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문학회 >  회원작품 >> 

* 작가명 : 오길순
* 작가소개/경력


* 이메일 : oks0005@hanmail.net
* 홈페이지 : oks0005.kll.co.kr/
  징검다리    
글쓴이 : 오길순    19-01-11 19:04    조회 : 4,604

                                          징검다리

                                                                                                  오길순

  낯선 여성의 절박한 전화가 봄날을 깨웠다. 나른하던 한낮의 기운도 번쩍 일어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대한민국호가 내려질까 걱정이라는 그에게 나도 의기투합했다.

   “정말이에요. 이러다 나라 문 닫겠어요.”

 낯선 여성과 맞장구를 치고 나니 새삼 겁이 더럭 났다. ‘2020년 인구절벽이 온다는 예측이 현실화되는 것일까? 선남선녀들이 결혼하고서도 출산하지 않는 딩크족 이야기까지 가슴 졸이던 차였다. 정말 빛나는 청춘들이 아름다운 사랑을 포기한 것일까?

 낯선 여성은 결혼상담소 매니저였다. 진즉 결혼한 내 아들의 결혼안부를 묻는 전화였는데 인구절벽까지 대화하게 되었다. 지구상에서 나라가 사라진다면 맨 먼저 대한민국일 것이라니 저 찬란하도록 맑은 봄 햇살이 무슨 소용인가?

   “미치겠네. 딸년이 통 시집 갈 생각을 해야 말이지.”

지하철에서 친구에게 통사정이라도 하는 할아버지 옆에서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 어머니라면 친정엄니가 될 즈음의 나이이니 조혼세대였을 할아버지의 애통에 공감이 갔다. 할아버지는 어쩌면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났지 싶었다.  건드리면 눈물이 나올 듯 목소리를 울먹였다,  

스물한 살 첫 부임지에서 동료여교사를 첫 중매했다. 새내기 친구에게 징검다리가 된 일이 뿌듯하면서도 부끄러웠다. 이 후 우연히도 열댓 인연들의 징검다리가 되었다. 지난 50년 인류사 물길에 상당한 기여를 한 셈이다.

낯선 처녀총각들이 나를 매개로 결혼이 어우러질 때마다 마음이 오묘했다. 만날 수 없는 견우직녀가 나를 징검다리 삼아 오작교에서 만난 듯싶었다. 그럴 때면 난해한 수학 공식이라도 푼 듯 뿌듯하고도 신기했다. 백 명도 넘을 그들의 후손들이 지구 한 귀퉁이를 살뜰히도 엮어낼 걸 생각하면 젊은 날 이룬 기적 같기도 하다. ‘셋만 중매하면 천국 간다.’는데, 이 다음 천국자리 손잡고 가자는 친구들의 농담 또한 덕담일 것이었다.

옛 사람들은 잘 해야 술 석 잔이라며 중매에 신중했다. 콩 주고 두부사기여야 한다며 서로의 평형을 맞추려 했다. ‘자칫 뺨 석대라며 아예 중매를 회피하려고도 했다. 넘고처지지 않아야 맞춰진다는 짝의 의미 또한 중매과정이 어렵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제는 뺨 맞을 각오로 중매를 서야 할 때가 아닐까? 처녀 총각 어상반하면 술 석 잔 꾹꾹 눌러 사면서라도 사랑의 오작교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용기 있는 자가 미남미인을 얻는다는데 강둑너머 근 달음만 하다가 언제 징검다리를 건너랴. 평형만 재다가 흘려버린 인연, 바다로 흘러간 강물은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흔히 처녀 총각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도 있다. 얼마 전 단체미팅을 주선한 어느 직장단체장처럼 청춘의 이발사가 많아진다면 인구절벽이란 말도 사라질지 모른다.

뺨 석대를 톡톡히 맞은 적도 있다. 꿈꾸던 배우자의 이상이 어긋났을 때 원망의 우선순위가 중매인 것 같았다. 그래도 어느새 그들의 삶이 완생을 이뤘는지 술 석 잔 사주고 싶은 마음 간절한가 보았다. 어쩌면 그들의 평생을 기도하는 묵도자가 중매쟁이 같기도 하다.

어떤 성혼 즈음이었다. 친척들이 파혼을 들고 나섰다. 당사자들은 결혼을 서두르는데 이런 일이 있나. 남의 집 제상에 감 놔라, 배 놔라한다더니 바로 그러했다. 다시는 중매 안 서리라. 거듭 맹세하고도 청춘만 보면 또 거드니 다정도 병이긴 한가 보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가족계획기획자들도 지금쯤 후회하지 싶다. ‘둘 낳으면 지성인, 셋 낳으면 미개인이라는 표어가 불과 몇 십 년 전의 일이다. 밤낮없이 골목을 울리던 아기 울음대신, 적막강산이 된 동네 고샅을 걸을 때면 낯선 결혼 매니저의 절박한 목소리가 울음처럼 들려오는 것만 같다.

  “이러다 나라 망하겠어요.”

                    (마음의 양식 <<행복의 나라로>> 2018.3.23. 국방부)

 

 



 
   

오길순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46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글쓰기 버튼이 보이지 않을 때(회원등급 … 사이버문학부 11-26 92582
공지 ★(공지) 발표된 작품만 올리세요. 사이버문학부 08-01 94793
16 징검다리 오길순 01-11 4605
15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오길순 12-10 7858
14 가리개 방향, ‘」’과 ‘「’ 오길순 12-08 6260
13 독수리 오길순 12-08 6381
12 휘날리는 태극기 오길순 11-23 6056
11 부추죽 오길순 11-12 5714
10 비상 오길순 11-06 4648
9 사랑새 이야기 오길순 11-02 5309
8 옆자리 오길순 11-02 5540
7 돌산과 아들 오길순 10-30 5306
6 다시 찾은 기도 오길순 10-30 6140
5 어린 날의 풍경화 오길순 06-22 5740
4 침묵 미사 오길순 03-29 5766
3 흔적을 찾아 떠난 여행 오길순 03-10 6834
2 강제점령 오길순 11-24 7202
 
 1  2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