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에 빠져
박진희
누구에게서나 색이 보인다. 동양인, 백인, 흑인, 그리고 그 외의 사람들에게도 고유의 특유한 색이 있다. 인종에 따라 타고 난 색이 거기서 거기라
해도, 시간을 가지고 개개인에게 관심을 갖게 되면, 각자 얼마나 다른
색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된다.
피부에 나타난 색과는 상관없이 표정에 따라 활기가 가득하거나
성격이 부드러워 보이는 사람에게는 따뜻한 계열의 색이, 굳어 있고 무표정한 사람에게는 차가운 색이 보인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빨강, 노랑, 파랑
세가지 색이 따뜻한 계열과 차가운 계열로 각각 나뉘게 되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여섯 가지 색을 서로 섞어서
이 세상의 빛과 그림자 조차 거의 완벽에 가깝게 나타낼 수도 있다. 그렇게 나의 팔레트는 여섯 가지 색으로
한정되어, 세상을 따뜻함과 차가움으로만 나타내면 충분할 줄 알았다.
그러다 그 이상의 다양한 색을 보게 된 지는 이십 년이 조금
넘는다. 미국에서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그랬던 것 같다. 그 전에는 색에 대한 편견과 자만심이 모든 색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
때는 아주 기본적인 색상만 보여 세상이 단순하고 별 매력이 없게 보였다. 아니 오히려 불안하고 우울하고 캄캄해서
아무 색도 제대로 안보이던 기간이 십년이 넘었다.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빛의 소중함을 깨닫고 세상으로 조심스레
나오게 되었다.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나타나는 색, 사람들을 위해 일하면서 느끼는 색, 사람들의 몸을 닦아주고 치료하면서 보는 색은 모두 다르게
보인다. 마치 근시의 시력을 가진 사람처럼 가까이 다가갈수록 색은 점점 선명해지고 확실해지면서 구분이 간다.
그러다 신비로운 경험을 할 때는 어느 색이라고 딱 집어 내기 어려울 때도 있다.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할 때, 뇌출혈로 죽음을 코 앞에 둔 오십 대의 백인 여자 환자를 돌본 적이 있다. 그녀는 창호지처럼
창백했고 코마상태에 이르렀는데, 그녀의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둥글게 서서 손을 잡고 기도 하는 모습은 숙연해
보였다. 특별히 그녀의 남편은 여전히 희망을 갖고 따스한 미소로 속삭이듯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노래도 불러주었다.
그렇게 두번째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오자 그녀의 의식이 돌아왔다. 그녀는 분홍색으로
생기가 돌았고,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녀를 돌보던 의료인들에게 신비스런 빛을 가득 비춰주었다.
삼십 대 중반의 흑인이었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감옥에서 신경계통의 병이 생겨 우리 병동으로 치료를 받으러 왔다. 그녀는 임신 말기였고 좁은 병실에 24시간 보초를 서는 건장한 간수 두 명 중에서 한 명이
족쇄를 풀어줘야 화장실을 갈 수 있었다. 족쇄가 없어도 그 무거운 몸으로 얼마나 간다고… 표정도 감정도 거무칙칙하게 꽁꽁 묶여버린 듯 했다. 그녀에 대한 애틋함이 나를 움직였다.
거동이 어려운 그녀에게 손을 건네어 잡아주고 따뜻하게 대해주자 그녀의 얼굴색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곧 태어날 그녀의 아기에게 관심을 보이며 대화를 하자, 그녀는 마치 해바라기
꽃처럼 환해졌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나의 팔레트에는 더 많은 색상의
물감이 더해가는 걸 느낀다. 화려하든 수수하든 특정한 색에 대한 어리석은 편견을 버리고 세상 사람들과 어우러져
조화로울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들에게 다가갈수록 그 특유의 색상을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선물처럼
기꺼이 내어 준다.
건강한 사람 뿐 아니라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여러가지
색이 보인다. 그 색깔들이 주는 특징과 상징을 풀어내고자 관심을 가지는 일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은 색이 무척이나 다채로운 곳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색에 빠져 풍요로운 세상을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다.
제13회 재미수필 신인상, 2018. 재미수필 제20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