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이면 빵 이름이 똥빵일까? 인사동 길에 들어서니 구수한 냄새가 끼쳐온다. 근원지는 좁은 골목 한켠에 비껴서 있는 노점 같은 아주 작은 빵 굽는 곳이다. 바람막이 겸 차양으로 쓰이는 헝겊 천에 '똥빵 한 개 천원'이라고 쓰여 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젊은 일본여자들이 똥빵을 신기한 듯 바라보며 깔깔 웃어댄다. 평소 길거리에서 파는 붕어빵을 좋아하는 터라 나 또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일본여자들이 오천 원을 내고 빵 다섯 개를 받아든다. 나도 천 원을 내고 한 개를 샀다. 도대체 무엇을 넣고 만들었기에 밀가루 풀빵이 한 개에 천 원씩이나 할까? 뜨끈하고 구수한 냄새에 군침이 돌았지만 아무리 급해도 왜 똥 빵인지를 알아야겠다. 세모도, 네모도, 둥글지도 않은 것이 꼭 땅에 싸놓은 변처럼 생겼다. 색깔은 연한 갈색에 누르스름하다. 구워내느라 불쪽에 닿은 곳은 좀 더 진하게 보였다. 아하, 모양과 색이 엇비슷해서 똥빵인 모양이다. 그래도 궁금하다.
"아저씨, 왜 이름이 똥빵이에요?"
초로의 아저씨가 대답한다.
"그게 말입니다. 이 빵이 개그맨 정준하가 홀딱 반한 빵이예요." 그러고 보니 빵 굽는 옆 벽에 정준하의 사진이 똥빵에 걸맞게 나붙어 있다. 모델은 잘 고른 듯하다. 수더분한 인상에 식신(食神)으로 이름 난 '정준하'가 아닌가. 이름이 비슷하긴 하나 꽃미남 '정준호'라면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아니, 똥빵이라면 냄새가 나빠서 안 팔리지 않나요. 그런데 왜 그런 이름을?" "지금은 변이 농사짓는데 그리 많이 쓰이지 않지요. 농촌에도 수세식 변소가 거의 대부분이구요. 옛날엔 과일이나 채소 등 농사지을 때 대변을 퍼날러 거름으로 주어서 길렀지만. 아주머니도 아실 걸요?" "그럼은요. 아다마다요."
"요즘 쓰는 화학비료가 좋다한들 그 자연산 유기농 거름에 비하겠어요. 지나다가 거름 냄새가 나면 코를 막기도 했지만, 냄새는 고약해도 왠지 친근하고 당연히 맡아야 할 냄새로 숙명처럼 받아들였던 그 냄새는 맡아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지요. 그 거름은 사람의 배설물이지만 결국은 도로 사람이 흡수하는 게 되는 것이지요. 거기엔 각종 영양소가 들어 있고 시간이 지나 효소가 되어 농작물을 키우는 자양분이 되었지요."
아저씨 말을 듣다가 웃음이 터지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어렸을 적 우리 집 옆에 엄마, 오빠와 함께 사는 친구가 있었다. 아빠는 일찍 돌아가시고 초등학생인 오빠가 엄마를 도와 가장처럼 일을 했다. 하루는 친구오빠가 인분지게를 지고 가다가 돌에 걸려 넘어졌다. 아니 출렁거리는 인분통 때문에 균형을 잃어 넘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인분을 뒤집어쓰고 냄새가 진동하는데 그 아이는 인분이 아까워 일어나지도 않은 채 "어떻게 해?"를 외치며 서럽게 울었다.
이 모습을 보신 우리 할머니가 "얘야, 울지 마라, 걱정마라" 하시며 머슴을 시켜 우리 집 인분 한 지게를 퍼서 아이네 밭에 주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도 거들라 하시며 아이를 개울로 데리고 가서 말끔히 씻긴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그때 친구오빠의 인분 뒤집어 쓴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왜 그리 우습던지….
늙수그레한 주인아저씨의 말이 계속 된다."그래서 착안 한 것이 똥빵이에요. 먹어서 맛있고 영양도 풍부하고 사람에게 유익하거든요. 케익이나 과자가 아무리 맛있다 한들 색소와 첨가제를 넣은 것이 무엇이 사람에게 유익 하겠어요. 순수한 재료의 똥 빵만 하겠습니까."
자못 진지하고 나름대로의 철학이 배어있는 똥 빵 만든 이유를 말 한다. 내가 빵 속에 무엇을 넣었는지 물었지만 그 대목은 웃음으로 대답했다. "하하, 드셔보면 아시겠지만 곡물과 견과류 몇 가지입니다. 그이상은 비밀이구요."
따끈하던 빵이 식을까봐 얼른 각진 부분을 입에 물었다. 과연 맛이 있었다. 팥도 직접 만든 것이라더니 그런 것 같다. 비싸도 아깝지 않다. 한 개를 게눈 감추는 듯 먹어치우고 한 개를 더 사서 가방에 넣었다. 빵은 계속 팔려 나간다. 돌아서서 보니 긴 줄이 늘어서 있다. 하, 똥빵의 인기가 대단하구나!
잘 팔리고 인기가 있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아저씨는 이른 바 역발상의 충격요법이랄까. ‘낯설게 하기’의 상술을 발휘한 듯싶다. 이미지와 형상이 판을 치는 요즘 세상이긴 하지만 겉모습이 어떻든 담긴 내용이 좋으면 어디에서든 통한다는 믿음도 와 닿는다. 무엇보다 똥빵 아저씨 말이 귓전을 때린다. 밑거름이든 자연산 유기농거름이든 결국 우리가 버린 것을 우리가 도로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