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외출
“앗, 거북이가!”
엄지손가락만 한 거북이가 내 자전거 바퀴에 치일 뻔했다. 거북이를 피했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자전거 페달을 밟을수록 거북이가 자꾸 눈에 밟혔다.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 자전거도로를 달리는 중이었다. 내가 앞서가다가 친구한테 손가락으로 잠수교 근처에 있는 벤치를 가리켰다. 손짓으로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낸 다음 자전거를 휙 돌렸다.
“어디 가?”
친구가 던진 말은 메아리처럼 들리고, 나는 자전거를 돌려서 거북이를 찾으러 갔다. 거북이가 살아있을까? 도로를 건넜을까? 이런저런 걱정 끝에 거북이가 나타났던 장소에 도착했다. 거북이가 운동장 쪽으로 가고 있었다.
“용케 살아있었구나!”
거북이를 손에 들고 새색시 걸음을 걸었다. 풀숲을 해쳐가며 전봇대가 서 있는 거리만큼 가서 강물에 놓아주었다. 강가에 낚시꾼들이 제철을 만난 듯 띄엄띄엄 자리를 잡았다. 둑 언저리에 내 키만 한 갈대가 듬성듬성 쓰러져 있고, 그사이를 비집고 애기똥풀이 수줍은 듯 웃고 있다. 잠시 후 친구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찾았시유?”
“……”
내가 말없이 고개를 흔들자 친구가 재차 물었다.
“뭘 잊어버렸수? 급히 달아 빼길래 금반지라도 잊어버린 줄 알았슈.”
나는 스무고개 게임이라도 하듯 뜸을 들이다가 답했다.
“토끼랑 시합한 놈 말이요.”
“거북이유? 아까 보았다던 그 거북이?”
자전거 타고 친구랑 나란히 가면서 “거북이를 치일 뻔했다.”고 혼잣말했는데 친구가 눈치챈 모양이다. 한마디 덧붙였다. “거북이가 죽고 사는 건 팔자소관이고, 거북이가 느린 것도 타고난 운명이유.”
친구는 거북이 운명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지만 ‘팔자소관, 운명’이라는 단어는 내 입안에 생선 가시가 박힌 것처럼 뜨끔했다.
박완서 소설<도시의 흉년 3>, ‘인력으로 안 되는 팔자소관은 없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말없이 잘 견디었고’라는 문구가 떠올랐으므로. 내가 눈을 지그시 감고 양손으로 턱을 괴고 있다가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문제 하나를 냈다.
“거북이와 토끼 중 자기 집에 누가 먼저 들어갈까요? 결승점을 정해놓은 다음, 거북이는 결승점에서 50㎝ 떨어지고, 토끼는 15m 떨어졌다고 치세.”
“그야 뻔하지유, 토끼가 이기지유.”
“어찌서 그런디유?”
내가 친구의 말투를 따라 하자, 친구가 웃으며 그럴싸하게 둘러댔다.
“동화책에 토끼와 거북이가 나오는디유, 토끼가 낮잠을 자는 바람에 달리기 시합에서 거북이한테 졌대유, 알지유? 그 후 정신을 차렸대유.”
“땡!”
종소리를 내며 내가 답을 가르쳐주었다.
“거북이는 목을 길게 빼고 있다가 안으로 쑥 집어넣으면 집에 들어가는 꼴이죠.”
“하하하.”
친구는 뒤통수라도 얻어맞은 듯 너털웃음을 지었다. 한바탕 웃고 나서 한강을 가리켰다. “거북이가 흙탕물이 싫어서 잠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가 길을 잃은 거유, 저 봐, 저거 봐유, 물고기도 물 위로 펄쩍펄쩍 뛰어유, 거북이나 물고기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물을 떠나서 살 수 없시유.”
나는 친구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천둥·번개 치고 장마가 지나간 뒤, 황톳빛 물살은 헐떡이며 힘을 다해 달린다. 팔뚝만 한 물고기가 숨이 가쁜지 물 위로 두어 번 솟구쳤다가 가라앉는다. 뿌리째 뽑힌 나무가 잠수교 교각에 걸려있고, 스티로폼이며 플라스틱병 등 각종 쓰레기가 선착장 주변으로 몰려와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온갖 것들이 중심을 잃어 비틀거리는데, 강은 속이 뒤집어져도 모든 것을 품고 있다.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라디오에서는 팔당 수문을 2개나 열어서 몇 시간 후면 잠수교가 잠길 거라고 떠들어댄다. 벤치에 앉아서 라디오를 들으며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거북이 생각뿐이었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갈 때 거북이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 있었고, 나는 거북이를 보고도 못 본 척 무심코 지나쳤다. 얼마큼 가다가 거북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강하게 밀려왔다. 그래서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서 거북이한테 달려갔다. 거북이를 물속에 넣어줬으므로, 거북이 화려한 외출은 끝이 났는가.
제3회한국산문이사회에세이45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