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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파똥    
글쓴이 : 박병률    19-09-18 18:01    조회 : 7,980

                                              리파똥

                                                                             

  5월로 접어들자 옥상 텃밭은 가지, 토마토, 오이, 호박, 고추가 자라고 새순이 번졌다. 토마토는 맨 위 순만 놔두고, 고추나 가지는 위에서 아래로 3개의 순을 남기고 나머지 순을 자른 다음 식물이 쓰러지지 않도록 지주를 세웠다. 튼튼한 열매를 얻으려면 웃거름을 줘야 한다. 거름을 바가지로 퍼서 모종 주변에 수북이 주었다. 거름 냄새가 진동했다. 하루가 지나자 파리가 꼬이기 시작했다. 파리채를 손에 들었다.

  “

  “따닥

  “

 

  “음정 박자 다르지만/ 한 구절 한 고비 꺾어 넘을 때/ 우리네 사연을 담는/ 울고 웃는 인생사/ 연극 같은 세상사/ 모두가 네박자 쿵짝.”

  똥파리를 잡으며 송대관 노래 네박자를 흥얼거렸다. ‘경쾌하게 나는 소리는 파리채로 파리 한 마리를 가볍게 잡는 소리고. ‘따닥은 파리 두 마리가 앉아있는데 파리채로 한 마리를 잡고 또 한 마리를 연거푸 공격하는 소리요, 그때 두 마리가 잡히면 다행인데 한 마리를 잡은 다음 헛방 치면 파리가 눈에 쌍불을 켜고 파리채를 물어뜯을 기세로 덤빈다. ‘짧고 둔탁하게 나는 소리는, 파리 서너 마리가 죽은 파리에 붙어서 피를 빨아먹느라고 우글거릴 때 감정을 실어서 파리채를 힘껏 내리치는 소리다.

  “독한 놈들! 벼룩의 간을 빼먹지, 니들은 피도 눈물도 없냐?”

  혼잣말했다.

  텃밭에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러 다니다 보면 뒷문을 열어놓고 다니기 일쑤다. 어느 날 집안에 파리 한 마리가 날아다니고, 파리 잡는 약은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파리채를 들고 파리를 따라다니며 노래를 불렀다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네

 아내가 내 모습을 보고 큰소리를 쳤다.

  “파리하고 블루스 추는교? 뭐 그리 소란스럽소. 밖을 드나들 때 꼬리 좀 자르고 댕기소.”

  내가 문을 열고 다니니까 경고를 한 셈이다. 파리는 이리저리 날아다니는데 아내 기분도 살릴 겸 파리채를 마이크 삼아 노래를 개사해서 불렀다.

  “리파똥 니가 기쁠 때/ 내가 슬플 때/ 누구나 부르는 노래/ 쿵짜자 쿵짝

  “리파똥이 아니고 리빠똥이 아닌교?”

  “발음 좀 똑바로 하소, 김용성 소설리빠똥 장군을 프랑스어 발음으로 똥파리를 거꾸로 쓴 거 아니오! 당신은 똥파리하고 며칠째 전쟁 중인교?”

  “리빠똥과 리파똥은 질적으로 다르단게.”

  ‘는 도 음이고 는 쏠 음으로 길게 하고 은 레 정도로 아내한테 들려주자, 아내는 말없이 텃밭으로 향했다. 광에서 호미를 들고 나오더니 식물 주변의 흙을 긁어서 거름을 덮었다.

  “거름을 흙으로 덮어버리면 파리가 안 생길 것 아닌교!”

  아내가 리빠똥 장군을 들먹이는 바람에 리빠똥을 떠올렸다. ‘리빠똥은 대령인데 지나친 의욕과 괴팍한 성격의 인물로 묘사되었다. 별을 달기 위해 대간첩작전에 자원한다. 어느 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부하들이 머무는 진지까지 포격명령을 내리는데, 그 일로 군사재판에 회부된다. 우여곡절 끝에 정신병원에 들어가지만 리빠똥은 유서를 남기고 권총으로 자살한다.’ “나처럼 잔인해질 수 있는 인간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며, 그것은 죄가 될 수 없다.”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며칠 사이에 파리의 생명을 수도 없이 빼앗았다. 파리가 말을 할 줄 안다면 나더러 뭐라고 할까? 잔인한 인간, 힘이 세다고 살아있는 목숨을 함부로 빼앗아도 되냐고 따지지 않을까(?) 눈을 감고 내 손에 죽어간 파리를 생각하며 리빠똥 장군이 쓴 유서를 곱씹었다. ‘나처럼 잔인해질 수 있는 인간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고, 그것은 죄가 될 수 없다했으므로.

  이 또한 힘을 앞세워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일 텐데 나는 결코 똥파리와 전쟁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똥파리를 리파똥으로 고급스럽게 불렀다. 하지만 파리는 하룻밤 자고 나면 수도 셀 수 없이 늘어났다. 거름더미에서 놀다가 어느 틈에 집안으로 들어와서 밥상까지 넘봤다. 아내가 흙으로 거름을 덮어버리는 바람에 똥파리들은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파리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잠시 길들어진 습관은 내 몸에 스며든 모양이다. 어떤 계기가 되면 습관이 되살아나는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텃밭 주변을 서성거릴 때 탁, 따닥, , 파리채 두들기는 소리가 귓전에서 맴돌았다. “똥파리 나와라, 이놈들!” 큰소리치며 파리채로 허공을 휘휘 저었다. 그때 아내가 창문 너머로 얼굴을 내밀고 한마디 거들었다.

  “리파똥 보고 싶은교? 밭에 거름 한 바가지 뿌려줄까예!”

 

                                                        한국수필 201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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