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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을 닮은 사람들    
글쓴이 : 최기영    16-02-26 23:44    조회 : 6,331
수년 전 말을 기르겠다고 마구간을 짓고 나니 모서리 땅이 빈터로 남았다. 일부는 채마밭으로 일궈 채소를 심고 마방에 가까운 곳은 닭장을 지어 재미로 병아리를 몇 마리 넣어놓았다. 그런데 녀석들이 성계(成鷄)가 되면서 서로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아 부화하더니 이젠 수십 마리가 훌쩍 넘었다. 대가족이다. 마릿수가 많아지니 닭 모이를 주는 것도 일과 중 하나가 되어 매일 녀석들의 상태를 살펴보곤 한다. 그런데 며칠 전이었다. 왕초에게 대들었던 중닭이 날개를 축 늘어트리고 죽은 듯이 모이통을 바라보며 왕초와 패거리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런 녀석이 생존본능이 발동했는지 내가 닭장 주변으로 다가가자 모이통 가까이 갔다. 그때까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던 왕초가 갑자기 날아 녀석의 머리를 쪼았다. 뒤를 이어 무리가 녀석을 공격했다. 순간이었다. 내가 고함을 치며 막으려 했지만 그럴 틈도 없었다.
난 닭들의 세계가 재미있어 커피 한 잔 마시러 왔다는 친구에게 하루 전에 일어난 닭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요즘 사람들이 닭을 닮아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며 너무 비하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옳았다. 일반적인 사고를 갖지 못한, 약간 모자란 저능아(사람)를 빗대 ‘닭대가리’라고 부르듯이 하등동물 중 최하위인 조류와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을 비교했으니 당연히 화를 낼만했다. 사람이란 종(種)에 대한 지독한 모독이었다.
그가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한참 동안 씩씩거렸다. 특별한 주제 없이 차를 마시는 것이 무료 할 것 같아 꺼낸 이야기에 너무 흥분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진짜 닭이 아닌가 싶었다. 나는 이럴 때를 대비해 우황청심환을 준비해 놓지 못한 걸 후회하며 걱정했다. 그가 만일 화를 식히지 못하고 사람이 닭을 닮아가고 있다는 내 말을 사람과 닭이 같다거나 사람을 닭만 못한 동물이라며 확대하여 소문을 낸다면 입장이 난감해질 것이 같았다. 마치 허구를 사실인 양 꾸며 내보내는 종편방송 맨트가 사람들의 입을 타고 퍼져나가듯이 그의 선전은 여과 없이 나에 대한 인신공격이 될 수도 있었다. 가장 먼저 내가 전통무예를 지도하는 사범으로서의 자질을 물고 늘어질 것이다. 그리고 학부형들에게 아이들을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부추김과 동시에 내 밥그릇을 빼앗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할 것이다. 그것은 결국 성인 연수생들까지 흔들어 놓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실언을 했다고 인정하기로 했다. 밥줄을 위협받는다는 것, 돈의 사회에서 그것 이상의 큰 문제는 없다. 그렇다고 사람이 닭으로 변해가는 비참한 과정을 그저 입 다문 채 바라만 보고 있을 수도 없었다. 거창하게 인류를 지켜야 한다는 명분 따위는 필요 없다. 대신 고등동물이라는 자존감을 느끼고 동물로 퇴화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 그것마저 못한다면 글을 쓰는 자로서의 직무유기이다.
내 빈약한 사고로 그를 이해시킬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사실을 보여준다면 가능할 것 같았다. 우선 닭장 앞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2015년 대한민국이 왜 닭 공화국인가를 확인시키기로 했다.
사람과 동물의 구분법을 이야기했다. 사람을 하등동물인 닭뿐 아니라 기타 동물들과 구분 짓는 것은 직립보행을 한다는 특징만이 아니다, 본능을 억제할 줄 아는 ‘체면’과 ‘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위선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에게 ‘탈’은 스스로 제어 장치이다, 즉 동물적인 야만성을 억제하기 위한 자구책임과 동시에 약자와 강자가 같이 살 수 있는 공동체를 지켜내기 위한 합의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불행하게도 닭을 닮아가고 있다, 그것은 억지가 아닌 사실이다, 닭장에서 닭들이 벌이는 헤게모니 쟁탈전과 닭이란 집단의 생존투쟁을 관찰하면서 확인하자고 했다.
