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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최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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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루지 영감    
글쓴이 : 최기영    14-12-01 23:42    조회 : 8,874
스크루지 영감
 
작년 봄이었다. 승마장에서 나오는 음식쓰레기와 말이 흘리는 사료 알곡들이 아까워 돼지를 기르려고 했다. 그러나 위암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아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말을 돌보는 관리인 아저씨는 “말도 힘들어 죽겠는데 돼지까지 키우게 되면 당장 퇴사하겠다”며 난리였다. 언젠가 아이 하나가 승마장 강아지 한 마리를 가슴에 품고 집으로 가져가겠다고 했을 때 아이엄마는 “개를 집으로 가져오면 내가 나가겠다”고 협박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웃음이 나왔다.
돼지는 결국 닭이 되었다. 오창 장날에 맞추어 장터에 나갔다. 난전(亂廛)이 펼쳐진 곳은 1950년 7월, 대한민국정부가 진보 단체에 도장을 찍어주었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보도연맹이란 관변단체를 만들어 사람들을 강제로 가입시킨 후, 수 백 명의 국민을 양곡창고에 몰아넣고 학살한 자리였다. 이유도 모른 채 죽임을 당한 그 사람들은 쓰레기처럼 창고 옆 방죽에 매몰 당했다. 그 자리에는 어린이 놀이터가 있었고 몇 명의 조무래기들이 땅의 기억을 모른 채 미끄럼틀과 그네를 타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학살의 현장에는 양곡창 대신 조립식 건물로 지어진 농협농기계 수리점이 있었다. 농기계를 수리하는 소리가 당시 선혈이 낭자했던 양민들의 아우성처럼 요란했다. 그 외 빈 자리를 비집고 뜨내기 장돌뱅이들이 모여 난전을 열고 있었다. 큰 북을 매달고 쇼를 하는 약장수가 없어 다행이었다.
장은 작았다. 그래도 분위기는 나름 풍요로웠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구경했던 즐거움 그대로 난전에 깔린 채소의 상큼함과 싱싱함이 나에게 전달되었다. 구수한 사투리 속에 아픔을 서로 보듬었던 시골 장터가 잘 채색 된 수채화 같았다. 그러나 도시화 된 농촌 현실을 말하듯이 물건을 사려는 이들보다 장사꾼이 더 많았다. 가축전을 찾았다. 토끼와 고양이, 닭 등이 녹슨 이동식 철 그물 상자에 갇혀있었다. 나는 양계장에서 치킨이 되지 못하고 퇴출 된 닭을 보았다. 장사치는 토종닭이라고 박박거렸지만 태자리를 바꿔치기 당한 닭이었다.
장터를 몇 번 오가는 중, 운 좋게 토종닭을 구할 수 있었다. 사실 토종닭인지 아닌지 몰랐다. 돼지를 못 키우게 된 서운함을 닭으로 대신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동네 토박이들은 요란을 떨었다. 토종닭은 크기가 작고 알은 많이 낳지 않는 대신 어미 닭은 알을 품어 병아리가 삐약거리며 나오는 날까지 식음을 전폐한단다. 그 때 착한 모성을 보면 코끝이 찡하다고 했다. 난 장난기가 발동해 서양 닭보다 토종닭이 먹을 것이 없다고 했다. 그는 요즘도 양(量)을 따지냐고 했다. 토종닭으로 끓인 삼계탕 맛은 양닭이 맨발로 쫓아와도 못 따라 온다며 우리 것이 최고라고 예찬을 하더니 싸게 잘 샀다는 말을 놓치지 않았다.
닭을 마구간에 풀어놓았으나 세상 구경을 못한 탓인지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지렁이를 보고도 놀라며 달아났다. 하긴 가로, 세로, 25cm 정도의 정사각 우리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며 살아온 놈들이니 당연했다. 날개 짓하며 자유롭게 승마장을 누빌 것을 기대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나자 말굽을 피해 마방을 돌아다니며 말이 흘린 알곡사료는 물론 건초 부스러기까지 모두 주워 먹었다. 녀석들의 움직임이 하루하루 넓어졌다. 아저씨는 “저렇게 내버려 두면 넘덜 밭 다 망가트려 놓는다.”며 걱정을 태산처럼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닭들은 결국 승마장 옆 옥수수 밭에 들어가 모래찜질을 하며 신나게 놀다왔다. 당황스러웠다.
