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23일. 바람 없이 맑음.
영국문학기행 닷새째다. 아일랜드에서 본 훌륭한 작가들의 흔적을 가슴에 담고, 이제 에딘버러에서부터 남행 중이다. 오전에는 목가적인 호수지역 원더미어에서 워즈워드가 살았던 그림처럼 아름다운 도브코티지에 들려, 그가 호수를 바라보던 이층 거실에서, 산책하며 영감을 얻었다는 마을의 골목길에서 또 다른 서정에 젖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 오후는 나에게 특별하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이 있겠지만 영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나로서는 제임스 조이스나 예이츠, 셰익스피어 등의 고전은 소화해내기가 솔직히 어렵다. 그런데 에밀리 브론테(Emily Jane Bronte, 1818-1848)는 다르다. 왜? 그냥 좋다. 그녀의 생가가 있는 하워스를 찾아가는 지금, 여학교 때 《폭풍의 언덕》을 읽고 계속 나를 짓누르던 음산하고 애처로운 사랑의 잔상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황량한 언덕의 보라색 히스꽃밭에서 주인공 캐서린을 만나 손을 꼭 잡고 거닐면서 ‘그가 나보다도 더 내 자신’이라는 히스클리프를 향한 그녀의 사랑을 다시 확인하고 싶은 그날인 것이다.
《폭풍의 언덕》은 에밀리 브론테의 유일한 소설이다. 요크셔 지역 황량한 들판의 꼭대기, 탑위든스(Top Withens)에 서있는 외딴 저택,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이 무대이다.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현실을 초월한 격정적인 애증과 애드거와 이사벨을 향한 히스클리프의 잔인한 복수로 점철되는 작품은, 영어로 쓴 최고의 소설로 평가된다. 서머싯 몸은 “사랑과 고통, 그리고 그 잔인함을 이토록 강렬하게 표출해낸 작품은 없었다.”했다.
하워스는 아일랜드 출신이며 케임브리지대를 나온 지식인, 패트릭 브론테 사제가 1821년 온 가족을 데려와 살았던 마을이다. 그는 부인과 아들 하나, 딸 다섯을 모두 잃고 자신도 1861년 세상을 떠나 거의 평생을 봉직했던 교회의 한 기둥 아래에 먼저 간 가족과 함께 묻혔다. 일명 브론테 빌리지, 하워스는 브론테가족의 삶과 죽음이, 아니 그들의 영혼이 오롯이 함께하는 마을이다.
해마다 수 천 명이 방문한다는 ‘브론테 박물관’에 갔다. 작가인 브론테 세 자매가 평생을 살다간 그 사제관 건물이다. 작고 조용한 시골의 좁은 언덕길을 올라 마을이 끝나가는 곳에서 교구 공동묘지를 바라보고 서있었다
박물관에는 그들의 손때가 묻어있는 가구, 생활 용구, 책, 편지, 크고 작은 구두, 피아노 등이 전시되어 그들의 유년시절의 모습도 짐작케 했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초판본이며 담배종이에 쓴 시, 손바닥만 한 노트의 가운데에 예쁜 그림을 그려 넣은 그녀의 친필 일기장을 보며 나는 그녀를 본 듯 애틋하고 반가웠다.
특히 눈길을 끈 건 에밀리의 오빠인 화가 브란웰이 그린 ‘세자매의 초상화’다. 진본은 영국국립초상화 미술관에 소장되어있고 복제품이다. 원 그림에는 브란웰 자신도 그렸다는데 지워버린 흔적이 눈에 보였다. 그런데 마약과 도박에 찌들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브란웰은 그림 속의 자신을 왜 지웠을까? 초상화를 보는데 작품 속의 남자주인공 히스클리프가 생각났다. Heath(황야)와 Cliff(낭떠러지)의 합성어인 Heathcliff라는 이름을 통해 작가는 처음부터 ‘사랑, 증오, 복수’의 화신인 주인공의 거친 폭풍 같은 생애를 예고했던 것이다. 지워진 브란웰의 흔적에서 나는 왜 히스클리프를 떠올렸을까.
또, 그곳에는 에밀리 브론테가 숨져간 검정색 소파도 잘 보존되어 있었다. 그녀의 손에 언니 샬럿이 히스꽃을 쥐어주었다는 일화와 함께. 그녀는 책 출판 후 비윤리적이라는 혹평만 실컷 듣다가 이듬해 결핵으로 죽었다. 1818년에 나서 1848년에 갔으니 꼭 30년을 살다 갔다. 소설을 쓸 때도 틀림없이 기침을 콜록거리며 고통 속에 신음했을 것이다. 이렇게 슬픈 생을 살다 간 한 예술가의 작품에 왜 우리는 전율하며 함몰되는 걸까. 버지니아 울프도, 베토벤도, 반 고흐도 그렇다. 일상적인 행복과는 거리가 먼, 가슴 아픈 생을 산 예술가들의 작품을 우리는 사랑하고 열광한다. 불행해야만 후세에 평가 받는 명작이 나오는 걸까.
거의 여행도 하지 않고 얌전하게 시골에서만 지낸 에밀리가 그렇게 충격적인 작품을 썼다는 것은 미스테리로 통한다. 그러나 내가 초상화로 본 그녀의 모습에선 기품이 느껴졌고, 예쁜 입매는 단호했다. 언니 샬럿이 《제인 에어》를, 에밀리가 《폭풍의 언덕》을 출간한 게 1847년이다. 160년도 전에 외진 시골에서 학교 교육은 거의 받지도 못한, 사제인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숨 막히는 생활을 한 그들이 어떻게 그런 작품 세계를 구상하고 그릴 수 있었을까. 더구나 당시만 해도 여자란 소설도 쓸 수 없는 하찮은 대접을 받은 시절이었지 않은가. 참으로 놀랍다. 둘 다 남자 이름으로 책을 낼 수밖에 없는 사회였으니 말이다.
작품 속의 실제 무대인 ‘탑위든스’를 보고 싶었다. 그곳은 걸어서 왕복 세 시간 거리라했다. 지금도 허물어진 저택의 벽들이 남아있다는데. 오랫동안 그려온 ‘바람 부는 황량한 벌판 꼭대기의 외딴집, 그리고 슬픈 히스꽃.’ 나에게 에밀리는 바로 캐서린이었고 또 히스클리프였으며, 탑위던스는 그 슬픈 사랑의 언덕인데 정작 거길 갈 수가 없다니.
먼 길 단체로 다니다 보면 으레 일정에 쫓기게 마련이다. 우리는 박물관 옆 샛길로 목장을 지나 넓은 벌판 위에 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 선 작지만 제법 가파른 봉우리에 올라 그곳에 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랬다. 어쩌랴. 여행 떠나기 전 공부한 소설 속의 구절이 떠오른다. “What vain weathercocks we are!” (세상살이가 다 그런 거지 뭐!)
달리는 차창 밖으로는 히스꽃 들판이다. 무더기로 어우러진 작은 들꽃벌판에 마음이 가는 건 그들이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서로의 상처를 쓰다듬는 아름다움 때문이 아닐까.
내일은 드디어 셰익스피어를 만나러 간다.
그의 작품 《As you like It.(뜻대로 하세요.)》 공연 관람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