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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백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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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례의 실수    
글쓴이 : 백춘기    15-10-22 22:51    조회 : 5,878
                                                     主禮의 실수
                                                                                                                    백 춘 기
 
 결혼시즌만 되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 1992년 봄, 22년 전 일이다. 고등학교 동창생 문성식군의 청첩장을 받았다. 청첩장을 받아보니 그의 아들이나 딸의 결혼이 아니라 놀랍게도 본인이 결혼한다는 것이다. 그 무렵 우리 친구들은 40대 중반으로 아이들이 이미 중. 고등학교 다닐 때였다. 문군은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월남전에 파병되었다가 돌아와서는 외항선원으로 배를 탄다는 소문만 있었을 뿐 동창회 모임이나 친구들의 경조사에는 단 한 번도 얼굴을 내밀지 않아서 그의 존재조차 잊고 있었다. 외국의 항구를 여기저기 떠돌다 결혼도 못한 44세의 노총각 신세였던 그가 갑자기 나타나서 결혼소식을 알린 것이다.
 
 친구는 귀국해서 그 시절 유행하던 통나무 주택을 건설하는 사업체를 시작하였는데 제법 잘 되었다. 그의 사무실에 26세의 경상도 출신 경리 여직원 아가씨와는 나이 차이가 무려 18살이었는데 남녀사이란 아무도 알 수 없고 짐작도 할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시골출신 어린 아가씨를 어찌 꾀였는지 서로 눈이 맞아 사귀게 되었고 결혼까지 약속하였다. 요즘에야 띠 동갑하고도 결혼하는 사람이 연예인들 사회에서나 가끔 이루어지고 있지만 당시에 일반인이 그렇게 나이차가 많이 나는 결혼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보기 힘든 일이었다. 친구는 연예인은커녕 키는 짜리몽땅하고 얼굴도 그리 잘생기지 않은 그가 무슨 수로 거의 딸 같은 아가씨와 결혼을 하게 되었을까 궁금하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가씨가 이미 아기를 가져 결혼을 서둘렀다고 한다.
막상 결혼을 하려고 하니 아가씨 부모님의 승낙을 얻는 것이 제일 큰 걱정이 되었다.
몸이 아주 조그마한 체격이라 동안으로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아가씨는 남편감의 나이를 10살이나 낮추어 34살이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렇게 나이를 줄였는데도 8살 차이는 당시에 적은 나이차가 아니었다. 아가씨의 부모님은 나이 차이가 마음에 걸리기는 하였지만 이미 아기를 가졌고 딸이 매달리며 설득하는 바람에 결국 결혼을 승낙하고 말았다. 막상 결혼 날짜를 정하고 나니 딸아이가 혼자 서울 가서 자기가 근무하는 회사의 사장이라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고, 서울 강남의 비싼 아파트에 신접살림을 차린다고 친척들에게 자랑까지 하였다고한다. 마침내 결혼식 날 아가씨의 부모님과 친척들은 경상도에서 버스를 대절하여 올라 왔다.
 
 우리 친구들은 40대중반 늦은 나이에 결혼하는 친구를 축하하기 위하여 다른 때보다도 더 많은 동창생들이 식장을 가득 메웠다. 결혼식은 주례의 명성과 관록에 따라 결혼식 분위기가 엄숙한 분위기가 되기도 하고 지루하고 썰렁한 분위기가 되기도 한다. 주례는 인생의 선배로써 삶의 귀감이 될 만 한 분을 모시기 마련이다. 그래서 학생 때 큰 가르침을 주신 은사님이나 그 지역 국회의원 등 이름을 대면 알만한 명사를 주로 주례로 모시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특별히 아는 사람이 없던 친구는 예식장에서 추천하는 직업적인 주례를 세우기로 하였다. 주례사를 시작하면 틀에 박힌 것처럼 신랑신부를 먼저 소개하는 일이다. ‘신랑 아무개군은 어느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직장은 어디고 어느 분야에 종사하는데 장래가 촉망되는 아주 유능한 청년’이라고 잘 알고 하는지 모르고 하는 몰라도 당연한 듯이 그렇게 소개한다. 그리고 ‘신부 아무개양은 유복한 가정의 훌륭하신 부모님 밑에서 가정교육을 잘 받은 규수’라고 하는 것이 거의 공식적인 신랑신부 소개였다.
 
 마침내 결혼식이 시작되었고 주례사는 이렇게 시작하였다. “먼저 신랑 문성식 군은 지방의 명문 ㅇㅇ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이렇게 소개하는 순간 실제로 공부하고는 담쌓고 소풍날이면 야외전축에 전자기타연주와 트위스트를 추던 모습만이 기억에 남아있던 친구였기 때문에 친구들은 서로 얼굴을 보며 눈을 찡끗찡끗 하고 킥킥거렸다. 주례사는 계속되었다. “월남전에 참전하여 베트콩을 무찌르는 혁혁한 전공을 세워 무공훈장을 받고 지금은 건실한 사업체를 운영하는 장래가 유망한 청년입니다” 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신부의 부모님 뒷자리에 앉아있던 신부의 삼촌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형님! 신랑 나이가 34살이 정말 맞습니까?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제가 월남에서 1973년에 마지막 병력으로 철수했는데 신랑이 월남전에 다녀왔다면 아무리 나이가 적다고 해도 마흔네댓 살은 되어야 합니다. 보세요, 저사람 얼굴이 사십은 넘어 보이잖아요! 분명 신랑이 나이를 속인 것 같습니다“
 결혼식장은 술렁대기 시작하였다. 신부 측 가족은 사진도 찍는 둥 마는 둥 식이 끝나자마자 대절한 버스에 올라 빨리 내려가자고 서둘렀다. 신랑신부는 버스로 찾아가 “용서하여 주십시오, 잘 살겠습니다 ”하고 사정을 하였으나 “동네 창피하니 집에는 오지마라,” 이렇게 매정하게 내뱉고는 버스는 서둘러 경상도로 내려갔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을 피운 결혼식은 끝이 났다. 당초 계획했던 신혼여행도 다녀오지 못하고 신부 집에 신행도 가지 못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뒤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자 아가씨의 부모가 서울 딸집에 올라 오셨다고 한다.
지금 그 월남전 참전용사는 18살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도둑놈 심뽀라고 놀려대던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요즘은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아들이 얼마 전 해병대에 입대하였다고 스마트폰에 저장한 아들과 함께 찍은 젊고 예쁜 아내의 사진을 보여주며 은근히 자랑한다.
                                                                                            2014.6 한국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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