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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창장 ( 재미수필 23)    
글쓴이 : 국화리    24-11-29 07:15    조회 : 1,099


                                                                                         표창장
                                                                                                                                                                                국화리

   표창장이 유행일 때가 있었다. 주로 단체에서나 교회에서 남발을 했다. 그 물결을 타고 나도 표창장을 몇개 받았다. 혼자 살면서 구석방 문 뒤에 쭉 걸어 두고 나만 가끔 보았었다. 딸이 와서 이삿짐을 싸다가 발견하고는 모두 쓰레기통에 버리자고 했다. 50년 전 교사 생활할 때 받은 것 한 개는 골동품으로 남겼다. 
인기가 사라진 표창장을 나는 요즈음 딸로부터 받았다. 쓰레기통에 넣어도 부피도 무게도 별로인 친환경 표창장이다.

   큰딸이 정월 중순경에 ‘한의사 면허 자격증’을 주 정부로부터 받았다. 그녀는 그 메일을 속보로 지인들에게 보냈다. 그들로부터 축하의 메시지와 꽃다발 선물이 도착했다. 그녀는 매일 콧노래를 부르며 받은 메일을 신기한 보물처럼 열어 보았다.
 두 달쯤 지나 그녀는 감사의 표시로 파티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제가 뭐 고시에 합격이라도 했나. 3~4년 공부하면 합격하는 공부를 7년이나 걸려 자격증을 받고는. 이 아가씨 웃기는 것 아냐. “ 면전에 날려주고 싶었지만 몰래 흘렸다. 미지근한 엄마 태도에 딸은”엄마만 축하하는 마음이 0이네.”라며 입을 삐죽 내보였다.
 나도 깊은 마음은 “고생했다. 풀 타임 일을 하며 공부에 집중해도 힘든 데 조카들 생일까지 챙기고, 파탄한 부모의 두 집을 오가게 했으니. 생리학, 병리학, 한의학 개론, 방제학, 침구학…을 좁은 네 머리에 다 넣어 간직할 수 있었겠는가.“

  일요일 정오, 파티장에 가는 날이다. 딸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니까 핸드백도 놓고 가란다. 운동화에 가벼운 차림으로 산보하듯이 따라나섰다. 올해 긴 겨울 장마가 끝나고 화단의 빨간 철쭉과 노란 난초들이 발걸음에 리듬을 주었다.
  산타모니카 윌셔가에 위치한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 분위기를 보니 딸이 작심하고 신용 카드를 쓰는 것 같아 자축파티로는 지나치다는 생각뿐이었다.
 코비드 침체기에서 도전을 다짐하는 그녀의 열망인 것 같아 너그러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오늘의 손님은 그녀가 운영하는 한의과 대학의 이사진 부부, 직원, 가까운 친구 30여 명으로 방이 넓어 보이는 파티였다. 그들은 그녀를 도와주는 중요한 사람들이다.
  딸은 도착하는 손님들을 나에게 소개했다. 나는 오랫동안 학교 일을 떠나 있었으므로 처음 인사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사진은 사회적인 지도자로 은퇴했거나 현역에 있는 사람들로 딸의 부모뻘 또는 삼촌쯤으로 보이는 노장들이었다.
 그들의 도움으로 학교는 미국의 60여 개의 한의과 대학 중 10여 년 거의 최상 수준을 유지했다.
 딸은 부모가 설립한 한의대학을 물려받아 운영하는지 15년이 훌쩍 넘었다.
산타페의 안정된 직장 Foundation을 사표를 내고 30대 초반부터 가업 승계 수업을 했다. 한의 수업을 들으며 운영 업무 보조로 학교 전반의 운영 상태를 파악하게 했다. 3~5년의 한 번씩 주 정부와 연방정부 학교 협의회로부터 학교 운영 현황을 점검받아야 한다. 그들의 가이드라인( 커리큘럼 운영, 재정, 시설)에 부적격 판정을 받으면 재검사를 받아야 한다. 영어에 능통하지 않은 관리자 부부에게는 고통스러운 관문이었다.
 30대 중반에 그녀가 학교의 최고 관리자가 되면서 내부로부터 흔드는 세력이 많았다. 3~4년 그 거센 풍파를 이겨내느라 딸은 매년 두 배로 나이를 먹었다. 그 결과 그녀 심장에 굳은살이 생겼다. 딸은 충직한 종 같은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그것을 인정받았는지 수년 전부터 연방정부 학교 협의회에 총무를 맡았다. 그녀는 미전역 한의과 대학 시찰에 합류하고 있다.
  육영사업인 학교는 계속 자금을 보충해야 했다. 이것은 빈털터리로 이민 온 부부에게 큰 부담을 주었다. 그 애물단지 사업을 딸이 떠맡은 것이다. 학교는 성장해도 그녀는 침실 한 개 아파트를 떠날 수가 없었다.
  승승장구하던 한의과 대학에 제동이 걸렸다. 학교는 코비드 대란으로 직격탄을 맞아 학교 재정이 흔들리고 있다. 정부의 지원으로 얼마간 연명하고 있으나 수십 명의 직원이 몸담은 곳이기에 그녀의 고민은 깊어만 갔었다.
 코비드 기간에 업무도 정지상태라 딸은 청정구역인 내가 머무는 은퇴 마을에 가끔 왔다. 역병이 돌아도 내 거실 창가에는 싱싱하게 빛을 내는 실내 식물이 많았다. 나에게 남아도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 엄마, 이 식물은 점점 잘 자라네. 응, 중국 사람들이 돈나무라고 하는 ‘파키라’ 야. 공기 청정 역활도 한데. “ 파키라는 20여 년 전에 내 한의원 이전 때 교회에서 보낸 선물이었다. 한의원의 성장을 기원하며 돈을 부른다는 이식물을 가져왔나 보다.
“가지를 잘라심어도 잘 자라 이것도 한 가지가 이처럼 풍성하게 자랐어.“

