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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박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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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글쓴이 : 박옥희    18-11-22 16:35    조회 : 4,538
지구는 둥글더라
박옥희

 11박 12일의 일정으로 남아공과 케냐를 여행했다. 남편의 사업관계로 인연이 된 두 쌍의 부부와 함께였다. 홍콩에서 영국 비행기로 갈아탄 우리일행은 긴 시간의 비행 끝에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했다. 시차는 우리보다 7시간 늦다. 공항에는 흑인 노동자들만이 분주했고 백인은 눈에 띄지 않았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 그처럼 먼 곳에 한국 식당도 있었다.

 더반은 남아프리카 동부에 있는 영국인들이 건설한 무역항으로 상공업도시이다. 드높은 파도가 거칠게 출렁이는 인도양을 마주한 더반의 해변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체인 호텔들이 줄지어 있었다. 아프리카의 뜨거운 더위를 예상했던 내 추측은 고급호텔들과 더불어 여지없이 빗나갔다. 서울의 30도를 넘나드는 더위를 뒤로하고 내가 만난 더반은 한겨울이었고 8월의 평균 기온이 섭씨 22도였다. 그곳의 여름은 1월이고 평균 기온은 27도이다. 유럽인들이 탐낼만한 온화한 기후와 환경을 갖춘 셈이다.
 다음날 해변 구경을 나갔다. 파도는 잔잔해졌고 주말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바닷가는 소란스러웠다. 듣던대로 백인과 흑인의 구역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었고 다른 한 곳에는 예상하지 않았던 인도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광경도 보였다. 알고 보니 인도계 주민이 총인구의 약 1/3을 차지한단다. 때문에 곳곳에서 카레 냄새가 풍겨 나왔다. 아프리카에 대한 정보는 TV프로 '동물의 왕국'이 거의 전부인 나에겐 이 모든 광경이 충격이었다. 다음 일정인 줄루 민속촌을 기대하면서 해변에 줄지어 늘어서 있는 관광지를 따라 다녔다. 기억에 남는 곳은 어디에나 있는 식물원, 스네이크 공원, 나탈 해양 박물관 등이다.

 다음날 우리 세 여인네들은 가이드를 앞세우고 민속촌으로 향했다. 가는 길목에서 나는 드디어 남아공의 비극을 보았다. 곳곳에 한 무리의 흑인 시위대들이 무리지어 있었다. 창문을 열지 말라는 가이드의 주의를 들었고 흑인들이 우리가 타고 있던 차로 몰려와 동양에서 온 세 여인들을 호기심어린 눈초리로 구경한다. 가이드는 게으른 흑인들을 비난하면서 일하기 싫어 하루도 빠짐없이 시위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흑인에 대한 비난은 끝이 없었다. 두 가이드들은 런던 설탕 시장에서 보낸 젊은이들이다. 흑인들이 두려워 백인 구역에는 전기 울타리까지 설치한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주객이 전도되어 평화롭게 살던 원주민 위에 군림하면서 귀족처럼 살고 있는 백인들이 역겨웠다.
 시위장을 빠져나와 한가한 거리에서 얼굴에 밀가루인지 페인트인지 구별이 안 되는 하얀 것을 잔뜩 바르고 한 소년이 지나간다. 이유를 묻는 나에게 비웃음이 가득찬 표정으로 가이드가 말했다. 백인을 동경하는 흑인들의 모습이라고. 최근에 논란이 되었던 인종비하의 광고와 연걸 지어진다. 유명한 비누 회사인 도브와 중국의 세탁기 광고가 그것이다. 도브 비누를 사용 후 백인이 된 흑인과 세탁기에서 나온 흑인이 백인으로 변한 광고이다. 흑과 백을 이야기하는 동안 우리일행은 관광객을 위한 민속촌에 도착했다. 추장이 우리들을 맞아 주었고 그들이 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온통 울긋불긋 원색으로 된 세상이었다. 나도 평소에는 입지 않던 원색 옷을 입고 그들의 환영에 동참하였다. 모두가 손을 맞잡고 줄루족의 전통춤을 따라 추었다. 공연이 끝나고 기념촬영을 하려는데 어느 줄루족 여인이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순간 내 온 몸은 긴장하여 경직되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현상이다. 여인에게 미안함을 느끼면서 나는 평소의 나를 들여다보았다. 그동안 나는 인종편견이 없다고 확신했다. 민속촌에 가는 도중에도 흑인들을 비웃으며 백인의 우월감을 뽐내는 가이드가 미웠다. 줄루족 여인에게 보였던 내 반응은 스스로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안의 무의식 속에 도사리고 들어앉은 인종편견을 들켜버리고 만 셈이다. 몇 해 전 인종문제로 악명 높았던 호주에서 온 총각 선생이 나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당신 딸이 흑인 남자친구를 데려와 결혼하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인종문제가 나올 때마다 떠오르는 질문이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나는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민속촌에서의 개운치 않은 기분을 떨치고 다음날 현지인들과 함께 버스로 케이프타운으로 가는 도중 찻길에서 서성거리는 몸짓 큰 타조를 비롯하여 여러 동물들과 만났다. 그들이 여기가 아프리카라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 주었다.
 케이프타운은 남아공의 수도이다. 온화한 기후와 쾌적한 자연조건으로 유럽인들이 욕심을 냈던 아프리카 최남단에 위치한 항구도시이다. 특히 영국과 네덜란드가 한때 점령한 이유로 혹자는 아프리카의 서유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시내에 들어서자 아기자기한 유럽식 건물들이 깔끔하게 줄지어 있었다. 남불의 어느 도시와 비교해도 손색없이 세련된 상가로부터 아담한 집 창문에 쳐진 레이스커튼, 창가에 내어 놓은 화려한 화분까지, 아프리카의 색채는 어디에도 없었다. 모두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현지인들을 따라 다녔다. 그들도 우리들의 기분을 눈치 챘는지 우리를 서점으로 안내했다. 대형 서점에는 영국과 미국 작가들의 책으로 빼곡히 들어 차있어 나도 대학시절 선택했던 영시 교재인 시집 한 권을 집어 들었다.

