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민스님 혹은 혜민스러움
성 민 선
2012년은 혜민(慧敏) 스님에게 넝쿨처럼 행운이 굴러들어온 한 해 같다. 미국 햄프셔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객지에서 모국어로 외로움을 달랜 트위터 글을 엮은 에세이집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최장기 종합 베스트셀러 1위로 백만 부 판매를 기록했고 곧 중국어 일어로도 보급될 예정이다. 책이 인연이 된 <마음치유콘서트> 등 토크쇼는 다양한 연령층을 매료시켰다. CF 출연료는 기부했고 ‘위 스타트(We Start)’라는 아동복지사업의 홍보대사도 맡았다.
사람들이 스님에게 환호하며 빠져드는 데는 버클리-하버드-프린스턴을 거친 화려한 학력, 수려한 외모, 그리고 아직 30대라는 아름다운 젊음의 힘이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잘 아는 한 원로 스님이 그에 대해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부드럽게 대중과 소통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에 준비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왔다. 자비심이 가득해서 언제나 나누려고 애쓰는 사람, 앞으로도 무한히 뻗어나갈 사람”이라 말했던 이유는 바로 책 안에 있었다.
책을 통틀어 구절구절이 마치 오랜 세월 내려온 잠언처럼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와 닿는 것이 느껴진다. 사랑 이야기는 이 책의 압권이다. 일찍이 고등학교 초년생 시절 심취했다는 칼릴 지브란이 그의 사랑 멘토였다. 그는 "언젠가 나에게도 사랑이 찾아온다면 아무런 계산이나 두려움 없이 오직 사랑에 내 존재를 맡기겠노라." 다짐했었다. 어느 날 문득 그에게 사랑은 짝사랑으로 다가왔고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그는 아픈 청춘을 위한 '사랑의 멘토', ‘영혼의 멘토’가 되었다.
혜민 스님 혹은 혜민스러움의 요체는 "혼자서 도 닦은 것이 무슨 소용인가, 함께 행복해야지" 하는 그의 나눔 가치에서 나오는 것 같다. 스님은 이 책에서 누구든 혼자만 행복할 수도 없고, 또한 혼자만 행복해서도 안 된다며 다 같이 행복한 것에 지고의 가치를 둔다. 그는 "내가 옳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같이 행복한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p.225)고 선언했다. 서로 옳다고 주장하고 극단적으로 대치하는 이 시대 사회에 염증이 난 보통 선남선녀들에게 이런 메시지는 신선하다. 그는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의 보현보살 10대 원 가운데 수희공덕(隨喜功德)을 항상 챙긴다고 한다. 남이 지은 공덕을 따라서 같이 기뻐하면 서로 다 같이 잘 되자는 이 마음속에 남과 나의 경계가 사라지고 다른 사람의 공덕이 나의 공덕이 되는 큰 이치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핵심은 잠시 멈추고 쉬라는 부분이다. 특히 바쁠 때, 고민이 많을 때, 상처받아 힘들 때, 미래가 불안할 때…… 등 단 1분이라도 기도, 명상, 또는 참선 그 무엇을 통하든 잠시라도 멈추고 쉬어 보라고 한다. 그러면 “이제까지 보이지 않던 자신의 주변이, 안팎의 전체가 비로소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고, 그것들을 조용히 알아차리고 계속해서 알아차리다 보면, 마음 안에는 항상 부족하고 온전하지 못한 나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모든 것들을 조용히 바라보는 관조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이미 온전한 본래의 나를 만나는 것”이라고 하였다.
젊은 스님이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이 안쓰러워 보였던지 이제 대중포교는 그만하고 성철스님이나 법정스님처럼 큰 스님이 되라고 말했던 나이 드신 보살(여성불자를 지칭)들이 있었나보다. 그에 대한 스님의 대답은 “애써 비교하며 누구처럼 되려고 힘들게 살기보다는 그냥 자신의 삶을 살고 싶다”였다. 누구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찾아오고 찾아 갈 수 있도록 도시에서 동네스님노릇하며 살고 싶다는 거였다. 그 덕에 나도 스님을 여러 차례 만날 수 있었다.
스님을 처음 만난 것은 첫 저서 《젊은 날의 깨달음》이 나왔던 2010년 내가 다니는 서울 상도선원의 초청법회에서였다. 스님의 멘토로 평소 존경하고 모신다는 상도선원 원장 미산(彌山) 스님의 초청에 단박 달려온 스님은 두 가지 내용으로 진지하게 법문을 이어 갔다. 그 하나는 승려로서의 수행 체험- 그는 이것을 진제(眞諦)라 했다-이었고, 다른 하나는 불자들을 위한 행복론-그는 이것을 속제(俗諦)라 했다- 이었다. 제(諦)란 진리, 진실을 뜻하는 말로서, 진제라 함은 수행으로 이룩한 궁극적 상태 즉 깨달음을 말하고, 속제란 세속 생활을 할 때 적용되어야 할 진리란 뜻이다. 수행자로서 그의 공부와 수행이 깊게 익어 있다는 것이 느껴졌고, 이제 그가 대중을 위한 법문을 시작했구나 하는 것이 느껴졌다.
행복론을 말할 때 스님은 청소년 자녀들 편을 들어주기로 작정한 듯 했다. 행복의 잣대가 하나 뿐이 아니니 부모들은 제발 아이들이 관심을 가진 것, 잘 하는 것을 키워주라고. 자신들의 제한된 경험의 틀을 자식들에게 강요하지 말고 따뜻하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이 사랑인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통제하려 한다면 그건 부모의 이기심일 뿐이라고 했다. 부모들이 할 일은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히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방학 때 책 열 권 이상을 읽게 하면 방학 내내 학원에 다니는 효과가 나타나고 나중에 학습 향상이 절로 이루어진다며. 책을 읽게 되면 스스로 사고를 할 수 있고 책 세계의 일원이라는 새 이미지가 생기고 나만의 도서관을 만드는 꿈이 시작될 수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고 깊은 통찰을 배양하기에 질문을 던지면 주관이 뚜렷하게 자기 의견을 제시하나 한국에서는 의견이 없다고 했다.
나는 스님과 완전 동감이었다. 모처럼 같은 과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젊은 날 자식으로서 내가 부모의 말을 안 듣고 내 하고 싶은 대로 했던 것이라든지,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어서는 자식들이 저희들 원하는 대로 살게 놔두었던 것을 갑자기 내 둘째 아이 또래의 젊은 스님이 나타나서 잘 했다고 인정해주는 것 같아서 속이 다 후련했다.
그 때 이후 스님은 매년 한 번씩 상도선원을 방문하여 법문과 책 사인을 해 주고 갔다. 올 해는 명상과 노래를 곁들인 그 유명한 토크쇼를 해주고 갔다. 젊은이들은 스님과 한 공간에 얼굴을 맞대고 함께 있다는 사실과 한 마디 한 마디 명상 발원에 공감하고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딸과 함께 자리를 같이 했던 한 어머니는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통곡이 터진 딸의 손을 꼭 잡고 같이 울었다고 했다.
이렇게 젊은이들을 위로하고 친구가 되어 주는 스님이 개인적으로 가장 행복할 때가 같이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아주 가까운 도반들과 밤을 새우며 법담(法談)을 나눌 때라 한다. “외형적으로 보이는 모습의 내가 아닌, 정말로 무엇을 향해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구도했었는지를 알아줄” 그들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 그렇게나 행복하다는 것이다.
상구보리(上求菩提)와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두 날개를 맘껏 펼치는 스님의 모습을 오래도록 보고 싶다.
<한국산문> 2012.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