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님, 죄송합니다
중고교 학창시절, 학교가 파하면 할아버지와 엄마 두 분의 제사 준비를 하였더랍니다. 제사나 차례음식이라면 두 눈 감고도 만들 만큼 줄줄이 외웠던 꿈 많은 소녀였지요. 나는 팔남매의 막내며느리임에도 불구하고 시제를 모시는 영광마저 얻었습니다. 하여 조상님들 덕에 사흘간이나 가게 문을 내리고 금싸라기 같은 연휴를 만끽하게 되었지요.
이 좋은 세상, 돈만 있으면 뭐든 살 수 있는 시대라는 말은 다소 진부한 표현일지 모릅니다. 장바구니 하나로 필요한 차례음식을 죄 장만할 수 있음이 새삼스러운 것만은 아니라지요. 삼색 전 부침 한 팩, 송편 한 팩, 조기 세 마리, 머리 세운 닭, 과일 몇 가지. 그래도 차마 나물만큼은 조리된 걸 올린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날것을 조금씩 샀지요. 시금치 한 단에 무려 오천 원을 호가합니다. 이 땅의 어머니이자 며느리들은 차례음식 장만하느라 분주합니다만, 추석 전날 마트와 재래시장의 풍경이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는 않더군요.
시장 한 가운데서 어느 연세 지긋하신 아주머니 한 분을 유심히 바라봅니다. 딸 아들 다 여의었으니 차례상도 간소하게 차려야 한다며 조리된 음식들을 바구니에 담으십니다. 바쁜 세상, 자식들도 싫어하는 음식 장만할 필요 무에 있냐며 이게 외려 절약되지 않느냐고 합니다. 그분과 나는 장을 보며 키득키득 웃다가 다시 또 대한의 며느리답게 근엄한 표정으로 물건을 고릅니다.
시장을 한 바퀴 돌아 양초와 향이 놓인 진열대 앞에서 우리는 다시 마주쳤습니다. 그 아주머니 나를 보고는, “자, 이제 차례상 다 봤으니께 향불만 피우면 되것소, 잉.” 하십니다. 남편 얼굴을 바라보며 “우리는 지방만 쓰면 되겠네요.” 하였더니 일언반구 대꾸도 안 합니다.
요(要)는 돈이 문제 아니겠어요? 세종대왕님, 아니 그렇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