 다음날은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자주 만났던 바스코다가마가 인도항로를 개척하면서 유럽인들에게 희망을 알렸다는 곳이다. 케이프 반도의 최남단으로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지점이다. 등대가 있는 전망대에 올라갔다. 대서양과 인도양이 한 눈에 들어오는 희망봉에서 나를 중심으로 둥글게 펼쳐진 수평선을 보았다.
 '그렇구나, 지구는 둥글구나.'

 얼마 전 TV프로 '걸어서 세계 속으로'의 남아공 편을 보았다. 20년 만에 남아공을 다시 여행한다는 어느 영국신사에게 PD가 물었다. 그 시절과 달라진 것이 있느냐고.
 신사의 대답은 "케이블카의 속도가 빨라진 것 외에는 모든 것이 그대로다."
 그 대답의 의미 속에는 변하지 않은 인종비하와 흑인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닌지. 혼자서 추측 해 보았다.

 남아공에서의 공식적인 일에서 벗어난 남편과 만찬장의 거북함에서 해방된 나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나이로비로 향했다. 케냐의 일정은 부인들의 내조에 대한 일종의 포상 휴가였다. 나이로비에서 우리 일행만을 태운 경비행기는 케냐의 벌판 한가운데로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 대기하고 있던 차량으로 숙소에 갔다. 그곳은 '동물의 왕국'으로 우리에게 친숙해진 세렝게티 초원이다. 세렝게티는 탄자니아와 케냐에 걸쳐있다. 마사이마라는 케냐에 속한 곳으로 우리가 머문 곳은 마라 국립공원 안에 세워진 텐트였다. 마라 강변에 위치한 텐트 안에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냉장고, 냉온수 샤워시설 외에도 수세식 화장실까지. 가스등이 전깃불을 대신했고 야생동물의 침입에 대비해 긴총을 든 가이드는 밤새도록 불침번을 서 주었다. 가스등이 켜져 있는 텐트 앞 마라 강에서는 덩치 큰 하마떼들이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온밤을 헤엄쳐 다녔다. 그 소리는 진정한 아프리카의 소리였다. '드디어 내가 아프리카에 왔구나.' 그동안의 긴장이 한꺼번에 풀렸다. 초원 위에 자리한 식당에는 주변의 동물들이 먼저와 관광객을 맞이했다. 원숭이 종류가 많았지만 이름 모를 새들도 모여들어 우리들의 식사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식사 후 남는 음식을 기대하는 것이다.

