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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난이    
글쓴이 : 박지니    24-12-03 14:37    조회 : 1,361

못난이


, 안녕하세요. , 전에 뵈었죠. 제가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해서요.

오랜만에 만날 때마다 일어나는 일이랍니다. 오랜만이라고 해도 몇 달도 아니에요. 초면인 경우엔 일주일만 지나면 다시 처음 만나는 사이가 되거든요. 친하지 않거나 안면을 트고 지낸 기간이 짧으면 곧잘 헷갈리곤 해요. 머리 모양이 바뀌거나 안경을 쓰던 사람이 안 쓰고 나오기만 해도 낯설어서 내가 알던 사람인지 아닌지 자신이 없어져요.

몇 년 전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의 일인데요. 가톨릭이라는 종교가 오늘부터 성당에 다니기 시작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군요. 6개월 정도 교리 수업을 들어야 세례를 받을 수 있고, 세례를 받아야 온전하게 미사에 참례할 수 있다대요. 제가 다니는 성당은 교리 시간이 일요일 오전 9시였는데, 수업 후 바로 미사에 갈 수 있도록 배려한 듯해요.

교리 시작하기 10분 전에 와서 그날 미사에서 부를 성가를 가르쳐 주던 성가대원이 있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뿐이라고 해도 몇 달 동안 봐 온 얼굴이니 익숙해졌죠. 세례를 받고 나서는 그 사람을 따로 만날 일은 없었지만, 가끔 미사 후에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했어요. 달리 아는 사람도 없으니 익숙한 얼굴이다 싶으면 이름을 모르더라도 열심히 인사하고 다녔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저쪽에서 인사하고 서로 반대 방향으로 헤어졌는데, 그 사람이 이쪽에서 다가오는 거예요. 의아해하면서도 또 인사했답니다. 그런 일이 있고서도 한참 후에야 내가 그동안 엉뚱한,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하고 다녔다는 걸 알았어요. 두 사람이 한자리에 같이 서 있는 걸 보고서야 말이죠.

말하다 보니 또 생각이 났어요. 어머니와 TV를 보는데, 예능 프로그램의 손님으로 나온 배우가 반가웠어요. 마침 예전에 그 배우가 나왔던 드라마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거든요. 드라마 종영 후 바로 입대했다고 들었는데, 그동안 고생이라도 했는지 조금 여위어 보였어요. 이튿날 만난 친구가 그 사람은 내가 생각하는 배우와 다른 사람이라고 알려주더라고요. 열 살은 어린 가수라대요. 검색해 보니 눈이 크다는 걸 제외하고는 딱히 닮은 구석은 없었어요. 어머니야 젊은 연예인들의 이름을 못 외우겠다고 하시니 그렇다 치지만, 저는 얼굴부터 헷갈리니….

 

제가 이래요. 그래서 난 너를 모르는데 넌 나를 아는일이 늘 있죠. 사람을 만날 때 눈, , 입 등 생김새의 세세한 부분을 관찰하기보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기억하는 데 더 익숙해서인 듯해요. , 가족만 헷갈리지 않고 잘 알아보면 되죠. 덕분에 이야깃거리도 생기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그조차 자신이 없어졌어요. 결혼해서 각자의 가정을 꾸려 사는 오빠들을 오랜만에 볼 때마다 웬 아저씨들인가 싶어 당황하곤 하거든요. 다 커버린 조카들은 얼마나 낯선지 몰라요. 얼마 전에는 어머니와 여행을 다녀왔어요. 먼저 출국장에 들어간 제가 어머니를 기다렸죠. 조금 지난 후 어머니가 나오시는데, 그날 입은 옷이 아니었다면 못 알아봤을 거예요. 그러고 보니 어머니와 함께 사진을 찍으면, 몇 해 전부터 내가 알던 어머니가 아니라 외할머니의 모습을 발견하는 듯해요. 어머니 옆의 제 얼굴은…. 사진을 찍으면 잡티를 지우고 턱선도 갸름하게 바꾸곤 해서 손대지 않은 사진 속 얼굴이 어색하네요, 하하.

제 나이가 이리되도록 어머니도 한 해, 한 해 연세가 드셨음을, 어머니의 염색 머리에 속아 몰랐었나 봐요. 어쩐지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생각나네요. 한동안 염할 때의 얼굴이 눈앞에 맴돌아서 사진 속의 아버지가 낯설었죠. 지금은 그저 어린 시절에 내 손 잡아주던 키다리 아빠에 대한 인상만 남았어요. 나중에 아버지를 만나면 알아볼 수 있을까요? 어머니 손 꼭 붙잡고 갈 수도 없고…. 이제부터라도 사진을 자주 보면 될까요?

어쩌면 전체적인 분위기를 기억한다는 건 핑계일지 몰라요. 학생 때는 학교와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한정된 사람들만을 만나잖아요? 한 사람이 아닌, 공간에 속한 존재로만 인식했던 것 같아요. 성인이 되어서도 장소를 정해 놓고 사람을 만날 수는 없잖아요. 사람 자체를 기억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으니 언제부턴가 포기했나 봐요. 아니, 실은 사람을 멋대로 재단해서 정한 인상만을 기억하려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기에 상대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때마다 달리 보여서 낯설게 느껴지는 거겠죠. 어렸을 적에 날 놀리고 괴롭히던 오빠들이 자기 자식들에게는 자상하게 대하니, 괜히 화가 나기도 하거든요.

아무래도 저는 저세상 문턱에 쭈그리고 앉아 아버지나 어머니가 데리러 오실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봐요. 착한 딸이 아니었다고 모른 체하시진 않겠지요?

 

가족도 못 알아보고 보정한 사진 속 얼굴이 제 얼굴인 줄 착각하는 못난이가 바로 저예요. 그러니 혹여 눈이 마주쳤는데도 제가 멀뚱멀뚱 있거나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더라도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무시하려는 것도 아니고 뭔가 마음 상한 일이 있어 그러는 건 더더욱 아니니까요.

 

한국산문, 20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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