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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사빵의 유혹    
글쓴이 : 나운택    19-11-16 03:03    조회 : 10,081

설사 빵의 유혹

 

나구름

 

   아침마다 학교 앞 점방(그 당시 우리는 문구점과 잡화상을 겸한 가게를 그렇게 불렀다)을 지날 때면 아이는 늘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곤 했다. 초등학교 교문 왼편에 있는 점방에는 어김없이 그놈들이 유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놈들은 늘 가장 눈에 잘 띄는 앞자리에서 그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구릿빛 피부는 깊은 산 숲속 어느 후미진 곳에서 문득 만나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색상의 독버섯처럼 거역하기 힘든 마력을 뿜고 있었다. 그 반들반들한 피부밑에는 구멍이 송송 뚫린 부드러운 속살이 있고, 그 속에는 또 꿀맛보다 더 달콤한 단팥이 들어 있을 터였다. 어린 시절 우리 촌놈들에게 점방 앞에 진열되어 있는 빵은 그저 ‘그림의 떡’, 아니 ‘진열장 속의 빵’에 불과했다. 어른들도 만지기 힘든 현금이 아이들 손에 있을 리 없으니 언감생심 꿈속에서나 맛볼 수 있는 금단의 열매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평상시에는 감히 꿈도 꾸지 못 하던 빵이나 과자들을 그나마 한두 가지라도 맛볼 수 있는 유일한 날이 바로 소풍날이었다. 그날은 모처럼 몇 푼 쥐여준 동전을 손에 꼭 쥐고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단팥빵을 먹어 볼까? 백설 같은 설탕을 듬뿍 뒤집어쓰고 요염하게 몸을 꼬고 있는 꽈배기를 사 먹어 볼까?’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날이었다.

 

  일 년 동안 벼르던 끝에 드디어 봄 소풍 가는 날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그놈을 하나 사서 입에 베어 물었을 때 코로는 약간 시큼한 듯한 이스트향이 전해오면서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들던 그 황홀한 맛! 에덴동산 금단의 열매 맛이 이랬을까? 그런데, 아뿔싸!…  평소에 전혀 먹지 않던 그런 것들을 입에 잘 맞지도 않는 콜라니 사이다니 하는 요상한 음료와 함께 잔뜩 먹고 나면 그날 저녁에는 어김없이 속이 부글거리곤 했다. 소풍날의 포식 뒤에는 언제나 그렇게 부글거리는 위장과 함께 약간의 후회와 자기혐오가 밀려오곤 했지만, 그렇다고 이틑날 등교길 그 점방의 빵이 덜 유혹적인 건 아니었다.

 

  어린 시절 아이는 부모님을 따라 어딜 다녀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명절날 큰집에 다니러 갈 때를 제외하면 아버지를 따라 어딜 가 본 기억은 딱 한 번 밖에 없다. 무슨 일로 어딜 갔다 오던 길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하지만, 아버지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무슨 마음에서였던지 아버지가 약간의 돈을 주셨다. 아이는 먹고 싶은 과자라도 하나 사 먹으라고 주신 걸로 생각하고 뭘 사 먹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마침 옆 가게에 먹음직한 빵이 보이기에 큰맘 먹고 사 먹었다. 잠자코 아이가 하는 걸 지켜보시던 아버지가 한참을 묵묵히 걸어가시다가 지나가는 말처럼 “너는 돈이 생기면 모아 둘 줄을 모르고 금방 써 버리는구나.” 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이는 나약한 의지력과 속물성이 들켜버렸다는 낭패스러움과 자괴감에 얼굴이 화끈해졌다. 부끄러움과 당혹감에 먹었던 빵이 목에 딱 걸리는 듯했다. 수박서리를 한 후 한껏 부른 배를 두드리며 밭이랑에 호기롭게 오줌을 갈기고 있는 찰나에 불쑥 주인이 나타났을 때의 낭패스러움이 그보다 더 할까?  