 다음 일정은 사파리 투어이다. 마라 국립공원에 갔다. 요란한 총으로 무장한 가이드들을 앞에 태우고 지붕 없는 차에 나누어 탔다. 절대로 차에서 내리지 말라는 가이드의 엄포에 잔뜩 겁을 먹었고 두려웠다. 여기저기 동물의 뼈가 흩어져 있어 더욱 으스스했다. 시간이 흘러 정오가 되자 뜨거운 태양이 내려 쬐는 초원에서 사자의 무리가 무료한 표정으로 우리를 무심히 쳐다본다. 흥미 없다는 표정이다. 서로가 구경꾼이 된 셈이다. 온갖 종류의 동물들이 있었지만 그들 모두는 연출된 출연자 같은 모습이다. 무장하고 긴장한 내가 미안하고 무안했다. 수많은 관광객에게 익숙해진 동물들은 야성을 잃어버린 걸까. 멀뚱멀뚱 사람들을 쳐다만 본다. 오후가 되자 여기저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있다. 가까이 가보니 사냥감을 먹고 있는 동물을 구경하려는 사람들이다. 조용히 식사할 권리마저 빼앗는 인간들이 야속했다.
 하루 종일 동물들을 따라다니느라 지친 내 앞에 언젠가 사진에서 보았던 황홀한 광경이 펼쳐있었다.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바오밥 나무이다. 말이 많아 신과 악마로부터 벌을 받아 거꾸로 서게 되어 가지가 뿌리 모양이다. 환상적인 황금빛 노을과 함께 붉은 태양이 웅장하게 지는 석양을 배경으로 바오밥 나무가 서 있었다.

 다음날은 마사이 마을에 갔다.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던 마을의 원로들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마사이족은 초원에 거주하는 맨발에 붉은 옷을 입는 용맹스런 종족이다. 사자를 겁주기 위해 붉은 옷을 입는단다. 커다란 원으로 지어진 집단 거주지는 입구가 좁았다. 야생동물의 침입을 막기 위함이란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넓은 마당에는 소 배설물이 수북이 쌓여있어 불쾌한 냄새가 진동했다. 그들은 가축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유목민이다. 특히 소를 귀중히 여기고 우유를 주식으로 한다. 때로는 기력이 약해진 산모와 환자들에게 소의 생피를 우유에 섞어 먹인단다. 그들에게는 소의 배설물도 귀중한 자산이다. 집을 지을 때 시멘트를 대신한 건축 자재가 되고 땔감으로 사용하여 난방용으로도 요긴하게 쓰인다. 야생동물로부터 귀중한 소를 보호하기 위해 밤새 머물렀던 마당은 배설물로 질척거렸다. 진흙탕처럼 발이 푹푹 빠졌지만 우리는 애써 웃음을 보여줬다. 집 입구에 있는 부엌에 들어서자 매캐한 연기가 자욱했다. 그들 나름대로의 소독 방법이라 했다. 여자들은 민속춤을 추었고 사진 촬영에도 익숙하게 응해 주었다. 파리떼가 극성스러운 그곳에서 그들 모두는 행복해 보였다.

 여행 마지막 밤, 가스등을 들고 앞장서는 가이드를 따라 우리 부부는 캠프파이어 장소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는 열심히 '쟘보'라는 케냐의 인사말을 외쳐댔다. 같은 영국 식민지였던 남아공에서는 모두가 '헬로'라고 인사한다. 케냐의 젊은이들에게서는 남아공에서 느끼지 못했던 당당함이 보였다. 캠프파이어가 열리는 초원에서 대부분이 낯익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관광 일정이 비슷해 자주 만났던 얼굴들이다. 마라 강변을 산책하면서 '쟘보'를 주고받으며 친숙해진 영국인 부부도 와 있었다. 대부분이 유럽에서 온 사람들로 동양인은 우리 일행뿐이다. 타오르는 불을 중심으로 모두가 모였다. 그동안 야간 불침번을 서 주었던 가이드까지 동참하였다. 어깨동무를 하고 춤을 추며 아프리카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둥근 지구 안에서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인종도 국적도 종교까지 모두 잊은 우리는 하나였다. 그곳에서 나는 잠깐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세계인이 되었다.
 존 던(영국 John Donne 1572-1631)의 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의 한 구절을 읊조려 보았다.
 '왜냐면 나는 인류 전체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랬다.

<한국산문>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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