처음 이곳에 마구간을 짓기 시작 할 때 동네사람들 몰려왔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앞 뒤 없이 머리를 스쳐갔다. 그들은 홍시감처럼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말을 할 때마다 입에서는 누룩 쉰내가 풍겨왔다. 논일을 하다 새참으로 마신 막걸리 몇 잔 덕분에 논두렁 영웅심을 발휘한 것 같았다. 그들은 앞뒤 없이 말을 타면 재미있느냐? 말은 부자들이 타는데 사장이 부자인가보다. 2만 불 시대에는 승마가 최고라고 농림부에서 공문이 왔다며 자기들도 말을 키워야겠다는 둥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락 모를 꾹 눌려 심듯이 말을 타고 승마장 밖으로 나와선 안 된다, 절대 민폐를 끼치지 말라며 못을 박고 갔다.
그 후 승마장 옆 밭, 영감이 오래 된 빚을 받으러 온 빚쟁이마냥 씩씩한 걸음질로 왔다. 손에는 항상 어디서부터 시작 되었는지 모를 전선이 들려있었다. 전선이 뱀 꼬리처럼 말려 있어 그것을 풀려고 위아래로 휘익 던질 때마다 말들이 깜짝 깜짝 놀랐다. 나는 저자가 ‘뭐하고 있지’ 싶어 쳐다보았지만 그는 나를 투명인간 취급을 하면서 전봇대에 달린 두꺼비집 앞에 섰다. 한 참 동안 전봇대 아래 부분을 수캐가 암캐 생식기를 더듬듯이 만지작거리더니 “어이, 사장! 거기 서 있지만 말고 이리 좀 와봐.” 서로 얼굴을 마주 한 적이 없는데 그는 혀가 짧은지 하대를 하며 나를 불렀다. 내심 불쾌했지만 얼굴에 움푹 파인 주름과 세월의 쓰레기를 담아 놓은 듯 균형 없이 튀어 나온 배를 볼 때 육십은 족히 넘어보였다. 그는 전선 끝 돼지코를 흔들며 “이거 꽂아야 하는데 구멍이 어디여?” 난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나 싶어 “왜요?” 했다.
그는 귀찮다는 듯이 “왜는, 강냉이가 말라 비틀어져서 양수기 물 좀 뽑으려고, 도시 사람들은 그런 것도 모르지.” 안하무인이었다. 한방 쥐어박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나 원주민과 원만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냥 꾹 참으며 콘셋트 자리를 알려주었다. 흰 머리가 세 개는 더 생긴 것 같았다. 전기를 연결하더니 개선장군처럼 갔다. 며칠 동안 진입로에는 전선이 뱀 허물처럼 널려있었다. 말들은 낯선 물체를 볼 때마다 움찔거리며 놀랐다.
그가 다시 전선을 회수하기 위해 왔다. 난 전기를 이렇게 자주 뽑아 갈 거냐고 물었다. 전기를 쓰는 것은 좋은데 전기사용료는 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러나 그는 내 생각을 알고 있다는 듯이 “왜? 그것 몇 푼이나 된다고, 주면 안 돼? 내가 동네에서 수십 년을 살았는데 여직 동안 그런 일은 없네.” 그는 내 약점이라고 생각했는지 “요즘 객지 것들이 들어와서 인심이 흉흉해지고 내 참!”하며 화가 난 척을 했다. 난 도리어 무안해 “네. 자주 갔다 쓰세요.”라며 전선 회수를 도와주었다.