 딸은 ‘돈 나무’라는 말을 놓치지 않았다. 나의 지원으로 자기 소유의 콘도가 생기자, 파키라를 달라고 했다. 어려운 시기에 돈나무에 매달려 보고 싶었나 보다.
 거주지를 옮겨 몸살이 왔는지, 아직 역병이 머물러 있어선지, 윤기가 흐르던 돈나무는 비실거렸다. 학교 재정 상태와 비슷했다. 딸에게 “복권을 사야 하나” 하자 박장대소하며 손뼉을 쳤다. 딸은 돈나무를 포기하고 상황 전환을 위한 파티를 준비한 것이리라.
  준비된 식탁에는 작은 노트만 한 크기의 메뉴판이 놓여있었다. 애피타이저도 여러 개 되고 주메뉴도 가득 적혀있었다. 미국에 40여 년을 살았지만, 복잡한 서양식 식사는 익숙하지 않아 오늘의 메뉴판에 이름 모를 음식 이름이 뭘 말하는지도 몰랐다.
   식당 종업원들이 음식을 나르기 시작했다. 식탁으로 음식 접시가 가득 채워졌고 빈 접시는 가져가고 계속 다른 애피타이저가 올랐다. 각자 접시로 옮겨 눈요기에도 훌륭한 음식을 맛보았다. 
   몇 가지 음식을 맛보며 뱃속이 만족할 즈음, 딸은 초대 손님들을 간단한 소개와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마지막으로 내 이름을 부르기에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앉았다.
  딸은 계속해서”엄마가 그동안  어쩌구 (중략) 한의사 면허증도 코비드 우울증 극복도 … “ 하면서 장황하게 나에게 방향을 틀었다.
 딸은 자기는 엄마에 대해서 좋은 기억이 1도 없다고 했었다. 길러준 서울 할머니 생각밖에 없다며 직장을 그만두자, 기회라며 대치동 할머니와 일 년을 살다 왔다. 그녀는 엄마 대신 외로운 할머니를 돌봐 준다며 비죽거렸다.
 딸이 오늘 파티를 내 엄마에게 드린다고 하자 모두 손뼉을 치는 것 아닌가.
당황한 나는 벌떡 서서 손님들에게 다시 인사를 해야 했다. 어린 지도자를 성장시켜 주어서 고맙다며 머리를 푹 숙여 버렸다. 과거가 부끄럽기만하여 20여 년 동안 잊혀진 관리자의 인사였다.

   딸이 내 이름을 프린트해서 메뉴판에 광고하다니, 이변이었다. 부실한 나는 사는 동안 사건도 많아 마음에 구름 낀 날이 많았다. 상처가 꽈리처럼 달려  툭치면 빨간 물이 툭툭 터졌다. 힘도 떨어지고 빛바랜 사진 같은 엄마를  딸은 측은하게 생각한 것 이리라.
 엄마 손을 잡으면서 자기는 바보 엄마처럼 살진 않지만, 같은 경우가 생기면 엄마처럼 살게될가 두렵다고 했다. 그녀의 위로가 약인지 독인지 모르겠다.
   식사 메뉴 이마에 인쇄된 글자.
     ”Dedicated my beloved mother & mentor Dr. Jung Kim“
  
  침대위에서 내 표창장이 말한다. 그 날은 만우절이었다고.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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