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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의 두 얼굴-비발디와 스트라빈스키    
글쓴이 : 오정주    25-03-17 20:26    조회 : 85

             봄의 두 얼굴

                            -비발디와 스트라빈스키

봄이 오면 나뭇가지마다 새싹이 터지고, 새는 자유를 만끽하며 창공을 높이 날아오른다.

한파 뒤에 숨어서 고통을 감내하고 죽은 땅에서 꽃을 피워내는 봄, 그 엄청난 에너지는 혹한을 견뎌낸 생명의 불꽃처럼 타오른다.

봄은 수많은 작곡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따스한 햇살과 소생하는 자연은 클래식 음악 속에서도 다채롭게 표현되었다. 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작품으로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 슈만의 교향곡 1, 드뷔시의 관현악곡 (Printemps), 멘델스존의 무언가 6(Spring Song)등이 있다. 비발디의 과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도 빠뜨릴 수가 없다. 각 곡은 밝고 경쾌하면서도 서정적으로 봄의 생동감을 담아낸다. 그러나 봄의 제전은 밝고 서정적인 분위기와는 상반되는, 원시적이고 격렬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나는 비발디의 사계을 좋아하지만, 한편 스트라빈스키의 원초적이고 강렬한 봄의 제전에는 더욱 강렬한 매력을 느낀다. 비발디의 봄이 햇살과 새들의 노래라면, 스트라빈스키의 봄은 태고의 대지가 깨어나는 격렬한 몸짓이다. 이 곡에는 새싹이 돋고 꽃이 피는 온화한 봄이 아닌, 원시의 대지가 폭발적으로 깨어나는 생명력과 격렬한 에너지가 담겨 있다.

비발디의 사계는 광고나 영화에서 익숙하게 들려오는 반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여전히 현대 무용과 실험적인 무대에서 강렬한 울림을 전하는 작품이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비발디(1678~1741)는 작곡가이자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다. 바로크 음악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비발디는 특히 바이올린 협주곡을 발전시키며 당시 음악적 흐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붉은 머리의 사제라는 별명이 있던 그는 약 500곡이나 되는 기악작품과 약 40곡의 오페라와 오라토리오, 칸타타 등을 작곡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 신포니아 23, 합주 협주곡 조화의 영감이 있다.

계절의 변화 속 인간의 삶과 자연을 음악으로 섬세하게 담아낸 비발디의 사계 1725년 발표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에는 따뜻한 햇살과 새들의 지저귐이, 여름에는 폭풍과 더위가, 가을에는 수확과 사냥이, 겨울에는 추위와 얼음 위를 걷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비발디는 을 세 가지 다른 분위기로 표현했다. 첫 악장에서는 자연이 깨어나는 생동감을, 둘째 악장에서는 봄날의 평온함을, 마지막 악장에서는 축제의 기쁨을 담았다.

1악장은 활기찬 바이올린 선율로 시작되며, 봄의 생명력이 터져 나오는 듯하다. 따스한 햇살 아래 새싹이 돋고, 얼음이 녹은 시냇물은 졸졸 흐른다. 푸른 하늘 위를 새들이 경쾌한 노래와 함께 날아오른다. 2악장은 푸른 목장에서 봄 햇살에 졸고 있는 목동들의 나른하고 한가한 풍경이 떠오른다. 그 한없는 평화로움에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마지막 3악장, 알레그로는 아름다운 물의 요정이 양치기 피리 소리에 맞춰 춤추듯, 봄의 경쾌한 리듬이 온 세상을 환희로 들뜨게 한다.

 비발디가 활동했던 바로크 시대(17~18세기)는 자연과 인간의 감정을 예술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흐름이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음악뿐만 아니라 회화와 문학에서도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사계는 이러한 경향을 대표하는 작품이었다. 특히 특정한 이야기나 장면을 음악으로 묘사하는 표제음악 기법이 유행했다.

 비발디의 사계는 무심코 들으면 어느 계절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각 악보에 14행의 짧은 시, 소네트가 붙어있는 걸 아는 순간 계절의 풍경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고 음악은 더욱 사랑스럽게 들린다.

