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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그로브 호흡법    
글쓴이 : 김주선    26-04-19 22:03    조회 : 54

맹그로브 호흡법 / 김주선

 

늪지대의 도마뱀과 가난을 팔아 까마우(Cà Mau)를 떠나온 여자였다. 삼모작 볏단처럼 등이 굽은 아버지가 울었다고 한다. 생면부지의 땅에 뿌리내리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일까. 양철지붕의 붉은 녹물을 뒤로하고, 메콩강을 건너온 여자는 그렇게 도장공塗裝工의 아내가 되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하구에서 푸르른 숲을 이루며 살겠다는 일념이었다. 나팔꽃 같던 스무 살 처녀는, 불혹의 시숙을 만나 나의 손윗동서가 되었다. 살림살이가 소금물보다 짰기에 낮에는 공장에서 재봉틀을 돌렸다. 때로는 너무 맑고 깨끗한 물이 생에 더 치명적일 수도 있는 법. 흙탕물이 조개도 품고 새우도 키우듯, 자신의 하루하루를 진흙밭에서 묵묵히 길러냈다.

조수가 빠져나가면 기괴하고도 장엄한 생의 골격이 드러난다. 산소가 거세된 펄에서 숨을 쉬기 위해, 나무는 제 호흡기를 거꾸로 뒤집어 허공으로 치켜올린다. 위로 솟구친 아치형의 지주근支柱根들은 마치 수천 마리의 거대한 집게발이 갯벌을 움켜쥐고 있는 형상이다. 강물에 떠밀려온 진흙이 바닷물 언저리에서 서로 엉겨 붙을 때, 그 검은 웅덩이는 미약한 생물들이 몸을 숨길 수 있는 유일한 은신처가 된다.

씨앗을 펄에 옮겨 심는다고 곧장 제 뿌리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맹그로브 나무는 처음 몇 해 동안 거의 자라지 않는다. 대신 물의 높이를 재고 염도의 변화를 몸에 새긴다. 제 몸이 썩어가는 속도를 완전히 익힌 뒤에야 비로소 가지를 낸다.

민물과 짠물이 섞이는 이 나라의 뻘밭에서 구른 지 어느덧 이십 년이 넘었다. 조개를 캐던 손으로 봉제 기술을 배워, 친정 살림에도 보탬이 컸다. 살아보니 살만했던 것인지, 자매와 사촌들까지 불러들여 겹사돈을 맺어주었다. 한국이라는 기수역汽水域에 작은 군락이 생겼을 정도였다. 결핍과 풍요가 연대했다.

두피에 바짝 붙여 땋은 레게머리를 볼 때면 나는 문득 맹그로브 숲의 호흡근을 떠올린다. 가지런히 나뉜 머리칼은 질식을 견디기 위해 지상으로 솟구친 수천 개의 숨뿌리를 닮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답답한 시간이 지나야 겨우 숨구멍 하나가 열린다. 살아내기가 만만찮았을 것이다. 이름 대신 베트남 여자로 불리던 날들 속에서 가장 먼저 숨 쉬는 법을 배웠다.

맹그로브는 결코 혼자 자라지 않는 나무다. 하나가 쓰러지려 하면 뿌리가 엉킨 다른 나무들이 서로를 단단히 붙잡아 준다. 염도를 나누고, 진흙을 공유하며, 바람의 방향까지 함께 견딘다. 아이를 돌보는 손, 마음을 대신 통역해주는 입, 먼저 길을 건너온 이들의 그늘 속에서 무성한 잎이 자란다. 

나는 그녀를 오래도록 숲 바깥에서 보았다. 까마우에서 왔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도 지도 위의 남쪽 끝을 잠시 떠올렸을 뿐, 여자가 견디는 염분이 내 삶의 배경이 된 적은 없었다. 명절에 마주 앉아도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깊이 건너지 않았다. 그녀의 웃음은 늘 먼저 접혔고, 말 대신 몸이 움직였다. 나는 견고한 내륙의 땅에 발을 딛고 서서, 여자가 살았던 습지의 깊이를 가늠조차 하지 못했다.

