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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사람들이 부르는 소리
국화리
프라하 시간속을 걷다
자화자찬의 북을 두드릴 때마다 추임새를 넣어주는 동지들이 있다. 금강산 모임 친구들’이다. 그중 나는 왕 언니 1호다. 성격 화끈한 2호가 여행 계획을 들고 나타났다.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자며 밀어붙였고, 우리는 몇 분 만에 목적지를 정했다. 검은 머리가 많은 3호, 4호도 마법처럼 동참하며 하나로 뭉쳤다. 여행지는 연인의 도시로 소문난 프라하. 아침과 낮, 그리고 야경까지, 그곳의 음성들과 네 여인의 목소리을 담아올 참이다.
카를 4세를 만나고 그가 만든 다리를 건너며 줄지어 선 조각상들을 만날 생각에 설렌다. 종교개혁가 성 얀 후세를 만나고 프라하 성과 성 비투스 대성당, 체스키 크룸로프, 카를로비바리, 풀젠의 맥주 공장, 그리고 수만 개의 해골이 장식된 셔틀레츠 해골성당까지. 이 여정에서 우리는 과거의 흔적을 따라가며, 기억의 깊이와 삶의 유한함을 되짚어볼 것이다. 금강산 친구들의 사진첩에 그날들을 담을 것이다.
1. 구 시가지에서
크리스마스이브, 비행기 안에서 우리는 예수의 탄생을 축하했다. 프라하에 내리면 차가운 겨울바람이 기다릴 것을 대비해, 나는 빨간 패딩 코트를 꺼냈다. 산타 모자까지 눌러쓰고, 산타 엄마가 되어 성탄 인사를 일행에게 브이로그로 전했다. 선물 보따리는 없었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따뜻했다.
구 시가지를 향하는 길은 지방 도시의 한적한 풍경 같았다. 하지만 13세기 조성된 작은 광장에 이르자, 중심에는 구시청사가 고풍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관광객이 많았다. 우리는 오른 쪽 편에 뾰족한 두 개의 탑이 인상적인 틴 성당 앞으로 향했다. 수백 개의 전구가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 앞, 사람들은 오색 불빛을 바라보며 마치 교회 마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듯한 표정이었다. 유럽 역사의 뿌리는 기독교다. 이날만큼은 세계 어디에 있든, 그리스도의 불빛 하나쯤은 함께 켜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고딕 양식의 이 쌍둥이 탑은 웅장하진 않지만, 세월이 덧칠 해 놓은 검게 빛바랜 색이 눈을 잡으며 침묵 속에서 묵직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듯했다.
어디선가 종소리가 울렸다. 자연스레 우리는 구청사 앞의 인파 속으로 스며들었다. 광장 한쪽에는 600년 넘게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천문시계가 서 있었다. 위쪽의 시곗바늘이 움직이고, 정각이 되자 해골 인형이 종을 친다. ‘따당, 따당.’ 두 개의 창이 열리면 성경책과 십자가를 든 12사도의 작은 인형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매 시간마다 죽음을 상기시키는 이 시계는, 오히려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만든다. 시간은 흐르고, 그 안에 사계절이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생·노·병·사 또한 시간 속에 물결친다. 우리들 인생 시계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시계 아래쪽 둥근 원 안에는 12개월 동안 해와 달의 움직임을 새긴 그림이 있다. 글을 모르는 시민들이 이를 보고 계절의 흐름을 읽었다.
광장에는 우리나라 포장마차 같은 노점들이 즐비했다. 나무꼬챙이에 돌돌 말린 빵을 굽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프라하 명물 ‘뜨르들로’를 맛보며 사진을 찍었다. 빨간 털목도리를 두른 막내 4호가 빵을 베어 무는 모습은 아직도 소녀다. 우리는 중세의 여인처럼 둘러서서 따끈한 빵맛에 들었다. 4호 막내의 디카시 속에서 우리는 살아있을 것이다.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배운 선율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2호가 속삭이듯 말했다.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의 2악장,”블타바” 체코를 가로지르는 강의 이름을 딴 이 교향시는, 체코인들의 혼이 깃든 곡이다.
체코 국민은 신세계 교향곡 작곡가 드보르자크보다 스메타나를 더 깊이 존경한다고 한다. 그는 민족을 지킨 음악가였기 때문이다. 어느 상점에서는 『나의 조국』곡이 반복되며 흘러나왔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 선율은 블타바 강을 따라 흐르며 프라하의 겨울 하늘을 감쌌고, 동시에 우리의 기억 깊은 곳을 건드렸다.
