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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톱    
글쓴이 : 김주선    26-06-21 14:57    조회 : 57
발톱/김주선

재첩을 건져낸다. 뽀얀 국물 속에서 회갈색 조가비들이 사그락사그락, 아픈 소리를 낸다. 살을 발라낸 껍질을 가만 손에 쥐어본다. 해장국에 넣을 부추를 썰다 말고, 건져낸 껍데기를 수북이 모아 화분에 묻는다. 새삼, 조가비를 닮은 발톱 하나가 모래톱에서 반짝이는 듯하다. 갈퀴를 세운 나의 기억이 강바닥을 더듬는다.

오래된 일이지만, 엄마의 발등 위로 무쇠 솥뚜껑이 떨어졌던 날이 아직도 또렷하다. 밥이 뜸 들었는지 확인하다가 그만, 엄마는 손잡이를 놓쳐버린 것이다. 솥뚜껑 운전사가 손잡이를 놓치다니, 뜨거운 무쇠가 부뚜막에서 미끄러진 대형 사고였다. 신발이라도 신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당신 맏딸의 발가락이 절단 났을 것이라고 외할머니가 가슴을 쓸어내셨다. 엄지발가락은 뼈에 금이 가고 나머지 발가락도 멀쩡한 데가 없었다. 저녁 해는 속절없이 떨어지는데, 화단에 핀 제비꽃 이파리가 파르르 떨던 날이었다. 봄볕에 검게 탄 발등 위, 하얀 반달이 떠 있던 엄마의 발톱이 그렇게 죽었다. 옷고름을 잡고 칭얼댔던 잠투정이 싹 사라질 만큼, 파랗게 숨넘어가던 엄마를 나는 보았다. 다친 사람은 엄마인데 여린 내 발톱이 돌에 찧어진 것처럼 통증이 밀려왔다. 너무 아프고 두려웠다. 죽은 발톱이 하나하나 다 빠질 때까지, 엄마의 살림은 푸석하고 고단했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 나는 석유 화로를 켜 밥 안치는 법을 몰래몰래 배워 둘 만큼 살림을 돕고 싶었다.

그 사건 때문인지 엄마의 엄지발가락은 자주 곪았고 염증이 생겨 걸음걸이마저 절룩거렸다. 원인은 뿌리가 손상되어 기형으로 자란 새 발톱 때문이었다. 살을 파고들어 염증을 일으키는 조갑내장증爪甲內長症 , 내향성 발톱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재첩처럼 동그랗게 말린 발톱은 얼마나 두껍고 단단한지 엔간한 손톱깎이 기구로도 잘리지 않아 가위로 자르곤 했다. 살아가는 내내 발톱은 다시 자라고, 죽기를 반복했다. 

유전은 아니라는데 얼마 전에 나도 내성 발톱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당뇨 질환은 아니라고 했다. 한 번도 삐뚤게 자란 적 없는데 나이 들어 웬 말썽일까. 피부를 찔러 고름이 찬 발톱 가장자리를 절제하는 시술을 받았다. 어찌나 아팠던지 염치 불고하고 아이처럼 울었다. 발톱을 뽑는 한이 있더라도 두 번은 못 참겠다고 다짐했지만, 두 달쯤 지나 다시 병원을 찾았다. 아픔을 참고 또 참다가, 도리가 없었다. 두 번째 시술도 마취는 하지 않았다. 신경 때문에 마취는 안 한다고 했다. 대신, 안 아프게 살살해준다더니 이번에도 거짓말이었다. 멋모르고 당했던 기억 때문인지 손을 대기도 전에 신음부터 냈다. 의사는 발볼이 좁은 멋내기용 구두 탓이거나, 발톱 자르는 방법이 문제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아니면 갑자기 살이 찐 원인일 수도 있다며 나를 흘끔 쳐다보기도 했다. 실은, 신발 크기가 한 치수 커지기는 했다.

바늘로 손톱 밑을 찌르는 고문 같았다면 과장일까. 의사는 되물었다. “그렇게 아팠어요?” 펜치와 가위를 합친 듯한 기구인 니퍼와 교정기로 발톱을 들어 잘라내는 시술이었다. 살다 살다 그런 통증은 처음이었다. “그럼 아프지, 안 아프고 배겨?” 나는 속으로 욕을 해 주었다. 

엄마의 발톱이 다시 살아난 건, 내가 고학년으로 올라가던 해쯤이었다. 병약하던 시절, 공동 우물터 앞에 딸 부잣집이 있었다. 그 집 맏딸은 나보다 한 살 어린데도 키가 한 뼘은 더 커 핸드볼 선수가 될 아이였다. 내가 만만하게 보였는지, 한 번은 그 애에게 머리채를 잡혔다. 1원짜리 동전만 한 구멍이 나고 생채기가 났다. 그 순간, 그렇게 온순하던 엄마가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발톱을 드러내고 그 집 사립문을 걷어찼다. 젊은 안주인이 나왔다. 딸 넷을 내리 낳고 아들을 낳은 여자의 기세는 등등했다. 서로 제 새끼를 등 뒤에 숨긴 채 마주 선 어미 사자처럼, 두 여자는 살 떨리는 대치를 벌였다. 돌부리에 걸려 고무신이 벗겨진 발에서 피가 몽글몽글 맺힌 줄도 몰랐나 보다. 엄마의 발톱이 또 까맣게 죽어가고 있었다. 무쇠 뚜껑이 떨어진 그 날처럼 엄마는 또 숨이 넘어갈 듯했다. 

200711월의 마지막 날, 을씨년스러운 저녁이었다. 경로당 잔치에 다녀오던 엄마는 봉고차에 치여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해 나이는 여든여덟, 정정한 삶이었다. 발톱을 숨긴 사자使者의 전령이 문 앞에 당도함을 알았는지, 모시러 오겠다는 자식의 마중을 마다하고 꼬부랑 고개를 홀로 넘은 것이다. 신발이 벗겨진 채로 병원에 실려 온 엄마의 발은 흙투성이였다고 했다. 다음 날, 도로 옆 풀숲에서 엄마의 신발을 한 짝씩 따로 발견했다.

다시 자라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큰 언니는 장의사에게 손발톱 손질을 부탁했다. 고인의 것이라면 어떤 조각도 허투루 하지 않고 장의사는 부스러기 하나까지 봉투에 담아 관에 넣었다. 진흙이 박힌 때인지, 피멍인지 모를 발톱 조각을 우리는 조가비 무덤 아래 고이 묻었다. 

새 한 마리가 조개더미 위를 빙빙 돈다. 제비꽃 씨앗 하나 물고 왔는지도 모른다. 저 멀리 강물이 넘실거리는 곳, 흰 혓바닥을 내밀고 모래를 핥는 재첩들이 윤슬처럼 반짝인다.


 <수필오디세이> 2025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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