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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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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화선 일기    
글쓴이 : 정진희    14-03-27 18:08    조회 : 5,488
간화선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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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희
 
스승이 탁자 위의 컵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이것이 뭐냐?” “컵입니다.” “컵을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이냐?” 목구멍에서 라는 단어가 오르락내리락 거렸다. 그렇게 뻔한 답을 물었을 리가 없기에. 그러나 말고 무엇이 컵을 본단 말인가. “보인다는 것은 보는 것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 보는 것을 찾아라.” 스승이 우리에게 내린 화두였다. 그리고 언어나 문자가 아닌 몸으로 대답을 하라고 했다.
열 명의 제자가 스승을 향해 허리를 세우고 가부좌를 틀었다. ! ! ! 세 번의 죽비 소리와 함께 화두를 들었다. 보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의식을 집중했다. 몸으로 답을 하라니 몸 어딘가에 답이 있을 터. 의식으로 몸 구석구석을 훑기 시작했다. 대뇌 소뇌, 전두엽 후두엽, 심장 폐 위 대장과 척추, 근육과 정맥 동맥까지. 내 몸이었으나 각자의 기능을 하는 부속품으로 알았던 것들이 느닷없는 내 눈길에 흠칫흠칫 일어났다. 하나하나가 모두 생명이었음을 느끼는 순간, 이것들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나의 명령 없이도 보고 듣고 웃고 우는. 그러나 풍선처럼 부풀어 가는 궁금증을 비웃는 듯 전신이 노곤해지며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렇게 저녁 수행시간 이후에 든 잠은 처음으로 맛 본 꿀잠이었다. 창밖으로 스미는 여명에 눈 뜬 새벽녘, 오랜 불면증과 꿈에 시달렸던 피곤은 어디에도 없었다. 몸 안 가득 차있는 맑고 신선한 기운을 신기해하며 다시 허리를 세웠다.
아침이 되자 스승이 다시 죽비를 들었다.
의식을 집중해서 내면으로 들어가라. 깊이깊이 들어가다 보면 너를 맞이하러 나오는 것이 있다. 집중!” 세 번의 죽비 소리를 신호로 다시 수행이 시작되었다. 화두를 들고 내면으로 의식을 집중해가기 시작했다. 잠깐씩 의식이 단절되는 그윽함이 다가왔다가 사라져갔다. 그것을 놓치는 안타까움을 따라 라는 것이 해일처럼 덮쳐왔다. 세 살 무렵 흑백사진 속의 부터, 아버지의 죽음을 맞았던 14, 혼란과 회의와 분노로 얼룩진 청춘을 지나 화합을 위한 갈등의 시간들....그렇게 세상과 가족과 타인과의 상처로 너덜너덜해진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 가 영화 필름처럼 지나갔다. 그리고부터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뜨겁고 짠 맛이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자기 연민이 휩쓸고 간 자리로 힘이 모아졌다. 단전이었다. 그곳으로 의식을 집중하자 몸이 뜨거워졌다. 그 뜨거움을 붙잡으니 등줄기로 땀이 흘렀다. 그리곤 뜨겁지도 짜지도 않은 눈물이랄 수 없는 물이 눈에서 줄줄 흘러 내렸다.
마치 덜 잠긴 수도꼭지처럼 얼마나 물이 흘렀을까. 어느 순간, 화두도 없고 라고 알고 있던 의식도 없고, 생각의 이편과 저편이 모두 사라진 광대무변한 공간으로 맑고 성성한 기운이 들어찼다. 그 깃털처럼 가벼운 환희에 몸을 떨었던가? 온 몸의 진이 다 빠졌는지 쓰러질 듯 누웠다. 창밖의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침묵으로 시작했지만 보는 것에 대한 대답은 모두가 달랐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 뒤로 벌렁 쓰러지는 사람, 방바닥이 꺼질 듯 들썩이는 사람, 자기 몸을 부서져라 때리는 사람 등. 각자의 성격대로 답을 한다는 것이 스승의 말씀이었다.
 
간화선(看話禪)은 말 그대로 화두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수행법이다. 중국 선종의 1조인 달마대사 이후 곧바로 자기의 마음을 향하여 그 본성을 보아 깨달음을 이룬다.’는 돈오돈수를 목표로 처음에는 묵조선(침묵 수행)이 유행했으나 조주선사에 이르러 화두를 들고 수행하는 간화선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남송의 대혜선사가 중국 선종의 전통적 수행법으로 확립시켰으며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의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처음 들어왔다. 간화선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서산대사와 경허선사에 의해 크게 발전했으며 현재 우리나라 선불교의 주요 수행법이다.
직관적인 깨달음을 추구하고 존재 자체에 대한 탐색을 추구하는 선불교는 인생이 고()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고의 원인인 갈애(渴愛), 즉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가장 빠르고 쉬운 길이 간화선 수행이다. 몸을 통해 곧장 생명의 실상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다. 그 길에 만나는 갈애 덩어리를 은산철벽이라 한다. 그 장벽을 온 몸으로 뚫고 나가 무명이 밝아지면 보리자성(菩提自性)이 드러난다. 명상이 갈애의 불길을 다스리고 조절하는 것이라면 간화선은 갈애의 불길을 치솟게 질러 연료를 완전히 태우고 고갈시키는 수행법이다.
세월은 젊음 대신 지혜를 선사한다던가. 지천명에 이르러서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상대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품이 생긴 것 같다. 세상에 이해 못 할 일들이 사라지고, 내려놓고 비우는 만큼, 나이만큼 편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직접적인 경계에 부딪치면 여전히 피 흘리며 쓰러졌다. 추스르고 일어서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는 있으나 그때마다 스스로에 대한 절망과 자괴감으로 괴로웠다. 죽을 때까지 이 짓을 반복하고 살 순 없지 않은가. 하루를 살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고요와 평화가 절실했다.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내가 주인으로 사는 삶. 더 나아가 이타와 상생의 삶을 살고픈 간절함이 있다. 그것의 시작은 내 안의 맑고 깨끗한 자성과 만나는 일이다. 본래 청정하여 본래 불성인 를 찾아 이제 첫걸음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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