내자로 살며 수발들기가 한가치 않음을 호소하였다.
돌아가신 시아버지 이판대감의 자제로 선전관이면 불초 사대부이건만 남편은 진창(중국고대 명창)을 넘어서는 명창에 백학이 나는 듯 선인이 노니는 듯 춤을 추는 것도 부끄러운 노릇인데 장안 창기와 놀아나는 방종을 일삼는다고 했다. 시어머니마저 야단치기는커녕 늦게 얻은 외아들이라고 잘못은 재롱으로 실수를 재미로 여겨주니 그는 일절 반성조차 없었다. 시어머니는 거기에 한 술 더 떠 "대장부가 처첩 거느리는 것은 치레이니라. 오죽하여 남아가 한 계집만 볼꼬."라고 하여 그녀를 더욱 섧고 외롭게 하였다.
어느 장화를 꺾고 있는지 귀가치 않는 남편의 버선을 꿰매고 있던 깊은 밤. 바느질을 하던 종년 오묵이가 "나리마님의 버선은 볼보다 굼치가 더 많이 떨어지는 것이 이상하다."는 말을 하자 그녀는 거기에 자신의 신세를 빗대어 이렇게 한탄한다.
 
백학같이 선인같이 춤추는 그 모습이 안전에 떠오르매 사람과 춤은 남이 보고 춤으로 하여 심히 떨어진 보선 굼치만 지어미가 다스리고 있나이다.
 
상상만 할 뿐 그녀는 남편이 춤추는 것을 본적이 없었다. 춤을 추느라 버선 굼치가 더 많이 떨어졌을 것이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그녀의 처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이 대목에서 난 숨이 탁 막히고 가슴이 저며져 더 읽지 못하고 책에 얼굴을 묻고 말았다. 먹먹한 채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다시 편지를 열었지만 십 수번 그녀의 목소리로 이 부분만 읽힐 뿐 이 장면을 떠나지 못했다.
 
그로부터 삼 개월 후에 쓴 다섯 번째 편지를 보면 할머니가 먼저 편지에 대해 위로하고 격려하는 내용의 답장을 보내 주셨다고 한다. 그녀는 그 글을 보고 '사모쳐 울었다.'고 했다. 자괴감으로 가득 찬 손녀의 편지를 읽은 할머니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남몰래 흘렸던 혈루를 숙덕 뒤에 감추고 목석처럼 굽이굽이 넘어온 그 길을 사랑하는 손녀가 똑같이 울며 걷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할머니의 답장이었으니 아무리 위로한다 했어도 절절한 애통함이 묻어왔을 것이다.
할머니의 지자한 격려와 가르침을 따르려 했으나 그럴 수 없어 불효를 저지르게 생겼다며, 남편에게 계집이 생긴 얘기를 꺼내는 그녀.
풍류남아로 자약하였으나 중심을 잃은 적이 없던 남편이 요사한 계집에게 빠져 심혼이 혼미하고 몸이 있되 넋이 나갔다고 했다. 그녀는 그 계집에게 ‘요물’ ‘요사스러운 요녀’ ‘구미호’란 표현을 해서 적개심을 드러내 보인다. 그러나 그 적개심이 무색하게도 세상이 말하는 그 계집은 서시 귀비가 무색한 용태, 천하 탕아들이 그 일빈일소에 간장이 녹을 만큼 무류한 가무시재, 기상이 호호탕탕하여 기행이 왕왕하며 오기가 충천한 송도삼절의 하나로 일컫는다는 황진이였다.
대장부 철심을 쥐었다 놓았다 하고 간장을 녹인다는 황진이의 시재를 접한 그녀는 큰 충격을 받는다. 그것은 삼종지의의 막중함과 칠거지악의 준엄함이란 시대의 틀 속에 갇혀 살아야만 했던 그녀의 가치관이 천지로 흔들리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혼동이 생겼든 말았든 현실에선 다른 계집을 찾아가는 남편이 추레하지 않도록 의복 매무새를 다듬고 지어야 하니 손이 떨리고, 솟아오르는 투기심을 참느라 한이 가슴에 응어리졌다며 절규한다.
 
한마님 진정 이 몸은 목석이 아니옵니다. 목석이 아니옵니다.
 
