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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촘촘한 초록    
글쓴이 : 봉혜선    25-03-20 08:03    조회 : 372

촘촘한 초록

 

 초록이 밀어 올린 온갖 잎들이 서로 다르다는 걸 지켜본 적이 있으신지. 하나도 같은 초록이 없다는 것을 눈치 채셨는지. 그 작은 잎들이 이름표 대신 각기 다른 초록으로 각자의 생을 채비하는 수런거림을 보셨는지.

 

초록은 동색이라지만 쌍둥이가 다르듯 숱한 초록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시는지, 혹은 눈여겨보신 적이 있으신지. 어느 잎과도 서로 다른 초록을 봄이라고, 연초록이나 새싹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개별자를 사람이라고 통으로 부르는 것만큼 자존심 상하는 것임을 인정하시겠는지.

 

 겨울과 봄을 가르는 기준이 초록인 것에는 공감하시는지. 푸릇푸릇 봄기운에 설레지 않을 수는 없는데다가 갈색 땅을 뚫거나 흙을 이고 고개를 내미는 작은 초록 기운에 눈을 낮추어 보셨는지. 눈을 아래로 누여 맹신하듯 초록을, 봄을 갈망해온 초록을 찬미해본 적 있으신지.

 

 초록의 생성지는 갈색이 아니겠는지. 얼었던 갈색 땅을 푸는 건 다름 아닌 초록이 아닌지. 햇살에 몸을 푸는 건 땅이 아니라 초록이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갈색 가지에서 노란 개나리가 나오는 풍경에 눈살을 찌푸리거나 화를 낼 수는 없는 걸 긍정하시는지. 초록의 겸손함이 정연한 질서를 만들어왔음을 깨달으셨는지.

 

 봄의 선발대로 나선 쑥의 쑥스러운 초록빛의 뒤가 흰빛인 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어린 시절 크레파스 상자 속에서 쑥색이라고 배운 쑥조차 구별하지 못하고 주변의 여느 초록과도 닮지 않았으므로 쑥인 것을 알아차렸을 때의 당혹감을 이해하시겠는지. 쑥의 이름은 초록을 대표하기에 쑥스러워서가 아닌지. 하얀 지지대 속에서 겨우 얼굴을 내미는 쑥의 부끄러움이 자라는 현장에 얼마나 머물러보셨는지.

 

 쑥을 보기 힘든 도시에서조차 이름을 알리지 않는 초록이 봄을 시작한다는 것을 인정하시는지. 쑥을 필두로 서로 다른 초록으로 자신을 알리는 봄은 초록 잔치상이라는 것을 실감하시는지. 연초록, 진초록, 청초록, 누릇한 초록, 불긋한 초록, 빛나는 초록, 순한 초록, 연한 초록, 만지면 물이 들어버릴 듯한 초록, 눈부신 초록, 어둑한, 무거운, 검푸른... 초록의 물결 속에 어질.

 

 봄을 마무리하듯 대추나무가 수없이 반짝이는 잎을 내는 걸 우러러보신 적이 있으신지. 봄의 새순과 새싹이 시선을 사로잡을 때 가시투성이의 골체미(骨體美)를 유지하며 꿋꿋하던 대추나무의 새순이 바라보기 힘들 만큼 맑은 빛을 뿜는지 알고 계시겠지. 그 늦은 눈부신 초록의 생명력이 가을볕 속에서 발하는 영롱함에 취해본 적이 있기를. 크리스마스트리 꼭대기에서 빛나는 별이 주는 경외심과 닮았다고 하면 무리가 될는지.

 

 시멘트뿐인 도심 곳곳을 장식해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드는가 하면 비탈지거나 바위 틈, 물속에서도 제 빛을 간직한 초록의 위용. 초록이 색을 내민 곳 어디에서건 평화로움이나 생명의 푸른 입김에 안도감이 일었던 경험을 믿어보시기를. 작은 초록 잎이 주는 평안함에 깊은 숨을 쉬어 보셨기를.


 아스팔트 좁은 틈에도 한 줌 흙에도 뿌리를 내리고 올라오는 초록, 바위를 피하거나 뚫고라도 생명을 피우는 풍경을 보며 생명은 초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시는지. 초록이 주는 안정감에서 위안과 위로를 받아본 적이 있으신지. 가게마다 내놓은 화분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새삼 유리문 너머의 따듯함을 상상해본 적이 있으신지. 초록이 빠진 회색 도시의 삭막함을 상상해보셨는지. 가로수가 내미는 화해에 마음을 내준 적이 있으셨길.

 

 엉키거나 자신을 내주되 결코 다른 수종을 허용하지 않는 독단성에 경탄해본 적이 있으신지. 나무마다 다른 표피인 것이 혹 남다른 초록을 품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세상이 온통 짙푸른 수천, 수만의 잎들에 점령당해 문득 무서운 마음이 들 때가 있으셨는지. 무성한, 흐드러진, 수평선樹平線속에서 초록의 단호함에 새삼 혀를 내둘렀던 적이 있으신지.


  초록이 빚어내는 붉은 꽃은 인정하시는지. 붉고 노란 꽃을 초록이 키워낸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터. 반대 성격이나 술주정뱅이 아버지에게 질려 술 못 먹는 사람이면 될 것 같아 일생의 짝을 정하듯, 꽃을 사랑하고 칭송하는 이유는 초록이 아니기 때문은 아닌지. 장미가 아름다운 건 가시가 있기 때문이라지만 초록 잎에 둘러싸이지 않은 장미의 외로움에 대해서 측은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는 감히 없음을 초록 잎을 잃고서야 알아차리시겠는지.

 

  하나하나의 수많은 초록 잎이 뒤채며 바람을 일으키는 현장은 어떠셨는지. 바람 앞에서 사정없이 흔들리되 제 모습을 바꾸지 않는, 제 뒤와 속을 다 내보이면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 초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싸우는 것이 일인 군인들의 위장복이 초록이라는 것, 자주 밀리터리룩이 유행이 되는 것, 자연친화적이거나 환경 친화를 주창하고 그린 라이프를 그리는 것 또한 태초의 환경이던 들판의 색을 그리는 것이 아니겠는지.

 

  천지를 호령할 듯 물들이던 초록이 자신의 세상을 송두리째 내어주는 가을을 인정하시는지. 초록의 가장 친한 친구는 갈색과 노랑이라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꽃 진 자리 열매 맺듯 지녔던 초록을 갈색과 노랑에게 내주며 초록은 외롭지 않으리. 침몰하는 배에서 죽어가며 하는 말인 그 사람을 가졌는가처럼 여름이 초록을 떠날 때 갈색과 노랑을 믿고 내어주며 외롭지 않다고 하는 말이 들리시는지. , 사람으로 우리도 저 초록을 흉내라도 내며 살아야 맞지 않은지.

 

 다양한 초록의 향연을 지켜보지만 지나치고 있는 시기임도 물론 아시겠지. 푸르기만 했던 시절에 비해 지금은 하루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순간순간이 자리를 내어주는 가을의 초록 잎처럼 다르다는 걸 인정하시겠지. 여전히 푸른 초록을 부러워하거나 그리워하면서도. 그들처럼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도. 추운 계절이 다가오기 전에 미리 채비를 하는 초록을 닮는 지혜를 가지셨겠지. 푸르게 떨어진 감을 보며 걸음을 멈춘 적이 있음을 고백해야겠구려.

<<현대수필>>2025, 봄, 실험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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