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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복을 빌어준 값    
글쓴이 : 백춘기    17-11-04 10:25    조회 : 4,072

       명복을 빌어준 값

                                                                                                                           백 춘 기

전 직장에서 같이 근무했던 후배직원의 모친상에서 있었던 날이다.

장례식장이 3호선의 종점인 일산의 대화역 근처에 있는 백병원이다.

가기는 가야겠는데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7월 하순, 날도 더운데 지하철로 가도 1시간 40분이 걸린다. 너무 멀다.

그냥 계좌로 입금시키는 것보다야 그래도 직접 가서 문상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 집에 있어 보았자 열대야도 심한데 냉방이 잘 되는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1시간 40분 동안 읽고 있던 책이라도 마저 읽으며 다녀온다면 이보다 더 좋은 피서가 어디 있겠는가!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눈에 익은 한 후배가 식장 문 앞에 서 있다가 반갑게 맞아준다.

왜 날도 뜨거운데 여기에 서 있어?” 하고 물었더니

상주도 자리를 비우고 동료들은 이미 다녀갔는지 아는 사람도 하나 없어 그냥 나왔단다.

아는 사람 오면 다시 들어갈 요량으로 여기 서 있다고 했다.

그래요? 그럼 나랑 같이 들어갑시다! 가서 기다리다보면 누군가가 오겠지하고 말했다.

안내판을 보니 후배의 장례식장은 지하2층 특1호였다.

 같이 들어간 후배는 자기는 아까 먼저 접수하고 문상을 드렸으니 나 혼자 문상을 하라는 것이다.

 들어가자마자 방명록에 기록하고 부의금 봉투는 부의함에 넣었다.

 문상을 드리러 영안실에 들어가니 상주인 후배는 어디를 갔는지 보이지 않고

 동생인지 처남인지 젊은 사람 셋과 상복을 입은 여인 둘이 서서 문상객을 맞이했다.

국화 한 송이를 제대에 헌화하고 재배(再拜)를 하였다.

십자가 표시를 한 명패에 권사000 라고 쓰여 있는 그의 어머니 영정사진을 보니 무척 근엄하게 보였다.

옆에 서 있던 유족들에게는 얼마나 슬프십니까? 명복을 빕니다라는 애도의 인사를 건네고 맞절까지 하고 나왔다.

 

그때까지도 식장 안을 둘러봐도 전 직장 동료들은 아무도 없었다.

같이 들어간 후배와 식사를 하는 동안 20여분이 지났는데도

 상주는 어데 갔는지 나타나지 않고 직장 동료들도 오지 않았다.

 그 친구가 평소에 애경사에 잘 안다녀서 그런가보다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했다

. 나는 후배에게 재촉했다.

어이, 아무래도 이상하네! 여기 호실이 아닌 것 같아! 한번 알아보게나.” 그랬더니

근처에 상복을 입고 있던 젊은 여인에게 물었다.

00씨는 어디 가셨어요? 그리고 유00씨와 어떻게 되십니까?”

? 누구요?”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러는 것이다.

아뿔싸! 이게 뭐야, 그때서야 우리는 뭔가 잘 못된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둘러 밖으로 나와 입구의 호실 안내를 다시 보니 특1호가 아닌 특7호였던 것이다.

7자를 그저 스쳐보니 1자처럼 보았던 것이다.

1호에 왔더니 아는 얼굴들이 여럿 와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우리 둘은 어처구니없게도 호실을 잘못 찾아 부의금도 넣고 문상까지 하였다고 했더니

웃으며 그럼 부의금을 찾아와야 한다고 그러는 것이다.

부의금을 찾으러 아까 문상했던 특7호에 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더니

 본인인지 확인해야 한다면서 신분증을 제시하란다.

접수부의 이름과 신분증을 대조하였다.

 이제는 부의함에서 봉투를 꺼내서 주려는 가보다 그랬더니 상주가 갑자기 소리쳤다.

이 사람들 어디 못가게 꼭 붙잡고 있어 그리고 빨리 경찰을 불러!” 그러는 것이다.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우리는 꼼짝없이 봉투나 가로채는 사기꾼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결혼식장에서 축의금 봉투를 가로챈 사기꾼 뉴스는 보았어도

 장례식장에서 신분증까지 제시하는 멍청한 사기꾼이 있을 수 있는가 말이다.

 5분도 되지 않아 바로 경찰 두 명이 왔다.

경찰은 자초지종 설명을 듣더니 이분들이 본의 아닌 실수를 한 것이 맞다고 인정하여

부의금을 돌려받게 되었다. 문제는 그렇게 그 정도에서 서로 웃으며 실수를 인정하고

끝났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쪽 상주가 봉투를 돌려주더라도 식사를 하고 갔다며 식대를 1인당 2만원씩 공제하고 주는 것이다.

 세상에! 무슨 해괴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다 있을까?

부모가 돌아가시면 편히 가시라고 지나가는 거지한테도 한상 차려 먹여 보내는 것이

우리의 오랜 풍습인데 밥값이라니!

아무리 세상살이가 힘들고 험하게 살아 왔어도 그것은 너무 심했다.

영안실 입구에 시위라도 하듯이 가득하게 세워진 많은 조화들이 비웃고 있는 듯하였다.

그 많은 조화를 보더라도 제법 큰소리치며 행세깨나 하며 사는 사람들 같았다.

 어찌 세상을 그리 모질게만 살아갈까! 갑자기 그들이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맞절까지 하였던 상주에게 소리쳤다.

그럼 당신 어머니에게 명복을 빌며 천국에 가시라고 절하고 기도까지 하였는데,

그 값은 얼마 쳐 주시겠소?”

끝내 밥값은 돌려받지 못했다.


<한국산문 2017.11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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