한국의 한강에서 이 음악이 들려왔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의미로 ‘나의 조국’이 되었을 것이다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 한복판, 카를 대학의 교수였던 얀 후스의 거대한 청동상이 우뚝 서 있다. 그는 기존의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새로운 진리를 외쳤던 신학자이자 종교 개혁의 선구자였다. 교황청의 부패와 면죄부 판매, 교회의 사치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당시 권력자들에게 아픈 어금니처럼 거슬렸다. 결국 그는 화형에 처해졌지만, 100년 뒤 독일의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그 뜻은 계승되었다. 오늘날 그의 동상은 성역처럼 교회 앞에 세워지고, 그의 이름은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구시가지의 한 골목 안에는 오래된 극장이 있다. 입구에서는 검은 망토를 두른, 얼굴 없는 조각상이 우리를 맞이했다. 오페라 『돈 조반니』를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와 아, 돈조반니,“ 오페라 좋아하는 3호 친구 반기며 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잘츠부르크의 음악 신동 모차르트는 프라하에서 『피가로의 결혼』을 대성공시킨 뒤, 귀족들의 요청으로 이곳에서 『돈 조반니』를 작곡·초연했단다. 그 무대는 큰 호응을 얻었고, 프라하 시민들의 음악적 수준을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되었다.
250년이 지난 오늘 날에도 여자사냥을 나서는 방탕한 귀족청년의 이야기가
사랑을 받는다. 모짜르트의 음악으로 극적표현된 돈 도반니에게 열광한다.
600년 전으로 시선을 돌려 본다. 틴 성당으로 미사를 드리러 향하는 신도들, 천문시계 아래를 올려다보는 군중, 거리에서 빵을 사 먹는 여인들, 그리고 오페라 극장으로 향하는 한껏 차려입은 귀족들.
그들과 오늘의 우리는 얼마나 다른가. 우리는 디지털과 인터넷 속에 살지만, 삶의 깊이와 고뇌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천문시계 앞에서 죽음을 마주했던 그들의 시선은, 오늘의 우리에게 오히려 삶의 의미를 묻는다.
2. 기억의 거리, 바츨라프 광장에서
-신시가지에서-
프라하 신시가지 중심에는 길게 뻗은 바츨라프 광장이 자리한다. 정면에는 체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국립박물관과, 성 바츨라프의 기마상이 위엄 있게 서 있다.
보헤미아 공작이자 국민적 영웅이었던 성 바츨라프는 정치적 안정과 종교적 기반을 다졌으며, 동생의 손에 살해된 뒤 수호성인으로 추앙받았다. 그의 기일인 9월 28일은 지금도 국경일로 기념된다.
광장 양옆에는 700미터에 걸쳐 중세풍 5층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과거 말과 곡물이 거래되던 장터는 지금 호텔과 상점, 은행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근현대사에 정통한 ‘3호’의 해설을 들으며 이 거리 위를 걸었다.
이곳은 1968년 ‘프라하의 봄’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중심이기도 하다. 공산체제에 맞서 자유와 개혁을 외쳤던 시민들의 물결은, 탱크와 총칼 앞에 무참히 짓밟혔다. 수많은 희생이 뒤따랐고, 그 장면 앞에서 우리나라의 4·19 혁명과 5·18 광주 민주항쟁을 떠올렸다.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같은 고통과 대가를 요구한다. 지금도 광장 한편에는 당시 소련군의 총탄 자국이 남은 건물들이 그대로 있다. 덧칠된 벽면 위로 “그날을 기억하라”는 문구가 뚜렷하다. 그 곁에는 반전과 자유의 상징이 된 ‘존 레넌의 벽’도 있다.
「이매진」의 선율이 세계를 울릴 때, 체코의 젊은이들은 이 벽을 자유의 도화지 삼아 그들의 갈망을 쏟아냈다. 지금도 벽은 매일 새롭게 그려지고 지워지며, 시대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1989년 겨울, 이곳 바츨라프 광장에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벨벳 혁명’이 일어났다. 긴 침묵을 뚫고 체코는 마침내 민주주의를 이뤘다.
그날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나의 기억도 불려나왔다. 바츨라프 광장은 더 이상 낯선 땅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의 광주, 서울, 마산과도 겹치는 아픔이었다.
민주주의를 향한 여정은 이곳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