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문학회 >  회원작품 >> 

* 작가명 : 최기영
* 작가소개/경력


* 이메일 : ccy6104@never.com
* 홈페이지 :
  그냥 쉬는 것이 아니다    
글쓴이 : 최기영    14-12-01 23:27    조회 : 13,912
그냥 쉬는 것이 아니다
 
승마장 겨울은 내 몸 하나 움직이기도 싫을 정도로 추웠다. 동장군의 기세에 수은주는 매일 영하 10도 안팎으로 내려가며 자가 수도 모터를 멈추게 했다. 언 수도를 녹이기 위해 종종거리는 동안 추운 해는 이미 중천에 자리 잡았다. 말들은 밥과 물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나를 도와 형제처럼 함께 일하던 마부 정씨까지 퇴사했다. 그가 책임졌던 마구간 청소와 크고 작은 일은 물론 승마장 운영까지, 일인이역을 하는 동안 지옥 같은 겨울이 갔다. 나는 농부가 광에서 모종 씨앗을 꺼내 물에 적신 후 따뜻한 아랫목에 묻어 놓듯이 말과 함께 봄맞이 준비를 했다. 말들을 운동장으로 내몰았다. 말 운동장이라지만 일천 평도 안 되는 좁은 공간으로 마당 넓은 집 텃밭 정도 밖에 안 된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마사회 소속의 경주마가 휴양 할 때는 마리당 초지 2000평이 지급된다. 그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질주 할 때마다 말굽에 자본의 꽃인 돈을 달고 뛰기 때문이다. 돈이 생명보다 먼저인 세상이니 당연하다. 어쩌면 자본 사회의 상징인 이들이 마상마(馬上馬)와 비교되는 것, 그 자체를 그들은 기분 나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력을 다해 뛰는 경주마와 시퍼렇게 날이 선 칼날을 머리에 이고 우리 문화를 복원하는데 첨병이 되어 공연장을 누벼야하는 마상마, 모두 자신들의 임무를 위해 목숨을 걸고 뛰는 것은 같다.
나와 같은 인간들이 쌈짓돈 탈탈 털어 운영하는 승마장 말들이 휴양 할 때는 겨우 한 평반 정도의 공간 밖에 지급받지 못한다. 사라진 역사를 몸짓으로 복원하겠다는 명분에 도구가 된 불쌍한 말들은 그 속에서 먹고 싸고 쉬는 모든 일상을 해결한다. 나는 뻔뻔하게도 말들에게 돈 안 되는 일에 그나마 그것이라도 얻을 수 있는 것을 큰 복으로 알라고 매일 주문을 왼다. 구천(九天)까지 양귀신(洋鬼神)들에게 빼앗긴 현실이니 당연하다. 그러나 불평등이다.
승마장 운영이 여의치 않았다. 매년 겨울이면 아침 사료 배식 후 저녁 사료를 걱정해야 했다, 60년 만에 찾아오는 청마해라고 모두가 야단을 떨고 있다. 땅과 하늘을 잇는 청마처럼 올해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란다. 빛 좋은 개살구다. 올해도 예년과 똑 같을 것이란 예감을 갖고 바람을 따라 가듯이 승마선수와 지도자를 양성하기로 하고 비월(장애물)대를 설치했다. 운동장에는 이미 초보 수련생을 위한 원형마장과 주로 주변으로 활판(과녁)이 놓여 있다. 좁은 공간에 추가 장비를 설치하니 고시촌 두 평 원룸 안에 침대와 주방기구, 그리고 화장실까지 모든 편의 시설을 들여 놓은 듯이 옹색했다. 도심에 고층 빌딩을 짓듯이 이층을 올려야 할 정도다.
