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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위의 딸    
글쓴이 : 임도순    13-04-01 14:10    조회 : 5,456
 
  대위의 딸 
 
  거의 사십 년 만에, 미국에서 왔다는 중년의 교양 있는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나의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아스라이 기억에 닫힌 유년의 골목길을 돌아서 들어가면 마치 자연사박물관의 전시관처럼 뚜렷하게 박제된 몇 장면들이 있다. 멈추어 있는 그 동작들 사이로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 자녀가 몇이야?’ 인생을 축약시킨 함축적이고 의례적인 질문이었다. 그 당시 ‘동네의 돌산위에 있던 작은 교회가 지금도 있어?’ 물음은 쉬웠지만 길게 답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미리 결정해야 하는 어려운 질문이었다. 임마누엘, 미카엘, 가브리엘은 벌써 오래전에 이사를 갔고, 그 돌산의 절반은 이미 백년대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살아생전에 마지막으로 보는 게 될 것 같아 귀국하였다’면서 미국살림은 괜찮다고 했다. 역시 무심한척 하는 대화였지만 모란꽃 문양이 끊임없이 펼쳐진 벽지같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울음의 벽을 덮고 있었다. 나의 대답은 누군가의 말을 인용했다. 

  ‘못생긴 나무가 고향을 지킨다.’

  숙이는 어린 시절, 한 집에서 삼 년을 함께 살았던 또래의 친구이다. 연동 육거리 골목길 안쪽에 있는 ‘신도안고물상’은 기억의 저편에서도 여전히 수상한 활기가 감돌았다. 엿장수아저씨가 들고 온 ‘정부검인정’ 돋을 문장이 새겨진 상수도덮개가 부엌 한 귀퉁이에서 삐죽이 밀고密告의 머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달 없는 그믐밤에 동목포역의 시골 전신주에서 걷어 온 전선이 오후 마당에서 검은 연기를 내고 타고 있었다. 불 속에서 드러난 구리선이 꽃뱀처럼 미래에서 잠입한 눈동자를 감지하고 있었다. 눈이 내려 쌓였던 날 마당에 처음 보는 신사용 자전거 한 대가 세워져 있다. 그리고 그 주위에 여러 사람들이 서있었다. 눈 위에 선명하게 나 있는 자전거 바퀴자국을 따라 자전거 주인과 형사들이 집으로 온 것이다. 아버지가 벽에 걸어 둔 붉은 황소가죽 점퍼를 걸쳐 입고 형사를 따라 나섰다. 나는 형사의 뒷모습을 보고 눈 위에 찍힌 바퀴자국을 따라가 보았다. 작은 기차 길 같은 바퀴자국은 합쳐지다가 벌어지기도 하면서 동네의 돌산 아래 골목길까지 이어져 있었다. 엿장수 아저씨들이 그 높은 담이 둘러쳐진 집에 자전거가 있는 줄을 어떻게 알았지만 새벽에 눈이 그쳐 그 바퀴자국이 지워지지 않을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곧 귀가했지만  그 후 고물상은 흐지부지되어 문을 닫았고, 몇 몇의 아저씨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아버지가 ‘상태도’란 섬으로 한문서당 훈장 길을 떠났고, 할머니가 목포 집을 지켰다. 고물과 양은냄비가 가득했던 옆방을 말끔히 치우고 새로 사글세를 놓았다. 그곳에 형사처럼 날렵하고 말쑥하게 양복을 입은 키 큰 남자와 어린 숙이 자매가 이사해 왔다. 숙이의 언니는 나보다 고학년이었고, 그 아래 숙이가 외로운 내 어린 시절의 단짝이 되어주었다. 어느 날 갑자기 부모가 없어진 나와 숙이는 마찬가지 고아신세여서 얼른 가까워질 수 있었을까. 남자는 육군 대위였다고 한다. 그는 여행을 다니느라 자주 집을 비웠다. 흑산도를 다녀오고, 강원도를 다녀오고, 대전이며 대구를 다녀와서는 할머니에게 인사했고, 나는 그 여행지의 도시 골목들을 상상해 보곤 하였다. 그 골목은 언제나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불고 있었고, 주점의 가리개 천 조각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가게와 외로운 동네의 풍경 속에서 터벅터벅 걷는 사람은 대위였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꿈에서 깨어나면 대위가 찾으려 했던 사람이 내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조차 들었던 것이다.  
 
