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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좀 한번 믿어보세요    
글쓴이 : 박재연    14-03-20 14:17    조회 : 4,183
  붐비는 전철 안 승객들은 주변 풍경일랑 아랑곳없이 저마다의 스마트 폰에 열중해 있다. 이래가지고야 이동식 노  점상들의 영업이 잘될 리 없다. 이윽고 팝송CD'가 나타나 흘러간 노래를 들려주며 향수와 함께 그들의 지갑까지 쥐어짜려 하지만 차라리 마른행주를 짜는 게 나을 것 같다. 그가 멋쩍게 지나간 자리에 기모(起毛) 고무장갑이 나타났지만 주부인 나조차도 관심이 없다. 그 다음엔 칫솔이 나타났다. 그런데 칫솔은 방금 전 ‘CD'장갑과는 영업 방법이 조금 다르다. “천 원짜리 칫솔이지만 이 칫솔에 저의 인격과 양심을 팝니다. 제 인격을 한번 믿어보세요~”호소한다. 행복을 판다는 광고는 들어봤지만 단돈 천원에 자신의 인격까지 바겐세일(?) 한다니 무척이나 겸손한 인물 아니면 낯 두꺼운 사기꾼일 것이다. 어쨌거나 유형의 상품은 무형의 이미지로, 무형의 서비스는 유형의 상품으로 바꾸어 광고하라는 마케팅의 기본 원리쯤은 간단히 터득한 사람인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만 전자(前者) 쪽으로 내 마음이 기운다. 빈약한 살림에도 칫솔만큼은 쌓여있건만 또 칫솔을 사고 말았다. 사실은 저렴한 가격에 그의 양심을 사고 싶었지만 아직까지도 차마 개봉은 하지 못하고 있다.
 
   수명이 다된 형광등을 깔아 끼우고 나니 이번에는 싱크대 수도꼭지에서 미세하게 물이 샜다. 그뿐 아니다. 양변기 물탱크며 욕조 샤워기도 안주인의 몸뚱이처럼 슬슬 맛이 가고 있었다. 두 업자에게 현장(?) 사진을 보내 견적을 받은 결과, 출장비까지 포함된 수리비가 둘 간에 5천원밖에 차이가 안 나니 가격 면에서는 양쪽 다 신뢰해도 좋을 듯했다. 하지만 굳이 비싼 쪽으로 마음이 쏠렸는데 그것은 오직 단 몇 분간의 통화 때문이었다. 그가 특별히 친절했던 것도 아니고 얼굴 한번 본 적도 없지만 수리부품이나 금액 등 지극히 평범한 몇 마디 대화가 알 수 없는 신뢰감을 주었던 것이다. 결국 나답지 않게 5천원이란 거금을 더 주고 작업을 맡겼다.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3’에 따르면 우리의 대인(對人) 신뢰도2010년 기준 22.3%라 한다. 낯선 사람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이 10명 중 2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신뢰를 뜻하는 영어 단어 trust의 어원은 편안함을 의미하는 독일어의 trost에서 연유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1년을 입어도 10년 된 듯한 옷, 10년을 입어도 1년 된 듯한 옷이라는 오래전 의류광고 카피가 생각난다. 우리는 누군가를 믿을 때 마음이 편안해진다. 혹시 배신당할까 염려할 필요가 없어 마음이 편안해질 뿐만 아니라 배신을 위한 예방에 들여야 할 비용도 줄어드니 에너지도 돈도 아낄 수 있는 것이다. 철학자이자 정치경제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명저 트러스트(trust)에서 사회구성원 간의 신뢰를 사회적 자본으로 규정하였는데 보이스피싱, 카드정보 유출에 이어 부동산 거래정보 해킹 등 우리사회의 불안과 불신이 커지고 사람들의 마음에도 방화벽이 높아만 가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지만 .요즘 같아서는 자연 아니라 원시시대로라도 돌아가고 싶은 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내가 칫솔설비'를 믿은 것은 내 자신이 신뢰를 잘 하는’ 22%에 속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말과 표정 그리고 사소한 몸짓으로 신뢰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나의 느낌이 예리한 직관이었는지 섣부른 오판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신뢰란 서로 믿는 것이지만 당사자 간에 완전하게 균형을 이루기는 어려우며 더욱이 상대가 신뢰할 만하다는 것을 입증할 때까지 기다려 줄 수만도 없다. 그러니 신뢰관계란 내게 충분한 정보가 없더라도 스스로 판단하여 먼저 만들어가는 것이다라는 누군가의 말을 위안삼아, 착각일지도 모르는 내 섣부른 판단도 합리화시킬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은 비록 싸구려 칫솔을 팔고 고장 난 수도꼭지를 고치면서 살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든든한 개인적 자본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보인다.
나를 그 자리에 대입시켜보았다. 나는 타인에게 얼마나 신뢰감을 주고 있을까? 단돈 천 원짜리 칫솔이라 할지언정 내 얼굴과 몸짓으로 단 한 개라도 팔 수 있었을까? 아니 그렇게 멀리 생각할 것도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의 첫 대면에서 나는 어떤 인상을 주고 있을까? 또한 가까운 주변의 신뢰에는 그에 걸맞게 행동했을까?
 
   그 옛날 중국 위나라의 인물 이극(李克)인물 감정법 5가지2000년이 지난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충고인지 모른다. 불우했을 때 어떤 사람과 친했는가? 부유했을 때 누구에게 베풀었는가? 높은 지위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을 등용했는가? 가난했을 때 탐취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나는 유독 이 물음에 마음이 찔린다.
궁지에 몰렸을 때 올바르지 못한 짓을 하지 않았는가?”
 
  <<통일>> 2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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