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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정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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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스, 예스    
글쓴이 : 정민디    17-07-25 23:04    조회 : 9,423

 예스 예스

                                                    

                                                                                                                    정민디


   얼굴이 검어서 붉으락푸르락 하는 것이 잘 보이지 않았다. 큰 눈을 부라리며 쏼라쏼라하며 나에게 다가오는 폼이 내가 뭔가를 잘못 한 것이 틀림없다. 오전에 세탁물을 찾으러 왔을 때도 맥도널 햄버거가 어쩌니 저쩌니 하더니 오후에 와서도 또 햄버거 타령을 해대었다. 그 광경을 보고 속으로 손님 하나 떨어져 나가겠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뒤쪽에서 다림질 하던 호세(Jose)와 헤이수스(Jesus)가 낄낄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흑인아저씨가 씩씩거리며 가버리자 그제서야 호세가 천천히 얘기해 준다. 당신이 다 예스를 했으니 그 남자가 화가 난 것은 당연 하다고 했다.

“너 참 예쁘다.”

“ 오우 예스."

“ 너 결혼 안 했지?”

“예스.”

“나랑 맥도널에서 햄버거 같이 먹겠니?”

“ 예스.”

“그럼 내가 먼저 가서 기다릴게. 빨리 와”

“예스, 예스.”

그랬다고 한다. 바빠서 손님이 무슨 말을 하는 지 미처 파악할 틈도 없으니 건성으로 대답할 때가 많았다. 그저 정신없이 미스 코리아의 미소만 실실 날리며 예스를 연발 했던 것이다. 내가 얼마나 띨띨해 보였으면 그런 저렴한 데이트 신청을 했을까. 기다려도 미모의 여인이 안 나타나니 알아듣지도 못하는 욕을 해대고 간 것이다.

친구 정숙이가 문제였다. 세탁업은 서비스업종이고 친절이 제일이니 대답을 노(no) 하면 안 되고 예스만 하라고 시켰다. 이민을 가면 공항에 데리러 나오는 사람의 직업이 곧 이민생활의 첫 일로 결정되는 경향이 있었다. 미국생활에 대해 가장 쉽게 그들에게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그 직업이나 사업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나도 세탁소를 해 볼 양으로 흑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 그녀의 가게에서 시간제로 일을 배우고 있던 중 이었다.

흑인아저씨 일 이후로는 대답하기가 겁이 나서 더더욱 울렁증이 생겼다. 물건 파는 전화를 잘못 알아들어 예스예스 했더니 가구, 냉장고, 텔레비전이 배달되어서 낭패를 보았다는 흉흉한 얘기가 떠도니 집에서도 전화벨이 울리면 깜짝깜짝 놀랬다. 전화번호부에서 미국사람 성이 아닌 이민자들의 이름으로 보이는 집 번호를 눌러 사기를 치는 것이다(당시에는 지역전화번호부가 있었다). 배달되고서야 노, 노 해봤자 운송비라도 내야 한다고 종주먹을 치는 일이 왕왕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그런 전화를 받더라도 ‘No thank you' 한마디만 하면 끝날 것을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내야만 했었다.

그 후로 이 장사 저 장사 하면서 생계형 영어가 필요했으니 귀가 좀 트였고, 예스나 노 정도는 막힘없이 내뱉을 무렵부터는 생활도 많이 안정 되었다. 그러나 손님이나 나나 서로 바빠 짧은 문장이나마 영어로 대화 할 일도 별로 없었다. 게다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한국드라마 비디오가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에서 한국 말 공부(?)를 오래 한 덕분에 지금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말 좀 실컷 하려고 고국에 돌아 왔는데 다시 영어울렁증이 생겼다. 미국에서 오래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당연히 ‘영어 잘 하겠네요.’ 또는 ‘외국 여행 같이 갈 때 통역 해주시면 되겠네요.’ 한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영어가 전 국민이 극복해야하는 대상처럼 되어 있었다. 영어가 이 나라에서 얼마만큼 경쟁력을 가지느냐를 자세히 느끼지는 못하겠으나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영어를 배우고 심지어 내가 아는 어느 젊은 엄마는 아이가 태어나서 젖병을 물고 있을 때도 영어방송을 들려주고 영어 동화책도 들려주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말로는 이렇게 해야 나중에 아이가 영어에 대해 친근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치원 다니는 조카의 아들이 내가 미국서 왔다니까 영어로 질문을 해서 가까스로 대답을 하곤 한다.

평생교육원에서 운영하는 영어교실에 체계적으로 공부를 해야겠다고 등록을 했다. 40대에서 60대까지 학생들로 구성된 그곳에서 내가 듣지도 못한 단어들을 구사하는 실력 있는 사람들과 공부하고 있다. 미국에서 오래 살았다는 것을 국가비밀로 숨기고 있으나, 영어로만 진행하는 수업도중에 단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미국사람처럼 손을 올리며 어깨를 으쓱한다거나 “으음” 같은 감탄사나 연발을 하다가 지금은 거의 들켜가고 있는 중이다.

아직도 영어를 변변하게 하지 못하고 있으니 나에게 영어는 늘 머리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노마드 시대의 숙제가 아닌가 한다.

          


   <2013 에세이문학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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