  어느 날인가 나는 고물이 가득했던 방이 어느새 도배를 하고 장판이 깔려 깨끗하게 정돈된 숙이네 방에 있었다. 무심코 벽에 걸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범상치 않은 인물을 가리키며 누구냐고 물었다. 숙이는 그게 하느님이라면서 손가락질을 하면 지옥에 가니 그냥 쳐다보기만 하라고 소곤거렸다. 모르고 한 손가락질은 용서를 받았지만, 알고서 한 것은 지옥행이다? 지옥과 천당사이를 저울질하던 나는 현실을 인식하기 시작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숙이의 하느님을 향해 손가락을 들었다. 그때 나의 의도는 손가락에 있었기 때문에 질문의 내용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 내가 시도한 반항을 지금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보아라. 내가 지옥에 떨어지는가.’

  나의 지옥행 선언이후 숙이는 그때부터 나의 부하가 되기로 작정하였던지 구석에 있는  큰 옷가방을 뒤져 무언가를 꺼냈다. 내 앞에 놓인 초록색 필통에는 칼 두 자루가 X자 형태로 교차한 육군 장교의 휘장이 들어있었다. 숙이가 그 훌륭한 장난감을 내게 바쳤다. 

  그러던 또 어느 날, 대위가 한 여자를 데리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여자는 검은색바탕에 꽃무늬가 있는 치마를 입었었다. 강원도 홍천 식당에서 찾았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대위가  이 여자를 찾으려고 전국을 헤맸던 모양이었다. 그들 사이에 몇 마디 말이 오가더니 갑자기 여자가 마당에 주저앉았다. 대위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미친 듯이 장독대의 모서리에 있던 큰 돌을 빼어내 머리위로 높이 쳐들었다. 나는 그때의 느닷없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할 지 몰랐다. 대위는 주저앉은 여자의 무릎을 향해 돌멩이를 힘껏 내리쳤다. 꽃무늬 치마위에 떨어진 큰 돌은 두 조각으로 부서졌다. 여자가 비명을 질렀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저 피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은 것만 어렴풋이 떠오를 뿐이다. 할머니가 마루에서 일어섰고 대위가 거칠게 마루를 밟고 옆방으로 들어가더니 톱을 들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집짓는 목수들이 쓰던 선명한 양날톱이었다. 그때 숙이가 팔을 벌렸다. 이성을 잃은, 아니면 사나운 이를 위협적으로 드러낸 맹수를 상대한 것이었지만 톱날에 밀려 쓰러졌다. 날카로운 아이의 비명을 깔고 여자는 까맣게 펼쳐진 화단의 중앙에 앉아 참형斬刑을 당할 판이었다. 대위는  칼을 비켜 든 무사처럼 다가섰다. 할머니는 처녀시절 아편과 비단보부상을 다녔을 만큼 산전수전에 통달한 보살이었다.  

  ‘이 무슨 경우 없는 짓인가. 그만두지 못할까?’

  대위는 명령을 하달 받은 군인처럼 멈칫 서더니 톱을 팽개치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할머니의 결기 있는 목소리를 그 이후에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여자는 비틀거리며 마루 끝에 걸터앉았고, 숙이는 팔뚝에서 흐르는 피의 위기를 울음으로 알리고 있었다. 톱날에 찢긴 검은 상처와 피가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할머니는 치맛자락을 이빨로 끊어 내어 상처를 동여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대위가 퇴장해 버린 참극의 무대에서 나의 역할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대위’라는 엘리트 전사의 폭력으로 흐트러진 꽃밭에서 햇볕을 쬐는 조숙한 디오게네스가 될 수 있었다. 그때 내 나이 학교가기 전 일곱 살쯤이었고, 숙이는 나보다 한두 살 어린 대여섯 살. 이른바 ‘대위의 딸’이었다.