놀란 할머니가 부도(婦道)를 타이르는 답장을 보내오자 숙덕 정전하신 할머니의 외손녀로서, 경계하고 하교하신대로 잘 참고 기다릴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할머니를 안심시키는 여섯 번째 편지를 보낸다.
그래놓고는 열 며칠도 못 버티고 그녀는 사는 것에 지쳤고 괴로워 죽고 싶으나 모진 게 목숨이라 슬프다며 장문의 일곱 번째 편지를 쓰고 만다.
그 호탕하고 의연하며 범사에 초연하던 남편이 남산 밑 숲을 등진 곳에 황진이와 살림을 차려 꿈속같이 함께 산다고 했다.
만석선사, 화담선생, 어느 명문가의 선비, 벽계수 등이 그 요물에게 현혹되어 파멸되고 망신을 산 예를 나열하며 누구든 손아귀에만 들면 농락을 하는 구미호라고 황진이를 절하시킨다. 하지만 시누이가 시앗을 보았을 땐 절곡하던 시어머니조차도 천생연분이라며 ‘송도집’ 황진이를 끼고돌아 남편의 배반보다 더한 배신감을 그녀에게 안겨준다. "체체하고 습습하고 상냥하고 온 그런 기집이 천하에 있겠느냐."고 시어머니의 칭찬이 늘어지는 것은 그녀가 시집 와 이십년 가깝도록 해서 이골이 난 남편의 뒷바라지, 시어른 모시는 것까지도 방탕기녀 출신 요물 송도집이 그녀 못지않게 잘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제법 법도까지 챙겨 남편을 자주 본가로 보내 머물게 해주니 살림 차리기 전보다 오히려 외박이 줄어들었다. 그런 모든 것이 그녀를 더 초라하고 보잘것없게 했다. 그렇게 사리 밝고 투기 없고 체체한 시앗에 비해 뭐 하나 나을 것이 없다는 자격지심으로 그녀는 점점 시들어 간다. 거기에 보태 그녀를 아예 천길 나락에 꽂아 넣어 버리는 사건이 생긴다.
집에 돌아와 사랑에 누워있는 남편에게 주려고 잣죽쟁반을 들고 사랑채에 갔다가 절절한 정과 사나이 막중한 모든 것을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아낌없이 내어 던진 듯한 창을 가만하게 부르는 남편의 노랫소리를 문밖에서 듣게 된다. 그녀는 억겁 암흑지옥에 빠져드는 듯 처참해져 잣죽쟁반을 다시 들고 안채로 돌아와 쓰러지고 만다. 시앗 본 후 처음으로 깊은 잠에 빠졌다고 했다. 이 깊은 잠이란 그야말로 모든 걸 내려놓고 현실에 항복하겠다는 포기의 표현이 아니겠는가.
그런 후, 투심에 불타던 아수라를 비키고 미움의 야차를 멀리하고 초열에서 빠져나와 자신이 살아갈 길을 찾겠다고 다짐하는 말을 끝으로 삼년동안 편지를 쓰지 않는다.
여덟 번째 편지는 그녀의 아들 준행의 혼사를 알리는 청첩장이었다.
연이어 그 다음 달, 마지막 아홉 번째의 편지를 보낸다. 너무나 뛰어난 송도집 진이의 자질과 겨눌 기력이 없어 절망에 빠졌었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작가는 이 마지막 편지에서 시앗 황진이보다 오히려 가진 것이 많다는 것을 일깨워 주어 그녀를 부축해 일으켜 세워준다.
마음을 암담하게 던져버리고 살았더니 사람들에게 듣게 된 현숙하다는 칭송, 둘째 외숙이 평안감찰사에 제수되는 등 가흥으로 홍복을 누리는 할머니처럼의 노후, 아들 며느리의 효도에 꿈같은 행복을 누리고 있다한 자복, 본처이기에 누릴 수 있는 이씨가문 조상님의 보살핌, 이렇듯 시앗은 가질 수 없는 많은 것을 가졌지 않느냐 말해준다. 물론 시앗을 본 아내의 투기심 때문에 힘들긴 하겠지만 그것조차도 실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시앗 당사자 황진이 입으로 종년 오묵이에게 토설하게 하는 쾌거를 보여준다.
 
“아녀자는 일부종사가 제일이니라. 좋은 사내 만나 아들 낳고 딸 낳고 길이 직혀 살아라.”
 
하여 그녀는 마음을 추스르고 일어나 ‘진정 인생은 이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먹으며 사는 것인가 하나이다.’란 말로 자위하며 편지의 끝을 맺는다.
 
남편과 ‘시앗’ 황진이의 사랑 때문에, 투기가 칠거지악이던 중세 풍속의 심규에서 가슴이 한으로 응어리져 스스로 아수라가 되고 야차가 되어 몸부림치는 ‘이사종의 아내’. 켜켜 솔직하고 절절한 그녀의 편지를 읽노라니 그저 같이 가슴이 미어터져 나도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둘헤 낼 수밖에 없었다.
어디 수백 년 전 그 시대에만 ‘이사종의 아내’가 있었겠는가. 요즈음 우리 사회는 처지와 상관없이 참 쉽게 만나고 쉽게 사랑하고 헤어지는 풍조가 만연하다. 누구나 내가 하는 사랑이 우선 중하겠지만 그것 때문에 혹여 다른 ‘이사종의 아내’에게 내가 모르는 상처를 주는 건 아닌가 하는 경각심도 한번쯤 가질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 누군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초라해지고 자격지심에 투기하는 마음이 소란해져 힘이 들 때면 작가가 일으켜 세워준 마지막 편지의 ‘이사종의 아내’를 돌이켜 보고, 잊고 있던 내가 가진 많은 것에 대해 깨우쳐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렇듯 소외되어 그늘에 묻혀있는 사람들의 숙명적인 모습들과 안에서 울부짖는 한을 섬세하고 치밀하게 묘사하여 인간적 심중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솜씨는 한무숙작가를 따라갈 사람이 없겠다는 생각을 내내 하며, 재차 삼차 작품을 읽던 둘훼 낸 밤 허리는 ‘이사종의 아내’의 월명추야와 같이 참 길고도 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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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중
 
이 민의 ‘한마님전 상서’는 누구나 잘아는 조선명기 황진이의 연인 이사종의 아내의 편지를 통해 그들의 애틋하고 열정적인 사랑의 그늘에 감춰진 아내의 한과 설움을 (그때까지 그 누구도 눈길주지 않았던) 보듬어 펼쳤던 작가의 작의와 전언을 명석하게 받아들이며 잘 이해하고자 한 글로서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나고 문장또한 유려하고 거침이 없다. 작품소개와 작의, 그리고 그 작품이 마음에 일으킨 파문과 여운, 성찰 들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며 ‘글’로서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숙고끝에 이민의 ‘한마님전 상서’를 대상으로, 진연후의 ‘저마다 죽음을 안고 산다’를 우수상으로 그리고 정병삼, 유수연, 김보애의 글들을 각기 가작으로 선정하였다. 성실히 읽고 깊이 있는 독후감을 쓰신 다섯분께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
 
오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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