 

   아이가 소년이 되어갈 무렵 장발장을 읽었다. 생존을 위해 훔친 빵 한 조각으로 인해 십수년을 감옥을 들락거려야 했고, 그 후에도 거의 평생토록 쫒기는 신세로 살아야 했던 그를 만난 후 점방 진열장속의 빵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후 빵을 볼 때마다 단순히 먹고 싶다는 생각외에 좀 더 복잡한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곤 했다. 하지만 그 거부하기 힘든 유혹의 힘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군에 입대를 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온종일 고된 훈련을 받으며 늘 긴장된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니 혈기왕성한 육체는 황소 한 마리라도 금방 먹어치울 듯 늘 음식을 갈구했다. 푸석푸석 날리는 보리밥을 후다닥 입에 털어 넣고 일어나 식기를 닦고 돌아서면 벌써 배가 고팠다. 달리 간식이 있을 리도 만무했다. 훈련소에  입소할 때 가지고 있던 돈은 모두 예치를 해야 했으니 가진 돈도 없었고, 설령 돈이 있더라도 뭘 살 수 있는 매점도 없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모두들  며칠 굶은 하이에나처럼 머리에는 온통 맛있는 음식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이 주일이 흘러간 후 드디어 간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하루 일과가 끝난 후 잠자리에 들기 전에 예치해 놓은 돈으로 빵을 사 먹을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그런데, 몇 주간을 보리밥만 먹다가 갑자기 상표도 제대로 붙어 있지 않은 불량식품 같은 저질빵을 잔뜩 먹고 잠자리에 들다 보니 금방 속이 부글거리며 배탈이 난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후 우리는 그 빵을 ‘설사빵’이라고 불렀다.

 

   비록 배탈이 난 사람이 많았지만 설사빵의 인기는 여전했고, 빵을 주문해서 먹는 저녁시간은 하루 일과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 구대에 속한 60여 명의 훈병들 중에는 입소 때 예치해둔 돈이 없어서 빵을 주문하지 못 하는 사람이 몇 명 있었다. 그들은 남들이 빵을 맛있게 먹을 때 그냥 옆에서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들에게 빵 한 조각을 내미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마다 허기진 자기 배를 채우기에 바빠 그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중 한 친구가 옆에 앉아서 정신없이 빵을 먹고 있는 친구에게 갑자기 와락 달려들어 빵을 빼앗아 자기 입에 털어 넣었다. 다큐멘터리 채널 텔레비전에 나오는 정글의 모습을 언뜻 본 듯한 착각이 들었다. 빵을 빼앗긴 훈병도, 그 광경을 지켜보던 다른 훈병들도 일순간 정지 화면이 된 듯 얼어붙어서 한동안 멍하니 서로 바라보기만 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냄새나는 담요를 머리 위로 뒤집어쓰고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한 숨 곤하게 자고 난 후 또 속이 부글거려 잠이 깼다.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아까 빵을 빼앗아 먹었던 훈병이 잠든 모습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둔기로 호되게 머리를 맞은 듯 어지럼증을 느껴 자리로 얼른 돌아와 담요를 뒤집어썼다. 머리속에는 입대하기 전 자신의 모습이 어지럽게 스쳐 지나갔다. 대학에서 정의, 평등, 박애 같은 온갖 고상한 단어들을 입에 달고 다니던 한달 전 자신의 모습과 옆 동료를 애써 외면하며 설사빵을 꾸역꾸역 입속으로 욱여넣던 몇 시간 전 모습이 뒤죽박죽으로 엉키면서 머리가 멍해지더니 왈칵 눈물이 북받쳐 올라왔다. 접시물보다도 얕은 알량한 지식으로 딴에는 지성인입네 하고 거들먹거리며, 온갖 거창한 단어들을 입에 달고 다니던 자신이 얼마나 헛껍데기에 불과했던가를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죽음직전에 이를 만큼 절박한 상황도 아닌, 그저 약간 불편하고 약간 배고픈 정도의 그런 상황에서도 그렇게 금방 동물적 본능에만 충실한 모습으로 변하는 자신의 같잖은 위선과 속물성을 봐 버린 그 낭패스런 자괴감에 꾸역꾸역 눈물이 쏟아졌다. 냄새가 풀풀 나는 담요속에서 담요보다 더 지독한  그 위선과 속물성의 냄새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그렇게 꺼이꺼이 울었다.

 

   이제 어른이 된 그 아이는 오늘도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슬쩍슬쩍 약간씩 비겁해질 핑계를 찾으며, 부지런히 설사빵을 입안에 구겨 넣고 있다.     <책과 인생 2019.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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