  ‘푸가초프의 농민반란’을 배경으로 한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소설에 ‘벨로고르스크’요새의 사령관인 미로노프 대위의 딸(마리야 이바노브나)이 나온다. ‘마리야’는 자신의 약혼자가 바로 아버지를 죽인 원수(푸가초프)에게 충성을 맹세한 ‘표트르 안드레예비치’인 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원수의 부하이면서 조국의 배신자이기도 한 표트르를 구하기 위해 뻬제르부르그의 궁전에서 ‘에카테리나2세’ 를 직접 만나 사면을 청원하는 용기를 발휘한다. 이른바, 여자에게는 호화로운 명예와 화려한 계급도 자신에게 헌신한 사랑 앞에는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재확인시키는 대목이다. 그런데 왠지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푸시킨의 ‘대위의 딸’은 짧은 단편이지만 숨겨진 복선이 복잡했다. 최인훈의 ‘화두’에서는, 옳은 일이라면 누구보다 앞장서고 아무리 악한이더라도 인간적인 면을 중시하는 러시아인의 고유한 의기義氣로 보아주고 있다. 또 한편에서는 천하의 악당일망정 그에게서 은혜를 입은 사람은 바로 그 악당을 존경하는 법이라며 일제하의 친일 행위와 근래의 어느 사람의 수족 노릇하는 것을 대범하게 바라보는 호인好人의 해석도 있다.        

  ‘푸카초프 반란 사문위원회’에서 종신유배형을 선고받는 표트르는 결국 사면을 받고 푸가초프의 사형장면을 목도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눈빛을 확인한다. ‘염화시중의 미소’이련가. 여기에 ‘푸시킨’의 ‘화두’가 꽂혀 있다고 생각한다. 프랑스혁명보다 15년이나 빨리 등장한 이 사건을 트로이의 현장발굴처럼 역사의 무대에 올려놓은 것이다. 이것은 50년 이후에 벌어진 ‘데카브리스트’참극에 같은 저항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제국의 니콜라이 황제에게 충성하기를 거부한 젊은 장교 삼천 명의 희생을 기리기 위한 푸시킨의 ‘대위의 딸’은 그 자존심의 역사를 지키는 증인이 된 셈이다. 그 후 푸가초프가 살았다던 ‘볼가강’의 카자흐족의 이야기는 ‘고요한 돈강’으로 전해졌고 ‘스탈린그라드’의 전투로 이어졌다. 결국 푸시킨의 예언은 승리와 환희로 연결되어 대국의 대합창곡이 되었다. 막강한 권력과 제도를 수호하려는 세력과 이른바 ‘대위’로 통칭되는 기득권층의 명예로운 작위가 결국 농민과 공인 등의 하층민들의 한숨과 땀 위에 세운 양날의 칼이고 보면, 모든 것을 과감히 희생시킨 청년을 위해 제 이, 제 삼의 ‘대위의 딸’이 그 이후에 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프’를 구원하는 ‘소냐’와 어느 도시의 빈민가 난롯가에 사모바르(주전자)를 얹는 ‘어머니’가 모두 대위의 딸들인 것이다. 하지만 내 어릴 적, 이 전화의 목소리의 주인공은 ‘대위’와 ‘딸’이었을 뿐이다. 폭력과 피와 울음이 있는.  

  이십 대 중반시절, 인도양으로 향하는 원양어선에 승선해 있을 때도 ‘대위와 딸’은 내 주위에서 여전히 서성대고 있었다. 많이 잡히길 바라던 참치가 잡히지 않을 때쯤이면 성가신  큰 상어가 자주 낚시에 걸려 올라왔다. 나는 갑판 위에서 거칠게 요동치는 큰 상어를 내려다볼 때마다 양날톱의 대위가 생각났다. 상어의 큰 이빨은 마치 대위의 톱날처럼 날카로운 힘이 있었다. 그 놈은 아무리 굳센 뱃놈의 구리 빛 팔뚝일망정 거침없이 물어 뜯어버릴 기세로 저항했다. 그 상어 앞에는 항상 연약한 숙이가 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어릴 적의 안 좋은 기억을 모두 잊고 이제는 더 이상의 슬픔이나 고통을 느끼지 않고 살아왔다면 그보다 더 좋은 소식이 어디 있으랴. 미국에서 무시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말이 설사 거짓말일지라도 반가웠다. 이제 나만 그 기억의 골목을 홀가분하게 벗어나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숙이가 미국으로 가기는 잘 갔다고 생각했다. 외로움만 없다면, 흑인 남편이건 이혼을 했던지 간에 아무려면 이곳보다 못하랴 싶었다. 이 땅에서 용기 하나만 가지고 살아가기가 어디 쉬운 일이던가. 숙이는 미국으로 떠나면서 공항에서 전화를 했다. 한시도 잊어 본 적이 없는 첫사랑을 만나 기뻤다면서 눈썹 끝에서 안녕을 날리는 투다.    

  ‘탱큐 캡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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