마방에서 나온 말들은 새롭게 설치 된 시설물을 관찰하기에 바빴다. 처음엔 낯선 물체가 두렵다는 듯이 얼쩡거리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빙빙 돌며 주둥이로 슬쩍 밀어본다. 반응이 없었다. 그렇게 한 참 동안을 탐색하던 녀석들 중 하나가 용기 있게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한 걸음 두 걸음 다가가더니 앞발을 들어 툭 찼다. 물체가 흔들거렸다. 녀석은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무단 침입자를 밀어버렸다. 순간 쿵하는 소리에 스스로 놀라 모두 큰 눈을 똥그렇게 뜨고 한 발짝씩 뒤로 물러섰다. 잠시 정적이 흘러도 반응이 없자 ‘뭐 이런 것이 있냐.’는 듯이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몸 풀기를 기다리던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채찍을 들어 하늘 위로 포물선을 그렸다. 말들은 여전이 요지부동이었다.
동절기가 시작되면 사람도, 동물도 몸이 경직된다. 때문에 녀석들이 적당한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했는데 두 달 동안 운동장에 내놓지 못했다. 변명이지만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날이면 말을 끌어내 운동을 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굴삭기를 불러 평지작업을 하거나 시설보수 작업을 했다. 결국 말들은 개 버들눈이 피어오른 오늘까지 한 참 동안을 한 평반 마방에서 보냈다.
녀석들은 나를 시큰둥하게 쳐다보더니 ‘당신 미쳤소? 우리에게 여기서 뛰라는 이야기요? 아직 땅도 녹지 않았는데, 그리고 곳곳에 송곳처럼 끝이 날카로운 짚단베기대가 놓여 행여 미끄러지면 우린 끝장이요. 자리도 안 되는 곳에 저것은 무엇이요? 사람 중에는 1원을 놓고 100원을 벌려고 하는 도둑놈이 있다고 하던데 꼭 그 짝이요. 이리 좁은 공간에서 뭘 하라는 것이요?’라며 힐끔거렸다.
나는 누군가를 속이려다 들킨 아이처럼 뜨악했다. 그러나 주인으로써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겨울 동안 푹 쉬었으면 이제 알아서 몸 관리를 하고 봄 일 할 준비를 해야지. 그래야 훌륭한 선수와 지도자를 키울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게 입만 내밀고 있으면 어떻게 하니? 나하고 산지가 벌써 몇 년인데 아직까지 그렇게 눈치가 없냐? 너희와 내가 함께 살려면 어쩔 수 없다. 그것을 양말(洋語)로 윈윈하다고 한다. 자~ 어서 몸들 풀어라. 겨울 동안 많이 갑갑했지.’사람에게 말하듯이 조용조용하게 말했다. 그러나 녀석들은 주인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린다는 듯이 어정거렸다. 나는 내심 미안했지만 화를 내는 척 채찍을 높이 들고 뛰라며 고함을 지렸다. 녀석들은 절규에 가까운 내 목소리를 동정하듯이 잠시 설렁거리며 운동장을 몇 바퀴 돌더니 멈추어 섰다. 그리고 벽돌 담을 두고 숨소리로 통방하던 놈들끼리 모여 푸푸~! 거리며 채찍을 들고 서 있는 나를 피해 저희만의 언어로 ‘올 겨울 추위는 그렇게 심하지도 않았는데 주인이 완전히 맛이 가벼렸어. 겨울 동안 쉬는 것이 쉬는 것이었나? 사료 한 번 배부르게 먹게 해주지 않았다. 청소 역시 깔끔하게 하지 않아 바닥엔 항상 똥, 오줌이 잘 비벼진 밀가루 반죽마냥 범벅이 되어 있어 제대로 눕지도 서지도 못했는데, 지들 무능력 한 것은 모르고, 웃겨! 그래 쉬었다고 하자. 근데 산도 요즘은 휴식기라며 윤번제로 입산을 통제한다는데, 살아있는 생명인 우리가 일 년 내내 사람을 태우고 뺑뺑이 돌다 겨울 동안 휴식을 취한 것에 대해 그렇게 배 아파하면 안 되지. 암! 동안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말이야. 봄이 오면 우리는 다시 열심히 공연장을 쫓아다니기 위해 그 동안 에너지를 충전 한 것인데 그것을 모른다는 말이야.’라며 주고받고 있었다.