 작고 귀여운 새 울음(1악장), 멍멍 짖는 개 (2악장 ),불타는 태양이 이글거리는 모습과 그 사이로 들리는 뻐꾸기 소리 (여름1악장 처음), 잠에 빠진 술고래(가을2악장)와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겨울1악장) 그리고 난롯가의 평화로운 휴식과 밖에 내리는 빗방울 소리(겨울2악장) 등 각 곡에 해당하는 소네트가 악보와 함께 실려 있어, 음악을 들으며 시의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1악장의 새 울음은 빠른 트릴로, 시냇물의 흐름은 잔잔한 아르페지오로 표현되는 등 시적 이미지가 바이올린 선율과 리듬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음악과 문학이 절묘하게 결합한 이 명곡에 삽입된 네 편의 소네트는 작자 미상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비발디가 직접 썼다는 설이 유력하다.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스트라빈스키(1882~1971)20세기 음악의 혁신적인 작곡가로 전통적인 음악 형식과 규칙을 탈피하여 현대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법률가였던 그는 1903년 림스키코르사코프를 만나 음악에 뜻을 두었고, 이후 발레곡 불새』 『페트루시카등을 작곡하며 성공을 거두었다. 1913년 발표한 봄의 제전은 파리에서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전위 예술의 기수로 주목받았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척박한 땅을 뚫고 솟아오르는 봄의 에너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태고의 인간들에게 봄은 어떤 의미였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있었다.

나는 어느 날 꿈에서 한 원시 부족이 봄을 맞이하며 젊은 처녀를 희생 제물로 바치는 장면을 보았다.”

 그의 꿈과 상상력에서 시작된 봄의 제전은 고대 러시아 부족이 봄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이야기로 구체화되었다. 스트라빈스키는 꿈속에서 본 원시 부족의 제사 의식에서 영감을 받아, 죽은 땅에서 되살아나는 자연의 에너지와 대지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인간의 강인한 생명력을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원시 사회에서 자연의 순환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은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특히 혹독한 겨울이 끝나고 새 생명이 태어나는 봄의 도래는 신성한 순간이었다. 스트라빈스키는 이러한 원시적 감각을 음악으로 형상화하며, 기존의 발레 음악과 전혀 다른 작품을 탄생시켰다.

 초연 당시 봄의 제전은 공연 역사상 가장 논란이 된 작품 중 하나였다1부에서는 한낮을 배경으로 봄을 맞이한 인간들의 흥분과 환희가 묘사된다. 바순이 극도로 높은 음역에서 연주하는 서주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막이 오르면 고대 슬라브 부족의 젊은이들이 언덕 기슭에 모여 봄의 만개를 재촉하기 위해 대지를 힘차게 두드리며 춤을 추는 장면이 펼쳐진다. 강렬한 관악기와 타악기의 충돌, 불협화음과 변칙적인 박자가 불안을 자아내고 휘몰아치는 음향이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2부에서는 밤을 배경으로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거룩한 의식이 치러진다. 인상주의적 서주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고 이교도들의 밤을 암시한다. 장로들은 곰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조상의 영혼을 부르는 의식을 거행하고 선택된 처녀는 광란 상태에서 절박한 몸짓으로 춤을 추다가 쓰러지고, 조상의 영혼이 그녀를 들어 올려 신에게 바치며 끝난다.

무용수들은 우아한 동작 대신 땅을 강하게 밟고 사지를 거칠게 흔들었다. 이는 19세기 유럽의 전통적인 미학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혁신적인 시도였다. 관객들은 충격을 받았고, 공연 도중 야유와 고성이 터져 나왔다. 일부는 극장을 떠났고, 비난과 칭찬이 엇갈려 객석에서는 격렬한 논쟁과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공연은 혼돈 속에서 마무리되었다.

비록 초연 당시 혹평을 받았지만, 봄의 제전20세기 음악사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기괴한 리듬과 불규칙한 관현악의 포효는 당시 청중들에게 낯설고 충격적이었지만, 이는 음악사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봄의 제전초연 1년 후, 유럽은 제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역사적 격변을 맞이했다.

 비발디와 스트라빈스키는 각각 바로크 시대와 20세기 초라는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았기에, 그들의 음악은 각기 다른 시대적 정신과 세계관을 반영한다. 비발디는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따뜻한 봄을 그렸다면, 스트라빈스키는 원시적인 에너지와 본능이 폭발하는 거친 봄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봄의 제전은 단순한 음악적 실험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이 맺는 원초적 관계, 그리고 야생적인 봄의 에너지를 형상화한 작품이었다.

 

이처럼 봄을 노래한 두 거장은 시대를 넘어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계절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따뜻한 햇살과 새들의 노래, 그리고 격렬한 대지의 몸짓, 비발디와 스트라빈스키의 봄은 다르지만 그 속에는 같은 생명의 숨결이 찬란하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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