그리고 달포가 지날 쯤에 그의 밭에서 인부들이 옥수수를 따고 있었다. 난 말이 옥수수 대를 좋아한다며 작업 끝나면 베어 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는 귀찮다는 듯이 “이 사람 웃겨, 도시 사람들은 참 문제라니까. 옥수수 대를 베어서 고랑에 놓고 그 위에 복합비료를 뿌려놓으면 땅이 얼마나 좋아지는 줄 몰라? 근데 그것을 달라고, 요즘 같은 세상에는 그것도 돈이여” 나는 “제가 말똥 내주잖아요?” 하자. 그는 그것은 그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날 이 후 그를 스크루지 영감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닭이 영감 대신 옥수수를 추수 해버렸다. 일 원도 손해 보지 않으려는 영감의 밭을 닭이 들어가 뒤집어 놓았으니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죽은 제갈량의 머리를 빌린다 해도 대충 넘어 갈 묘안이 없었다. 아저씨가 먼저 좌불안석이었다. 나에게 몽상가란다. 닭은 닭장 속에 들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십이지간의 윤리(?)를 깨트리고 있다며 닭이 죽으면 윤회의 질서에 따라 사람이 될 수 있는 시간이 빨리 열린다고 했다. 나는 멍청히 듣던 중 “아저씨! 닭 열 마리 중 다섯 마리만 부대자루에 넣어주세요.” “왜? 잡아다 주게?” “아뇨. 일단 넣어 주세요. 나갈 길이 없을 때는 돌아가는 것보다 정면으로 밀고 쳐야 되잖아요?” 나는 나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방법을 선택했다. 양손에 닭이 든 자루와 몽골친구에게 선물 받은 징기스칸 한 병과 이름 모를 양주를 들고 영감 댁으로 갔다. 좋은 사람과 마시려고 서재 깊숙이 넣어두었던 것이다. 영감 댁 마당에 도착하자마자 자루를 풀어놓았다. 바람 한점 통하지 않는 자루 속에 갇혀 있던 닭들이 꼬그닥거리며 신이 나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는 술을 보자 비싼 것이라며 좋아했다. 나는 39도 독주를 맥주잔에 가득 부어 그와 잔을 마주치며 “좋은 옆집이 있어서 승마장 운영하기가 편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런 술은 몽골식으로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죽 마셔야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취기가 돌자 영화 <야인시대>를 많이 본 탓인지 젊은 날의 무용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술은 한 방울도 남김없이 없어졌다. 난 대단하다고 박수를 쳤다. 술이 간을 녹이고 있었다. 그가 먼저 취했다. 취중에 토종닭을 선물해 줘서 고맙다며 밭으로 나간 닭을 잡기 위해 비척거리며 깜깜한 옥수수 밭으로 들어갔다. 닭들이 놀라 꼬그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술에 취해 갈지자를 쓰며 승마장으로 돌아왔다.
그에게 전화가 왔다. “어이구 형님 오랜만입니다. 웬 일이세요? 요즘 바쁘지 않으세요?” 난 이름이 된 그의 호칭을 부르며 친한 척 안부를 물었으나 스스로 묻고 답하기에 바빴다. “사장! 고자 아니여?” 앞뒤가 없다. 웃겼다. “하긴 전에 예비군 훈련장에서 대한민국 쓸 만한 남자들은 모두 고자를 만들었지.”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계속 말을 잇고 있었다. 작년에 내가 선물한 닭 이야기였다. 겨울에 수탉이 시도 때도 없이 암탉을 올라탔단다. 이 때 암탉이 낳은 알을 며느리가 귀한 유정란이라며 손자를 주겠다는 것도 주지 않고 알을 모아 둥지에 넣어주니 암탉이 본능을 다해 품었다고 했다. 그는 삐약거리며 병아리가 부화 되어 나오는 것을 고대했으나 결국 달걀이 모두 곯아 터져 버렸단다. 그리고 그는 “그 싸가지 없는 것이 벼슬 값도 못 하는 놈이었다”고하더니 수탉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이어졌다. “여름에 개구리 한 마리를 보면 어쩐지 알아? 지는 뒤로 물러나 꼬꼬거리며 암탉을 부르는 거야. 착한 암탉이 개구리를 쪼아 네다리 쭉 뻗게 만들면 그 때 와서 날름 삼키더라고. 그런 술집 포주 같은 놈이 암탉 올라 탈 때는 꼬리 세우고 목청 돋으며 개폼은 다 잡고 지랄하더니만 알량한 수놈 역할도 못 했다니까.” 수탉에 대해 혼자 떠들다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어서 빨리 날아와. 닭 잡아 삶고 있으니까, 참! 오면서 소주 몇 병 꼭 들고 오고, 내가 까먹을 뻔 했구먼.” 그가 전화를 끊었다. 나는 긴 끈에 매인 연처럼 소주 몇 병을 사들고 터벅거리며 영감의 집으로 갔다.( 한국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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