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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서 물구나무서기    
글쓴이 : 박용호    26-03-25 22:21    조회 : 33
하늘에서 물구나무서기
박 용 호
 해외영업실장을 마지막으로 대기업에서 퇴직하고 중소기업체 영업본부장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회사는 규모가 작아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해외 지점이나 법인 등 인프라가 없었다. 국내 매출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어 해외 고객 개발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극복 방안으로 미국과 유럽에 있는 유망 고객을 상대로 ‘부품 및 기술 순회 상담회’를 갖기로 내부 결정을 하였다. 팀을 구성하여 각 지역별로 길게는 약 10일 정도의 출장길에 올랐다.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의욕적으로 일을 벌였지만 당장의 애로사항은 편도 10시간이 넘는 비행기 탑승에 이코노미석을 이용해야 하는 점이었다. 대기업 근무 시와 완전히 다른 환경이었다. 출국할 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유럽의 독일, 스웨덴, 핀란드에 소재한 자동차 제조사와 주요 전장 부품업체를 상대로 연일 미팅에 이동을 지속하는 일정은 체력을 소진시켰다.
비즈니스 상담이 끝난 후 고객과 저녁 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와서는 다음 날 이동과 미팅을 준비해야 했다. 가장 힘든 일은 역시 한국과 8시간 이상의 시차였다. 내 생체시계는 완전히 파업 상태였다. 수면 부족과 피로감에 시달렸다.

 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다. 스웨덴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는 독일 국적선을 타고 현지 공항에서 대기하다가 인천공항으로 가는 대한항공을 탑승하는 일정이었다. 하루 비행기 탑승 시간만 거의 13시간여.
지쳐있는 상태에서 이코노미 좌석으로 앉아 온다는 것에 걱정이 많이 되었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자마자 이코노미석을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해 볼 생각으로 대한항공 카운터로 달려갔다.

 그간 축적된 마일리지도 있어 “혹시 마일리지나 소액을 추가 지불하여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할까요?”라고 물어보았다. 돌아온 대답에 깜짝 놀랐다.
“죄송합니다만, 고객님이 소지하고 있는 티켓이 가장 낮은 등급이라 약 3만 마일리지나 50만 원 이상을 추가 지불하셔야 업그레이드가 가능합니다.”

 금딱지 붙은 비행기라도 타는 건가? 요구한 대가를 지불하기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회사 정책과 총무팀의 일처리에 대해 원망의 마음이 생겼다. 아무리 경비를 아낀다고 해도 설마 그런 티켓을 구매할 줄이야..., 출국할 때도 항공기 내부 맨 뒤쪽 Zone에 자리 배정이 되었는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다시 줄을 서 출국 절차를 밟아 탑승을 했다. 혹시나 빈 좌석이 있는지 훑어보았으나 안타깝게도 비행기는 만석이었다. 

 비행기의 이륙 전부터 눈이 감겼다. 2시간쯤 자고 잠깐 깼으나 다시 졸음을 이기지 못해 연신 고개를 떨구고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목이 몹시 뻐근해졌다. 펴진 좌석에 누워 이동하던 시절이 그리웠다. 시계를 보니 앞으로 7시간이나 더 가야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엉덩이와 허벅지 뒷부분에서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이 생겨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기압차, 시차, 누적된 피로로 혈액 순환이 잘 안되어 일어난 현상으로 보였다.
어딘가에 눕고 싶은데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기내 맨 뒤 공간 복도에서 스쿼트와 마사지, 손 체조 등을 해봐도 별 소용이 없었다. 허벅지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여태 비행기를 타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혈액 순환을 돕기 위해 다리를 몸보다 높게 들어 올려보고 싶은데 어디서 하지? 사람들이 왕래하는 통로에 누울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때 번뜩 떠올랐다. ‘Restroom (Toilet). 그래 Restroom이야.쉬는 곳이잖아!’ 서둘러 공간이 약간 넓은 칸으로 들어가 신발을 벗었다. 제한된 공간에서 어떻게 발을 들어 올려야 할까 하고 여러 궁리를 했다. 방법이 떠올랐다.
바닥에 두꺼운 티슈를 몇 겹 깔고 양팔을 접어 머리를 얹었다. 그러고는 접혀진 양발을 벽에 대고 웅크린 상체를 서서히 폈다. 양발을 벽면을 따라 어렵게 밀어올린 뒤 양팔과 양손으로 몸을 지탱하여 물구나무를 섰다. 이렇게 고공에서의 물구나무서기가 시작되었다. 통증이 다소 줄어들었다.

 그것도 잠시, 팔 힘이 빠져 물구나무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어렸을 적 교실 바닥이나 안방에서 해보던 간이 물구나무를 서보기로 했다. 목을 살짝 굽혀 어깨를 바닥에 붙인 채 물구나무를 섰다. 발을 벽에 기대고 상하좌우로 흔들며 약 5~6분 정도, 두 번을 버티니 통증이 가라앉았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스스로도 웃음이 났다. 한때는 비즈니스석은 물론이고 운 좋으면 퍼스트클래스로 업그레이드도 받았던 과거가 문득 그리웠다.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면서 과거에는 상상도 못 했던 ‘하늘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해봤다. 환경이 사람을 만들어 간다는 옛말이 허언은 아니었다.
다소 호전된 컨디션으로 앞에 붙어있는 거울을 보며 “야, 너 정말 기발하고 웃긴 놈이다! 그래, 너 스스로를 지켜낸 것이 중요하지 몸이 아픈데 뭣인들 못 하겠어. 잘했다”라고 혼잣말을 하며 쓴 미소를 지어봤다.

 이제는 은퇴자가 되어 업무상 장거리 출장을 갈 일은 없어졌지만 가족이나 친구와의 장거리 해외여행 일정이 잡히면 그날의 허벅지 통증이 떠오른다. 당시 통증을 이겨내기 위해 시도한 일이긴 하지만 돌이켜 보면 위험천만하기도 했다. 행여 비행기가 기류 변화로 흔들리기라도 했다면....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 세상을 살다 보면 해가 떴다가 구름이 끼고 안개 터널을 지나면 청명한 하늘이 나타난다. 운도 따라야 한다. 닥쳐온 애로를 극복하려다 이동하는 비행기 Restroom 바닥에서 거꾸로 서 봤다. 모르긴 해도 세계 최초가 아닐까. 그때 깨달았다. 어떤 상황에서든 나를 지켜내는 방법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비록 그것이 하늘에서 물구나무서기일지라도 말이다.

**본인 수필집 『비 온 뒤가 아니어도 무지개는 볼 수 있다』에 들어 있는 기행수필 중의 하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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