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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에는 마이너스가 없다    
글쓴이 : 정진희    14-03-27 18:01    조회 : 4,986
인생에는 마이너스가 없다
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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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점심때 가던 음식점을 어느 날 저녁 시간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똑같은 메뉴에 똑 같은 반찬인데 가격이 거의 두 배였다. 워낙은 저녁 때 받는 가격이 정상인데 점심 때 서비스 차원에서 싸게 드리는 것이라고 한다. 서비스 받는다는 기분을 전혀 못 느끼고 먹은 우리가 잘못 된 건지, 식사 값을 계산한 L선생이 도둑맞은 기분인데?” 라고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K선생이 그건 도둑이 아니라 칼 안든 강도를 만난 거라고 정정했다. 딱히 토론거리가 있어 만난 사이도 아니고 그저 밥 한 끼 같이 먹자고 만났다가 도둑과 강도라는 소재를 붙잡고 무슨 중대사라도 의논할 듯 서둘러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저녁 시간의 찻집은 술집과 달리 맥이 풀려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도 왠지 음울하다. 도둑과 강도에 대해서 토론하려는 우리들의 표정도 그리 밝진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오가는 토론과 스마트폰의 검색 결과, 도둑이란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는 따위의 나쁜 짓, 또는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이며, 강도는 폭행이나 협박 따위로 남의 재물을 빼앗는 도둑, 또는 그런 행위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음식점의 경우 협박이 아닌 정중함으로 지갑 속의 돈을 덜어가는 강도님이라고 억지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칼 든 강도에 비하면 얼마나 신사적이고 고차원적이냐는 칭송도 아끼지 않았다.
 
이십 여 년 전 내가 만났던 강도는 나중에 생각해보니 귀여운 초보 강도였지만 그 당시는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공포였다. 초등학교 다니는 큰 애가 학원 간다며 나간 후 문을 잠그지 않았던 내 불찰이 빚은 참극이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와 돌아서는 그의 손엔 칼이 들려있었다. “나 강도야.”하며 운동화를 신은 채 거실로 들어와선 작은 애를 방으로 들여보내라 고 했다. 180센티가 넘는 키에 모자를 눌러 썼지만 작은 얼굴이었다. 나는 그 짧은 순간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아이를 방으로 데려다 주는 사이, 목숨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필름처럼 지나가던 지난날이 다시 지나갔다. 내 불우와 병마에 함몰되어 세상을 등지고 사랑을 배반하고 살았던 부끄러운 청춘 이후, 그것을 만회라도 하듯 바르고 의롭게 살려 노력하는 내게, 정말 신이 있다면 이런 벌이 내리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거실로 나가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유, 난 대학교 다니는 우리 조카가 왔는줄 알았어요. 걔가 맥주 먹고 싶으면 친구들 끌고 우리 집엘 자주 왔거든요. 학생 이리 앉아요.”하는 내 말에 긴장을 풀지 않는 그가 노끈을 가져오라고 했다. 나를 우선 묶겠다는 것이다. “학생, 내가 원하는 것 다 줄 테니까 더운데 여기 앉아서 일단 주스 한 잔 마셔요. 세상에 이렇게 훤칠하고 잘 생긴 학생이 오죽 답답하면 이러겠어요.” 라는 말에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날 그 강도는 현금이 별로 없으니 보석을 주겠다는데도 그건 필요 없다 했고 천 원짜리도 필요 없다며 만 원 권 두 장과 당시 개인 수표였던 가계수표에 오십만원을 써 달라며 갖고 한 시간 만에 갔다. 현관문을 나서며 그는 신고하면 죽어.”라는 말을 남겼다. 긴장이 무너진 나는 현관문 앞에 주저앉아 작은 애를 붙잡고 울었다. 잃어버린 것은 고작 이 만원, 신문에 오르내리던 성추행이나 상처 없이 그를 내보냈다는 것에 대한 안도와 내 기도를 저버리지 않은 하늘에 대한 감사였다.
당연히 나는 신고하지 않았다. 시민 정신보다 딸 둘을 키우는 엄마로서 해코지 당할 것이 더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주일 정도 지난 어느 날 경찰서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강도가 다른 집엘 들어갔다가 잡혀 경찰서로 인계되었고 그동안 저지른 일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우리 집을 다녀간 사실을 안 것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경찰서 어느 방에서 만난 거구의 강력계 형사는 강도 보다 더 무서워 보였다. 잃어버린 것은 별로 없고 두 딸이 있으니 나는 그냥 빼달라고 억지를 부렸지만 그 강도가 이번일로 감옥을 가면 십년은 있다 나올테니 염려 말라고 했다.
그리고 한 달 쯤 지났을까. 어떤 아주머니가 주스 한통을 사들고 찾아왔다. 그 강도의 어머니였다. 아비 없는 자식 키우느라 제대로 돌봐주지 못해 그렇다며 용서를 구했다. 그 증거로 용서한다는 서면에 확인 도장을 요구했고 이튿날까지 인감증명과 주민등록등본도 부탁했다. 다음날 그녀가 요구한 서류를 건네주며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정신적인 충격에 대한 위로는커녕, 잃어버린 것에 대한 보상조차 없이 그저 자기 자식만 용서해 달라며 이런저런 심부름까지 시킨 그녀에 대한 서운함과, 그와 그녀가 불쌍해서 내 의견은 한마디도 하지 못한 나에 대한 한심함이었다.
그러나 그 사건은 내게 인생에는 마이너스가 없다는 엔도 슈사쿠(1923-1996)의 말을 확실히 체험하게 한 것임을 알았다. 그 이후로 나는 현관문을 철저히 잠갔고,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침착하면 돌파구가 보인다는 것을 알았고, 염치없는 사람은 용서는 받아도 진심은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더구나 하늘이 무심치 않다는 것을 알았으니 얼마나 큰 플러스란 말인가. 엔도 슈사쿠는 마이너스 속에 플러스가 있고, 플러스 속에 마이너스가 있으니 위기를 찬스로 삼아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가치관을 가질 것을 설파했다. 이것은 소강절 선생(1011-1077)이 재앙이란 복이 의지하는 곳이며, 복이란 재앙이 숨어있는 곳이라고 한 말과 통한다. 위기에 닥쳤다고 섣불리 좌절할 것도 아니고 경사가 났다고 너무 들뜨지 말라는 것이다. 그 후 인생에 마이너스가 없다는 말은 내 삶에 지표가 된 것은 당연하며, 고달프거나 억울한 일을 당해도 든든한 위로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그 위기가 나중에 어떤 감사로 돌아올지에 대한 기대마저 갖게 되었으니 산다는 것의 평범한 진리를 요란하게 체득한 것이라 하겠다.
 
오래전이라 잊은 줄 알았는데 그 날을 다시 떠올리니 가슴 한 쪽이 또 죄어드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칼 들고 들어와 노끈을 찾던 초보 강도, 자기 마음을 편들어 주니 체면을 차리려 보석도 천 원짜리도 놓고 간 귀여운 강도, 어리숙한 행각으로 덜미 잡힌 어설픈 강도가 한없이 가엾어 진다. 내가 보태준 용서로 감옥행은 면했는지....지금 어디서 무얼 하며 사는지 모르지만 그를 다시 만난다면 그에게도 인생에는 마이너스가 없다는 말을 들려주고 싶다. 찻집에서 머리를 맞대고 내 얘기를 듣던 사람들은 도둑과 강도도 이 세상에 꼭 있어야하는 존재라며 그들을 우리의 선생으로 삼자고 했다. 자리를 일어서는데 K선생이 말했다.
도사부일체 盜師父一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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