말들은 마방에서 며칠 동안 갇혀있다 밖으로 나오게 되면 고삐를 풀어주기도 전에 운동장을 향해 광란의 몸짓으로 질주한다. 그러나 이 날은 유배지에 끌려온 듯 사방을 살필 뿐이다. 몇 달 동안의 시간이 본능을 마비시킨 것인가? 아니다. 놀던 버릇이 남아 농땡이를 치고 있었다. 지금 버릇을 고쳐 놓지 않는다면 나를 비롯 여러 사람들을 골탕 먹일 것이다.
모두를 위해 말 잔등에 안장을 얹고 올라 말을 순치시키기로 했다. 나는 불안했다. 말 잔등에 엉덩이를 붙이기도 전에 녀석은 동안 쉬며 축적한 힘을 다해 로데오를 칠 것이 뻔했다. 결국 나는 고삐를 잡고 버둥거리다 짚단처럼 휙 날아갈 것이다.
나이 벌써 쉰 넷, 호기를 부릴 나이가 아니다. 쉰 고개를 넘으면서 하나에는 마상재 연습을 하다가 가랑이 인대가 끊어졌고 둘에는 해변에서 쾌속 질주하는데 말의 안장이 돌아가는 무릎 관절뼈가 골절되었다. 복대를 제대로 조이지 않고 말 잔등에 오른 부주의였다. 셋에는 무상무예 연습을 하던 중에 로데오 치는 말 위에서 놓은 고삐를 잡지 못해 발힘으로 버티다가 결국 날아가 기절을 했다. 낙마를 하면서 들고 있던 검을 본능적으로 버린 탓에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다. 깨어나자마자 다시 말 등에 올라탔다. 모두 나이 값을 못하는 나의 치기였다. 그리고 나는 용광로 속을 수 십 번 들락거리면서 단련 된 무쇠도 한 십년 쓰면 마모되기 마련인데 아직 몸속에는 쇠를 심지 않았다며 호기를 부렸다. 뼈가 강한 것은 조물주가 팔자 사나운 아이에게 준 특별한 선물이었다며 “앞으로도 십년은 더 공연장에서 뛸 수 있다,”라고 욕심을 부렸다. 그러나 두려웠다.
결국 난 말들을 다시 마방으로 몰아넣고 한 마리씩 끌어내 원형마장에서 운동을 시키기로 했다. 녀석들을 마방에 넣으려 했으나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각설탕을 호주머니에서 꺼내 손바닥에 올려놓고 말들을 꼬드기었으나 입빠른 놈이 얌체같이 혀로 설탕만 살짝 물고 달아나버렸다. 이렇게 반복하기를 수차례, 겨우 말 한 마리를 잡아 고삐를 목에 거는 순간, 앞발을 들고 하늘을 향해 두발로 서서 ‘경주마는 뜀박질만 잘하면 그만이지만 마상마는 거의 매일 질주 본능마저 빼앗긴 채 머리 위에 창과 칼을 달고 달린다. 행여 서툰 무예인이 등에 올라 칼날을 잘못 휘두를 때면 머리통이 잘려나갈 수도 있다. 우리에게 세상 동물 중 제일 겁 많은 종자라고 놀리지만 그것은 마네킹이 되어버린 경주마에게 하는 이야기다. 우리는 불꽃이 튀고 대포소리가 요란한 전쟁터 같을 곳에서 의연하게 달린다. 제주도에 뿌리를 둔 한라마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공연장에 경주마를 세워봐라. 모두 미쳐 날 뛰는 바람에 무대에 들어오기도 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릴 것이다. 당신은 마상 말이 있기 때문에 잠든 기마 민족의 혼을 깨울 수 있다고 자랑한다. 우리는 돈을 벌지 못한다. 벌어도 아주 쪼금이다. 그러나 문화를 창출하고 관중들을 기쁘게 한다. 코앞만 보지 말고 멀리 봐라. 입으로 청마해라고 요란만 떨지 말고 말답게 살 수 있도록 기본소득을 보장해라.’며 히이~잉 괴성을 지렸다.
다른 녀석들이 무리를 지어 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귀를 쫑긋거렸다. 나 역시 녀석을 바라보았다. (월간 좌파)

 
   

최기영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10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글쓰기 버튼이 보이지 않을 때(회원등급 … 사이버문학부 11-26 92581
공지 ★(공지) 발표된 작품만 올리세요. 사이버문학부 08-01 947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