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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슬픈 기다림    
글쓴이 : 조헌    12-11-30 10:00    조회 : 4,684
 
세상에서 가장 슬픈 기다림

                                                        조     헌

 사랑은 자기 영혼을 남김없이 모아 한곳에 맞추는 일이다. 대상을 향한 이 오롯한 집중은 끝없이 뻗쳐오르는 강한 에너지다. 누구나 한때 사랑의 열정에 온몸을 불살라 본적이 있지 않은가? 끝없이 솟구치는 애틋함, 아슴아슴 사무치는 간절한 열망, 또 밤을 하얗게 밝히며 그리워하는 쉼 없는 목마름. 이런 강렬한 사랑의 힘들이 크고 작은 기적을 낳는 것은 아닌지. 종종 우리는 절절한 사랑이 만드는 불가사의한 일들을 듣고 보면서 진한 감동에 목이 메기도 한다.
 얼마 전 모임에서 친구에게 들었던 짧은 이야기가 못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서 우연히 읽었다는 이 사연은 한 젊은 의사의 체험담이다. 진위여부를 떠나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내내 가슴이 아렸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진주의 한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공사장에서 추락 사고를 당한 27세의 건장한 젊은이가 새벽에 응급실로 실려 왔다. 얼굴과 머리가 심하게 손상되어 원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고, 이미 의식도 완전히 잃은 후였다. 서둘러 응급조치를 취했으나 살 가망은 거의 없었다. 식물인간이 된 상태로 인공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에 누워있던 그날 아침, 착잡한 심정으로 지켜보던 의사는 심전계(心電計)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가슴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좀 전까지만 해도 정상적이었던 심전도 곡선이 갑자기 웨이브 파동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이것은 심장이 점차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며 곧 죽음이 임박했음을 의미했다. 통상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 10분 이상을 살아있기가 힘들었다. 그의 사망이 목전에 다가왔음을 느낀 의사는 가족에게 알리는 한편, 간호사에게도 호흡이 멈추는 대로 영안실로 옮기라고 일렀다.
 그 후, 다른 환자를 돌보며 바쁜 일정을 보내던 의사는 중환자실을 지나치다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3시간 이상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의 심장 박동은 느린 파동을 그리면서 힘겹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경우를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의사는 믿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인지 호기심과 함께 더 큰 관심을 가지고 그를 지켜보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다시 중환자실을 찾았다. 당연히 지금쯤은 빈 침대이거나 다른 환자가 누워있으리란 생각을 갖고 말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층 더 여려진 심장박동에 의지하여 그 가엾은 영혼은 아직도 그의 일그러진 몸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문득 의사는 그가 이 세상을 쉽게 떠나지 못할 어떤 곡절이라도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상상은 의학적 상식으로 도저히 납득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루가 다시 흐르고 그의 심장이 웨이브 파동을 그린 지 장장 이틀이 지났다. 다음날 아침, 의사는 다시 중환자실로 향했다. 그의 신체는 거의 죽은 것과 다름없었지만 영혼은 아직까지도 희미하게 머물러 있었다.
 그때 한 젊은 여인이 중환자실로 들어왔다. 이제까지 보호자 중에는 없었는데, 마치 멀리서 갑작스런 연락을 받고 급하게 온 듯 했다. 넋 나간 사람처럼 제대로 환자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창백한 얼굴로 금방이라도 바닥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 여인은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가까스로 침대 옆에 섰다. 바로 그 순간, 그의 심전도 파동은 분명 미세한 움직임을 잠깐 보이더니 수 분 후 마침내 잦아들고 말았다. 모니터 화면에는 전원이 꺼진 듯 한줄기 직선만이 나타났다. 이틀간 미약하나마 끈질기게 뛰어왔던 그의 심장이 드디어 멈춘 것이었다.
 이젠 정말로 세상을 떠난 그와 망연히 서있는 여인을 병실에 두고 임종소식을 가족들에게 전한 의사는 보호자 중 한 사람에게 방금 온 그녀가 누구인지 물었다. 그가 그토록 집요하게 삶의 끈을 놓지 못하고 기다렸던 사람이 그녀가 아닌가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결혼한 지 5개월 된 그의 아내였고 더욱이 임신 중이었다.
 가슴을 훑는 애절함에 아연(啞然)해진 의사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사자(死者)의 진심만은 반드시 그녀에게 전해져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를 불러 사고 후 지금까지의 사정을 상세히 들려주었다. 그가 아내를 만나기 위해 얼마나 긴 시간을 생사의 갈림길에서 사투를 벌리며 기다렸는지를. 또 그의 기다림은 간절한 염원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보기 드문 기적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질긴 집념은 아마도 사랑하는 아내와 태어날 아기에게 전하는 사랑의 메시지였으며 처연한 작별 인사였을 거라고 일러주었다. 미동(微動)도 하지 않은 채 듣던 그녀는 재가 꺼지듯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친구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났다. 나는 애처로움과 숙연함에 아무 말도 못한 채, 한동안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는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 더욱이 슬프고, 아름다운 영혼은 밤하늘에 별이 된다는 동화속의 말을 굳게 믿으며 살고 싶다. 지극한 사랑을 간직한 채, 겨우 5개월밖에는 살아보지 못한 아내와 뱃속의 아기 곁을 떠나야 하는 슬픈 영혼! 사랑하는 여인과의 행복한 생활과 태어날 아이에 대한 벅찬 기대로 수없이 꾸었을 꿈들을 차마 접을 수가 없어, 시시각각 달려드는 죽음을 힘겹게 내몰며 기다렸을 아름다운 영혼! 이 젊은 영혼의 마지막 소망이 담긴 안간힘이 생각사록 가슴을 저민다.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랑은 기적을 낳는다고 했던가.

 현대인들 사이에는 진정과 사랑이 사라진 지 오래되어 늘 찬바람이 인다. 하물며 연인과 부부간에도 은근하고 애틋한 정은 오히려 부담이 된다며 서로 책임과 의무만을 가시처럼 골라내어 따지고 몽니 사납게 구는 것이 현실이 되어 버린 지금 - 빛바랜 사랑의 의미를 새삼 부끄럽게 돌아보게 되는 요즘이다. 끊어져가는 가녀린 목숨으로라도 한번만은 꼭 만나고 떠나기 위해 실낱같은 생명의 끈을 놓지 못하고 견뎌야 했던 이 기다림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슬픈 기다림이 아닐까 생각하며, 나는 쏟아질 듯 무수히 떠있는 별들 중에 가장 밝고 맑게 빛나는 영혼을 찾기 위해 눈이 시리게 여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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