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눈물
노 정 애
남편은 오페라 <춘희>의 티켓을 예매한 그날부터 계속 들떠 있었다. 가족들이 모이는 저녁시간이면 줄거리를 말하거나 귀에 익숙한 노래를 들려주며 기대해도 좋은 공연이라고 식구들을 설레게 했다. 가난한 복학생 시절 그는 일주일 점심 값을 투자해서 2층 제일 뒷줄 구석자리에서 이 공연을 봤다고 했다. 비올레타가 부르는 ‘지난날이여 안녕Addio del passato’을 들으며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고, 이제 다시 그 감동을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며 아이들의 첫 학예 발표회를 보는 것처럼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나는 보지 못한 공연이었다. 단지 멋진 배우자가 운명처럼 나타나길 기대했던 20대에 본 영화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에서 매춘부인 비비안(줄리아 로버츠)을 사업가인 에드워드(리차드 기어)가 전세비행기에 태워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극장으로 데려가는 멋진 장면과, 내용도 잘 모르는 공연을 극의 흐름과 음악적 감동만으로 눈물을 글썽이는 비비안의 사랑스러운 표정, 공연이 끝나고 옆 좌석에 앉은 상류층 부인이 어땠는지를 물었을 때 ‘오줌 쌀 뻔 했어요’라고 말해 그 부인을 깜짝 놀라게 했던 장면들만 기억났다. 그녀가 느낀 짜릿한 감동이 가끔 궁금했었다.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는 프랑스의 문호 알렉상드르 뒤 바 피스Alexandre Dumas fils, 1824년 7월 27일 - 1895년 11월 27일)가 1848년에 쓴 소설 《동백꽃 부인》이 원작이다. 이 작품이 일본에서 소설로 번역되면서 우리나라에 들어왔기 때문에 ‘춘희椿姬’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희곡으로 각색된 이 연극을 베르디(Giuseppe Verdi. 1813년 10월10일 ∼1901년 1월27일 )가 파리에서 보고 만든 오페라로 약4주 만에 전곡을 완성했다. 파리 사교계의 여왕 비올레타는 젊은 귀족 청년 알프레도를 만나 동거를 시작하지만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폐병으로 그 남자의 품에서 죽는 슬픈 이야기다.
가족과 함께 오페라 공연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바삐 살아온 탓에 정신적 여유도 거금을 지불할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중, 고등학교에서 귀가한 딸들과 외식을 하고 공연장으로 갔다. 공연장 입구는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기름진 저녁에 향 좋은 커피를 마시고 고급 문화생활까지 처음 누려보는 호사였다. 평일인데 빈 좌석은 없었다. 1층 4번째 중간, 가장 좋은 좌석, 무대 위의 배우들이 흘리는 땀방울도 보일듯했다.
막이 올랐다. 귀에 익숙한 ‘축배의 노래’가 나오고 기대에 부푼 아이들의 표정은 조금 흥분돼 보였다. 그러나 사랑을 고백하는 노래들과 애조를 띤 분위기의 낮고 애절한 곡들이 계속되자 2막 시작 즈음부터 딸들은 졸기 시작했다. 종일 학교에서 공부한다고 앉아있던 피로는 든든히 채워진 저녁과 조용한 음악이 가속도를 붙여 깨워도 잠시일 뿐 이내 다시 졸아 나는 좀처럼 공연에 집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옆자리의 남편은 감흥에 몰입된 표정으로 시선은 무대 위를 뚫고 지나갈듯했다.
20년 전 2층 끝 좌석에 앉아있었을 그. 배고프고 힘든 시절 이 공연은 왜 그를 울게 했을까? 사랑했던 여인을 떠나보내고 힘들어했던 과거가 있다. 혹 그즈음 사랑했던 여자가 떠난 직후가 아니었을까? 가난한 복학생인 그와 공주처럼 고이 자란 부잣집 딸 대학원생인 그녀와는 시작부터 이별을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떠난 뒤 절망 같았던 그때 이 공연을 본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삶을 비관하고 있던 그에게 3막 시작 후 비올레타가 죽음을 앞두고 지난날을 회상하며 부르는 ‘지난날이여 안녕’이 마치 자신 신세 같아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렸으리라. 어쩌면 그는 이 공연으로 마음을 위로 받고 다음에는 울지 않고 볼 수 있는 날들을 기대 했을 수도 있으리라. 짐작할 뿐 그에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3막이 올랐다. 비올레타가 죽어가며 절규하듯 애절하게 ‘Addio del passato~' 지난 시절들을 회상하며 노래를 불렀다. 아이들도 언제 깨어났는지 무대 위의 여주인공을 보고 있다. 남편은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비올레타보다 더 애틋한 표정이다. 공연이 끝나고 그는 한참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밖으로 나오면서 어땠냐는 아빠의 물음에 두 딸은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좋았어요.’라고 간단하게 말했다. 나 또한 좋았다는 짧은 말과 졸고 있었던 아이들에게 돈이 아깝다고 구박하는 것으로 감상평을 대신했다. 비비안처럼 오줌 쌀 뻔한 짜릿한 감동은 없었다.
절심함이나 배고픔, 추억조차 없는 아이들에게 남편을 울렸던 그 곡은 CD에서 흘러나오는 다른 노래들과 다를바 없기에 감동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남편은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가슴속으로는 울었다고 생각되었다. 아마도 그에게 이 공연은 추억으로의 여행과 가족들에게 좋은 가장 노릇 하고 싶은 욕심이 더해진 티켓이었으리라. 20년 동안 앞자리로 오기위해 달려왔던 자신을 되돌아보게 했을 것이며 삶의 전쟁터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자기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었을 것이다. 훗날 가족들과 함께 본 이 공연을 회상하면서 아이들의 ‘좋았어요.’ 한마디가 기분 좋은 미소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함께 살면서 몇 번 보지 못한 남편의 눈물. 얼마 전부터 ‘지난날이여 안녕’은 그의 핸드폰 벨소리가 되었다. ‘Addio~~' 참 못 말리는 사람이다. 이제는 편안하게 그 곡을 들을 수 있게 되었나보다. 온종일 받는 수십통의 전화벨이 어떤 위로가 될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백 마디 힘내라는 말보다 더 큰 위로가 되리라 짐작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