시숙이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던 해, 숲이 한 번 크게 흔들렸다. 왜가리가 놀라 꽁지 빠지게 날아가고 일제히 잎들이 떨어진 강풍이었다. 수중림은 태풍이 오면 가장 먼저 휘청거리지만, 온몸을 던져 갯벌을 움켜쥔 손은 끝까지 놓지 않는다. 장례가 있던 날, 나는 가까이서 그녀를 지켜보았다. 결코, 흐느껴 울지 않았다. 극한의 염도 속에서 나무가 생존을 위해 스스로 잎을 떨구듯, 슬픔을 털어내고 아들을 옆구리에 낀 채로 자리를 지켰다.

집은 잠시 숲을 잃은 공터 같았다. 아들마저 군대로 떠나자, 한국인도 베트남인도 아닌 경계에 홀로 남겨졌다. 그 무렵 고향에서는 관광단지 개발 사업으로 숲이 베어졌다. 새우 양식장이 들어서고 리조트가 지어지고 있었다.

허물어진 것은 고향의 밀림만이 아니었다. 남편이 떠나고 아들마저 떠난 자리에 여자의 숨뿌리도 함께 흔들렸다. 썰물이 진 갯벌처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허망한 날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주저앉는 대신 이파리에 모아 둔 제 몸의 염분을 갈무리했다. 맹그로브 나무가 강도 바다도 아닌 가혹한 환경에서 오히려 더 단단한 목질木質을 얻듯, 그녀는 자신을 다독이며 다시금 뻘밭에 발을 붙였다. 불편한 경계를 자신의 영토로 삼아 어느새 물새 떼가 와서 노는 요람을 만들었다. 

여자는 여전히 한국이라는 경계의 숲에서 '어머니 나무'로 살아간다. 변두리 공단의 노루발은 오늘도 거침없이 나무숲을 누빈다. 물도 바닷물도 아닌 삶의 염도를 재며, 제 몸속에 어린 물고기들을 품어줄 작은 어장을 일군다. 갓 입국한 친정 조카의 서툰 손을 잡고 우거진 숲으로 향한다. 어린 새댁의 배아 된 열매가 곧 물 위에 떨어지리. 뿌리는 흙 속이 아니라 서로의 몸을 붙잡으며 얽히고설킬 때 비로소 단단해진다. 진흙탕 같은 세상에서도 기어이 수면 위로 코를 내밀어 푸른 잎을 틔워내는, 저 지독하고도 눈부신 맹그로브 식 호흡법을 보라.


<2026 제16회 천강문학상 수상작품집 수록>   


제16회 천강문학상 우수상

심사평: 김주선의 <맹그로브 호흡법>은 베트남에서 시집온 손윗동서의 이야기로 타국에서 뿌리내리는 일이 쉽지않다는 사실을 맹그로브 나무 생태에 빗대어 이끌어간다. 맹그로브 씨앗을 펄에 옮겨 심으면 곧장 뿌리를 내리지 않고 펄의 높이와 '염도'에 맞게 제 몸의 속도를 맞추듯 손윗동서 역시 타국에서 뿌리를 내릴 때 그러한 과정을 겪는다는 비유적 입장이 돋보였다. 일테면 짭짤한 '염도'는 곧 '삶'이라는 의미론적 등식으로 이어져 고난을 극복해가는 다문화 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문학상 심사든 신춘문예 심사든 늘 그렇지만 입상자를 선하는 일은 매우 괴로운 일이다. <맹그로브 호흡법>과<나무도마> 두 편 모두 대상에 선해도 무리는 없으나 심사자는 논의 끝에 문학이 문학인 이유를 담지한 가운데 수필의 특질을 적절히 운용하면서 문학성을 꾀한<나무도마>를 대상에 두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는 일정부분 수필의 문학성을 염두에 둔 방향성 재고에 따른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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