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층 아저씨
노정애
오늘도 위층 아저씨의 아름다운 오카리나 연주가 들려온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박목월의 시에 김성태가 작곡한 <이별의 노래>다. 이 곡에는 시인이 겪은 이별이야기가 담겨있다. 제자와 사랑에 빠졌던 시인이 그녀와 헤어지면서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이야기다. 이런 사연을 아저씨도 알고 있나 보다. 그의 연주에 애잔함이 절절히 묻어나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시인의 이별 장면을 보고 양중해가 쓴 시 <떠나가는 배>에 변훈이 작곡한 노래를 들어 보면 그들의 이별이 얼마나 애틋했는지도 알 수 있다. 내친김에 그 곡까지 연주해 주셨으면 좋겠지만 아저씨는 한해가 감을 아쉬워해서인지 연말에나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몇 해 전 위층에 새로운 식구들이 이사 온 것을 알게 된 것은 층간소음 때문이었다. 어느 날부터 삑삑거리는 파열음과 타당거리는 북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들려왔다. 소음에 대해서는 우리 집에도 똥개 두 마리가 목청껏 짖어대니 할 말이 없어 몇 주를 참고 있었다. 허나 공부하는 아이들이 있는 우리 집 사정에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들려오는 소음은 지나쳤다. 며칠을 벼르다가 소음이 절정인 낮 시간에 결전이라도 치를 마음으로 그 집 벨을 눌렀다.
선한 인상에 연륜이 있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웃으며 맞아주셨다. 사정을 말하자 남편이 오카리나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자신은 장구에 입문해서 내는 소리라고 했다. 문을 닫고 연습했는데 소리가 그렇게 클 줄 몰랐다고 했다. 우리 집 개 짖는 소리도 시끄러웠을 것이라며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저녁 10시 이후에만 조심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 후 장구 소리는 잘 들을 수 없었지만 오카리나 소리는 자주 들렸다. 물론 한밤의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저씨는 정년을 하신 듯한 연배로 보였다. 중후한 멋을 자아내는 중년의 신사 분이었다.
아저씨가 열심히 연습하는 과정을 생방송으로 들었다. 계절이 바뀌길 몇 번, 어느새 소음은 다듬어져 소리가 되고 운율을 넘나들고 노래가 되어갔다. 아름다운 노래는 내 집을 쉼 없이 넘나들었다.
겨울 끝자락이면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부터 ‘봄처녀’,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까지 동요부터 트롯을 넘어 신곡까지 자유자재로 멋지게 연주를 한다. 어느 봄비 오는 날 들은 ‘찔레꽃’은 빗소리와 어우러져 내 마음까지 애잔하게 만들었다. 라이브 연주는 겨울의 추위를 몰아내고 훈훈한 봄바람을 선물해준다. 여름이면 바람처럼 시원한 노래들을 듣는다.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고~’로 시작하는 <가을> 노래가 들리기 시작하면 나는 여름동안 느슨해졌던 마음을 다잡곤 한다. 크리스마스 즈음 캐럴이 들려오면 새해를 기다리며 계획을 세운다. 몇 해를 요런 쏠쏠한 재미에 빠져 지내니 귀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언젠가 엘리베이터에서 위층 아주머니를 만났다. 들려주는 오카리나 소리가 너무 좋다며 감사하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남편이 복지관에 오카리나 강사로 나가고 있다며 연습량이 더 늘었다는 말을 했다.
층간 소음으로 칼부림이 났거나 폭행에 소송까지 가는 뉴스를 자주 듣는 요즘이다. 내가 사는 곳에서도 층간소음이 문제가 되는지 하루에 몇 차례 관리실에서 방송을 한다. 조심해 달라는 협조문도 많이 붙어있다. 특히 저녁 10시 이후에는 생활소음을 최대한 자제하도록 부탁하고 있다. 소주 처음처럼의 글씨를 쓴 신영복씨는 층간 소음을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는 네가 빨리 이사를 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윗집 아이들과 친해지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사도 어렵지만 이웃과 친해지기가 말처럼 쉽지 않은 세상이다. 정작 나도 이웃에게 별 관심도 없고 마음 깊이 사귄 동네 친구도 없으니 누구를 탓할 입장은 아니다. 층간 소음을 배려하지 않고 지은 주택들도 문제는 있다. 공동주택에 사는 한 서로를 위한 배려가 필요하리라. 좋은 이웃을 만난 덕분에 지금까지 큰 문제는 없었지만 내 행동은 늘 조심스럽다. 서로 조심하고 있는 것이리라.
우리 집에서 들려주는 것은 개들 짖는 소리뿐인데 아름답고 멋진 오카리나 연주로 돌려받으니 횡재한 것 같아 집에 있는 시간들이 즐겁다. 소통을 위해 마음의 문부터 활짝 열어본다. 부디 위층 아저씨가 오래도록 이웃으로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저씨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위층에 감사의 선물이라도 해야 되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