그 때 둥지에 알을 낳고 나온 녀석들이 큰일을 치렀다는 듯이 꼬꼬 거리며 홰를 쳤다. 왕초가 고생했다며, 아니 뭐 그까짓 것 갖고 요란을 떨고 있느냐는 듯이 암탉 대가리를 부리로 콕콕 쪼았다. 놀란 암탉이 이리저리 몇 바퀴 돌더니 힘없이 주저앉아있는 중닭에게 달려들었다. 왕초에게 벼슬이 찢긴 녀석이었다. 중닭은 얻어맞았던 기억이 두려워서인지 언제부턴가 구석 자리에서 꼼짝 못 하고 있었으나 그날은 다른 녀석들이 모래찜을 즐기는 틈을 타 모이를 먹고 있었다.
녀석은 꼴이 아니었다. 붉게 색채 곱던 벼슬은 낡은 천 쪼가리처럼 너덜거렸다. 상처 난 부위는 여러 닭이 쪼아댄 탓에 핏빛 속살 사이로 허연 뼈가 흉측하게 드러나 있었다. 모이를 쪼아 먹고 있던 녀석이 놀라 고개를 땅으로 처박으며 비명도 아니고 울음도 아닌 이상한 소리를 냈다. 왕초가 암탉을 돕듯이 곧 죽어가는 녀석의 날개 위에 올라 날카로운 발톱으로 짓누르며 ‘꼬꼬’ 거렸다. 부리는 이미 녀석의 대가리 부근 상처 사이를 비집고 올라온 살점을 쪼아대고 있었다. 마치 겨울날 늙은 호박에 부리를 박고 호박씨를 골라 먹는 것과 같았다.
닭의 생태를 보여주고 싶어 친구를 이끌고 닭장으로 왔으나 녀석들의 잔인함에 할 말을 잃었다. 중닭이 안쓰러웠다. 모이통에 모이는 충분했다. 왕초가 중닭에게 모이통 주변으로 접근금지 명령을 내린 것은 먹이가 모자라서 중닭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었다. 중닭이 성계(成鷄)가 되어 패거리들에게 목을 길게 뽑고 깃을 세우며 ‘꼬끼오’ 긴소리로 울며 스스로 수탉임을 선언하면서 왕초의 응징은 시작되었다. 처음 몇 번은 왕초의 폭력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싸움은 왕초의 일방적 승리로 싱겁게 끝나버리곤 했다. 그 후 왕초의 보복은 잔인했다. 녀석을 괴롭히는 차원을 넘어 죽임에 이르도록 고문을 가했다. 그리고 복종을 맹세한 닭들과 함께 상처 난 부위에서 매일 살점을 도려냈다. 녀석은 집단 린치에 대항 한번 제대로 못 하고 살점을 뜯기면서 도망 다니기에 바빴다. 물론 모이통 옆에는 얼씬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왕초의 호위무사를 자칭하며 중닭을 공격하는 닭들은 모두 녀석의 형제들이었다. 즉 같은 어미 닭 품에서 생명을 얻어 나온 놈들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패권을 행사하는 왕초 역시 중닭의 애비였다. 그것을 모르는지 놈들은 자식의, 형제의 상처부위에 너덜거리는 살점으로 매일 같이 포식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냥 동물적 본능이라고 치부하고 힘없는 녀석이 시달려 죽건, 아사(餓死)하건 말건 여담이나 나누며 자리를 뜰 수도 있었다. 닭이란 종(種)이 가진 천성이라고 치부하고 싶었지만 불쌍한 중닭이 죽임을 당하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사람의 탈을 쓴 인간의 의무감이었다. 결국, 녀석을 격리해놓았다. 그리고 친구에게 닭의 헤게모니 투쟁과 생태계가 우리가 신줏단지처럼 모시고 있는 신자유주의 생산 구조와 너무 많이 닮지 않았냐고 물었다.
친구는 대답 대신 ‘닭대가리’라는 말의 생성과정을 알 것 같다고 했다.
경찰이 물대포를 쏘았다. 정부의 실정 때문에 너무 배가 고프다고 고함지르는 농민을 중태에 빠트렸다. 경찰들은 그가 쓰러진 걸 보았다. 그러나 물대포를 멈추지 않았다. 닭의 머리가 깨져 살점이 너덜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왕초와 그 무리는 계속 쪼아대며 살점을 파먹고 있었다. 닭이 아사(餓死)하는 그 날까지 반복될 것이다. 너무 똑같지 않은가? 경찰청장은 헤게모니를 지킨 수탉과 같이 법을 지키기 위한 처사였다고 답변했다.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이래도 대한민국이 닭 공화국이 아니라고 생각하느냐? 그는 답했다. 말은 맞는데 그래도 우리는 사람인데 그렇게 이야기하면 안 되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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