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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산 땅 천 평    
글쓴이 : 장정옥    13-03-21 02:29    조회 : 5,551
안산땅 천평
 
 
                                                                                                                           장 정옥
 
 
곤지암에 사는 친구가 고구마를 캐러 오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팔이 아프다며 저녁은 사먹어야겠다던 나를 보고 남편은 김을 뺀다.
“왔다갔다 기름 값으로 사먹겠다.”
“갔다 와서 더 아프면 어떡하고?”
“빈손으로 가나? 뭐 사가는 돈이 더 들겠다.”
그 어떤 회유에도 고구마 밭을 향한 내 속의 불타는 의지를 하와도 지녔더라면 뱀의 유혹에 쉽사리 넘어가진 않았으리라. 다음날 이른 아침 장원급제한 아들 마중 가듯 일어나 달려갔다.
“와~ 이건 왜 이리 커?”
“올 해는 비가 많이 안와서 줄기가 뻗지 못해서 그래.”
넝쿨을 잡아당기면 딸려 나오는 그것들은 탐스럽기도 하고 보암직도 하다던 선악과가 그랬을까. 모양은 매끈하니 진 붉은 색이 돌아 밤고구마인 줄 알았는데 품종 개량한 황금고구마라고 했다. 그것들이 다칠세라 호미로 두덩의 가장자리를 살살 긁어내며 꼭지가 보이면 손으로 파 꺼낸다. 잠시 누군가의 흉을 보며 웃다가는 여지없이 붉은 가죽이 벗겨지고 허연 속살이 드러난다. 흡사 광산에서 금을 캐내는 것처럼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이름이 황금이니 금광이 맞기는 하다.
 
시장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는 그것들은 힘든 노동에 비하면 사먹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그러나 직접 체험하는 행위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의 산물이다.
그 행위는 영혼을 정화시키는 작업이다. 줄기를 따라 주렁주렁 매달린 고구마를 캐다보면 재벌이 부럽지 않다. 다른 사람보다 더 가지려는 욕심, 더 누리려는 욕망, 더 자랑하고 싶은 충동 같은 것들을 떨치게 하는 순수의 힘이다. 등줄기와 허리가 아프고 손등이 거칠어져도 땅은 그렇게 물욕에 오염된 나를 새롭게 소생시킨다.
친구가 다시는 안 한다던 힘든 노동을 해마다 되풀이하는 이유를 알듯하다. 그날 친구는 겨우내 먹을 수 있을 만큼 나눠줬다. 농약을 주지 않았으니 먹기에는 좋을 거라며 애호박 늙은 호박 몇 개씩, 땅콩이며 가지 그리고 강낭콩과 옥수수를 차안에 가득 실었고 나는 염치없이 넙죽 받아왔다.
내가 염치없이 받았다고 표현한 것은 밭농사라는 게 며칠 힘들여 키운다고 되는 게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나눠주기를 좋아하는 손 큰 친구를 보며 나도 어서 밭을 갖고 싶었다.
 
아이들이 독립하면 넓은 마당이 있는 집을 갖는 게 소망이다. 내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화단에 꽃도 가꾸고 담장엔 넝쿨장미를 올린 집이다. 감, 대추 같은 여러 종류의 과실나무도 심고 무엇보다 넓은 밭에 채소를 가꾸어 이웃과 나누며 사는 모습을 꿈 꾼 지 오래다.
이런 말을 하면 남편은 고스톱 치다 돈을 잃고 나중에 한꺼번에 계산해 준다는 사람처럼 조금만 기다리라며 눙치기만 했었다.
그러던 그날 친구가 밭에서 바로 따준 옥수수와 땅콩을 삶아줬더니
“야~ 이거 진짜 싱싱한데. 우리도 농사지을까?” 한다.
“땅이 있어? 밭이 있어야지. 손바닥에 옥수수를 심나?”
“가만 있어봐. 안산땅 천평 있어.”
명색이 대형 건설사 임원을 지냈는데 근교에 땅 한 평도 없느냐는 내 말에 야릇한 웃음을 흘리더니 나 몰래 그랬었구나. 갑자기 훈훈한 기운이 집안을 가득 채웠다.
“안산 어디야? 왜 나한테 말 안했어? 내가 내려가 살자고 할까봐?”
매일 보던 연속극도 안보고 고기 냄새 맡은 강아지마냥 꼬리 흔들며 질문을 쏟아냈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한다.
“안산 땅이 아니고 안 산 땅이야. 조금만 기다려. 살 때까지.”
 
어쨌거나 안 산 땅 천 평은 내가 꿈꾸던 그런 곳 그런 모양이었으면 좋겠다.
 
 
 
                                                                                                    문학 사계 201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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