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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통화    
글쓴이 : 이영옥    14-09-26 10:43    조회 : 8,968

영상통화

                           이영옥

“디띠띠띠디”

 컴퓨터에서 로봇 소리 같은 발신음이 울린다. 스카이프 화면의 영상통화 아이콘에 초록 불이 들어오고 단추를 누르자 화면 가득 그의 웃는 얼굴이 나타나 ‘마누라’ 하고 나를 부른다. 내가 손을 흔들며 ‘남편’ 하고 답을 하자 그가 뺨의 보조개를 깊게 파며 실눈을 뜬다. 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목을 길게 늘여 쓰다듬는다. 자고 일어나면 언제나 하는 버릇이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남편이 내 곁에 있는 것 같아 편안해진다.

  남편은 지난 6월 헝가리 부다페스트 건설현장 소장으로 발령받아 출국했다. 수주를 준 회사에서 남편을 지목하여 갑자기 받은 발령이라 내가 어리둥절, 허둥지둥 하는 사이에 그는 국제공항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배웅하는 딸들의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을 보면서 ‘그가 또 내 곁을 떠났구나.’ 라는 생각을 하였다.

  남편과 나는 ‘지긋지긋’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자주 떨어져 있어야 했다. 그의 전공이 ‘건축공학’이며 ‘시공기술사’인 까닭에 결혼 초부터 일산, 금산 등의 국내뿐만 아니라 사우디현장을 비롯해 해외에서도 근무를 했다. 근무지로 가족이 따라가는 직원들도 많았지만,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나로서는 꿈도 꾸지 못하였다. 격주로 금요일에 올라와 월요일 새벽에 내려가는 그를 십여 년에 걸쳐 배웅해 왔다. 그동안 두 딸은 초, 중,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했고, 스물여덟, 스물여섯에 결혼했던 남편과 나도 흰머리가 천연스레 자리를 잡아가는 중년이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친구는 “신혼 때 우리 신랑은 해외발령을 받자마자 사표를 냈어. 신혼인데 떨어져 지내기 싫다고. 너네도 그러지 그랬니?” 한다. “그러게 말이야, 신혼이었는데.” 하고 맞장구를 치며 웃었지만, 남편은 스물여덟에 이미 다섯 식구의 가장이었다. 그 때 우리 집 형편으로는 사표 낼 엄두를 감히 하지 못했다. 남편의 월급으로 병환 중인 시부모님을 모시고 뱃속 아기까지 챙겨야 했다. 책임감 강한 남편은 사우디현장에서 신혼을 혼자 보냈고, 나는 남편 없이 두 아이를 낳아야 했다. 그 때 혼자 먹었던 미역국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알뜰하게 생활한 덕분에 두둑한 통장이 생기고 아이들도 아빠의 빈자리를 티 내지 않고 잘 자라 주었다. 남편의 휴가 때면 가족이 함께 떠나는 여행으로 돈독한 애정을 다져나갔다.

  이십 년 넘게 현장에서 보냈던 남편이 드디어 2009년 7월 본사로 내근 발령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현장에만 있던 그에게 새로운 일인 영업부의 업무는 낯설고 생소한지 그는 많이 힘들어 하였다. 그렇지만 나는 행복했다. 조석으로 그를 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했다. 그 때의 행복했던 순간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의 짐 가방에 영양제며 홍삼이며 건강보조식품을 넣다가 문득

  “아, 지긋지긋하게 떨어져 산다.”

  장탄식을 했다. 남편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무룩한 표정이 되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마음이 내는 불만과는 다르게 손은 미울 정도로 익숙하게 착착 짐을 꾸려나갔다. 필요할 때를 대비해 쓰레기봉지까지 가방 앞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나는 남편의 출국 전날 잠을 설쳤다. 단 한 번도 없던 일이다. 그도 출국장 앞에서 전에 없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자꾸 뒤돌아보며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음날 그에게서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그곳은 통신망 사정이 여의치 않아 호텔을 벗어난 곳에서는 전화를 할 수 없다고 했다. 그 다음날까지 남편에게서 전화가 오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디띠띠띠디‘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데 갑자기 컴퓨터에서 전혀 생소한 소리와 함께 화면이 바뀌고 있었다. ‘영상통화’ 아이콘을 누르자 남편이 나타났다.

  “얘들아.”

  두 딸이 달려 나와 아빠를 부르고 나도 남편을 불렀다. 남편이 실눈을 뜨고 웃고 있었다.

  “시차가 7시간이야, 아침은 호텔식, 점심은 한식, 저녁은 현지식. 근데 이곳 음식은 짜. 무지 짜. 허허허.”

  남편은 차근차근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서너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나는 화면의 방향을 돌려서 그에게 TV스포츠 방송도 보여 주었다. 남편이 스포츠 중계를 시청하는 동안 나는 설거지를 하였다. 그가 “마누라”하고 부르면 물 묻은 손으로 달려와 화면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응? 왜?” 하면 그가 씨익 웃으며 “그냥.” 했다. 내가 하품을 하자 남편이 그만 컴퓨터를 끄고 자라고 하였다. 나는 끄라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그냥 밤새 켜 놓으련다고 했다. 그가 안쓰러운 얼굴로 그러자 했다. 나는 밤새 영상통화를 켜 놓고 잠을 잤다. 그가 일을 하는 도중 간간이 자는 나를 지켜보았고 나는 그가 곁에 있는 듯 단잠을 잤다.

  그가 헝가리로 떠난 지 벌써 이 주일이 되었다. 매일 하루에 한 번 낮 12시30분, 헝가리 시간 새벽 5시 30분에 남편과 만난다. 그는 일어나자마자 ‘마누라’를 부르고 얼굴을 두 손으로 문지르고 목을 길게 빼 쓰다듬는다. 나는 오늘도 변함없는 그의 습관에 안심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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