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이요!
길 한편에 트럭을 세워놓고 노인이 “뻥이요.”라고 외쳤다. 뻥튀기 기계는 저절로 돌아가고, 차에 매달린 라디오에서는 가수 신신애 <세상은 요지경 >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뻥튀기를 사려고 발걸음을 멈췄다.
“할아버지 오랜만이요, 뻥튀기 한 봉지 주세요.”
“여름 한 달 공쳤어.”
올여름 기온이 40 도 가까이 오르내렸으니 노인은 일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더위가 한풀 꺾이고 찬바람이 일자 엉덩이가 근질근질해서 나왔단다. 노부부는 오래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꼴로 00 노인복지관 옆에 터를 잡고 뻥튀기 장사를 했다.
할머니가 뻥튀기를 내 손에 쥐어 주면서 엉뚱한 소리를 했다.
“말 마슈. 영감탱이는 지금도 꿈속에서 산다우. 한 달 동안 집에 있다 보니 술독에 빠졌다우. 술에 취하면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을 이야기 한다우.”
할머니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할아버지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나도 젊었을 때 잘 나갔제. 기사 두고 ‘포니’를 몰고 댕겼은게. 자동차가 처음 나왔을 때여.”
“자랑이라고 떠든교?”
할머니가 옆에서 핀잔을 주자, 할아버지가 말꼬리를 물고 또 늘어졌다.
“그때 사기만 안 당했으믄 떵떵거리고 살 턴디,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서 어떤 놈 아가리에 쳐 넣었단게. 00 에 투자하면 재산을 몇 배로 불려준다고 하기에 철석같이 믿었제. 마누라 말만 들었어도 이 고생 안 하지, 지금도 세상 돌아가는 게 영….
노인은 말끝을 흐리더니 큰소리를 하며 어깨춤을 추었다.
여의도 높은 분들 ‘특활비’ 없앴다고 생색내고 / 00 교회는 ‘부자세습’이라며 편이 갈리고 / 조계종 총무원장도 산중으로 들어가고 / 아무개는 ‘보이스피싱’에 걸려들었어, 은행에서 돈 찾아 냉장고에 숨겼다가 도둑맞고 / 이런저런 이야기 방송에 나왔어 / 오 예, 생각이 다르니까 / 나도 왕년에 사기 맞았지, 아내 말이 맞고 내 생각은 틀렸어 / 세상은 요지경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 //
노인은 청바지에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세상에 떠도는 말과 자신이 당했던 처지를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노랫말과 버무려가며 랩을 하듯 한바탕 늘어놓았다. 잠시 후 호루라기를 불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뻥이요!”
하는 동시에 뻥튀기 기계 문이 활짝 열렸다. 수증기가 하늘로 치솟고 ‘튀밥’이 철망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
할머니가 튀밥을 비닐봉지에 담는데 노인은 흥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 “뻥튀기 사시오, 이 뻥튀기를 드시면 5년은 더 젊어진단게 한 번 잡숴봐, 오줌발이 장난이 아녀 애들은 물러가라 뱀이다 뱀.”
시골 장터에서나 봄직한 약장수처럼 노인은 입담이 좋아서 사람들이 주변에 몰려들었다. 70쯤 보이는 노부부가 오손도손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할머니는 늘 웃는 모습이었는데, 그날 왜 과거를 들먹이며 할아버지를 코너로 몰았을까?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그러든 말든 잇몸을 드러내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뻥튀기 파는 모습을 보면 어릴 적 생각이 떠오른다. 뻥튀기 장사가 동네에 오면 쌀, 옥수수, 콩, 누룽지 등을 소쿠리에 담아서 차례를 기다렸다. 뻥튀기 할아버지는 장작을 쑤셔 넣고 풀무질을 했다. 아이들은 철망을 가운데 두고 빙 둘러앉아서 튀밥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손님이 많은 날은 할아버지도 신이 나는지 “뻥이요.”라고 더 크게 외쳤다. 뻥튀기 기계 쇠뚜껑이 열리자 튀밥이 철망 안으로 소복이 쌓이고 일부는 땅바닥에 흩어졌다. 아이들은 흙먼지 묻은 튀밥을 손으로 집어서 입으로 들어가기 바빴다.
뻥튀기 장사가 다녀간 날, 나는 밤잠을 설쳤다. 뻥튀기 기계에 병아리를 넣으면 어미닭이 되고, 사과를 넣으면 내 머리통만 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상상에 빠졌으므로.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뻥튀기 기계도 같고 노인이 “뻥이요.”라고 외치는 소리도 닮았다.
‘뻥이요, 뻥치다’라는 말은 허풍을 떨거나 거짓이라는 말일 텐데 뻥튀기 기계에 곡식을 넣고 ‘뻥이요’ 라고 외치자 금덩어리가 쏟아지면 보는 사람 기분이 어떨까? 하지만 노인이 쌀을 뻥튀기 기계에 넣고 수십 분이 지나자 쌀은 본래의 모습을 간직한 채 몸만 커졌다. 쌀 뻥튀기 한 봉지 사 들고 집으로 가는데 ‘세상은 요지경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라는 노랫말이 귓전에서 맴돌고, 노인의 음성이 겹쳐졌다 . “뻥이요 !”
<한국산문> 2019,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